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사람을 믿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스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올해 초 2년 전에 만난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서로를 원하여 결혼을 약속했지만 결혼 전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지만 상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안 좋은 기억들을 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했지만, 작년에 또 다른 남자와 만나 올해 초 저를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행복하게 잘 지내라’는 문자를 보냈지만, 다시 그녀에게 ‘제가 특별해서 못 잊겠다’는 문자를 받고선 또다시 충격에 빠졌습니다. 현재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그 충격 이후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다시 새로운 연인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까요?”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청중들 웃음)
“죄송해요”
“여기 관객들 중에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 없는 사람 한번 손 들어보세요. 굉장히 많죠? (많은 청년들이 손을 듦)
자기는 그래도 여자친구라도 한번 있어 봤잖아요. 그러니 여기 있는 사람들 절반보다도 나은 사람이에요. 첫째, 여자 친구라도 한번 있어 봤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져서 그 친구에게 ‘잘 살아라’ 그랬더니 ‘그래도 나는 너를 못 잊겠어’ 라고 했다는데, 얼마나 의리가 있어요? ‘그래도 난 너를 못 잊겠어’ 이 소리가 듣기 좋아요? ‘그래 난 너가 싫어’ 이 소리가 듣기 좋아요? 헤어졌지만 그래도 못 잊겠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에요?” (청중들 웃음)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을 지금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스님이 ‘야, 이 바보야’ 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첫째, ‘내가 이 나이에 그래도 좋아하는 여자를 한번 만나봤다’ 이렇게 그 여자 친구에게 감사를 해야 하고요. 둘째, 그 여자도 계속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는데 요즘 가뭄이 들어 비가 안 오듯이, 메르스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듯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런 일이 생기듯이, 그 여자를 만났을 땐 자기만 좋아해 줄 줄 알았는데 더 좋은 남자가 생기는 걸 어떡해요?
그 여자의 마음이 그렇게 되는 걸 어떡해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마음이 그쪽으로 가는 걸 어떡해요?
다른 남자를 좋아하다가 조금 있으니까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났어요. 이건 또 어떡하냐 이겁니다. 자네가 전화를 해서 ‘그 남자와 잘 살아라. 이제 잊자’ 이렇게 얘기하니까 처음에는 ‘그래’ 했지만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아쉬운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난 널 못 잊겠어’라고 한 겁니다. 여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어요?”
“제가 문제인 것 같네요.” (청중들 웃음)
“오늘 만나서 ‘난 너와 평생 함께 하겠어’ 라고 했다면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고 오늘 마음이 그랬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일 다른 남자를 보니까 더 좋은 걸 어떡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배신이냐?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런 걸 어떡해요? 그럼 그 여자는 어제 거짓말을 한 거에요? 아니에요. 어제는 마음이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경험을 한번 했으면 ’아,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누구를 좋아하면 계속 좋아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럴 때는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고, 저럴 때는 저렇게 일어나는구나’ 하고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 여자를 오늘도 좋아하고, 내일도 좋아하고, 모레도 좋아하는 경우이지만, 그 여자는 어제는 나를 좋아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가는 다른 남자가 생겨서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여자를 만나더라도 ‘못 믿겠다’ 이러지 말고, ‘오늘은 나를 좋아하지만 내일은 다른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라는 겁니다. ‘못 믿는다’는 것과 그 여자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여자의 자유를 존중해 주면 자기는 멋있는 남자가 되요? 쫀쫀한 남자가 되요?”
“멋있는 남자가 되죠”
“그래요. 멋있는 남자가 될래요? 쫀쫀한 남자가 될래요? 처음에는 이런 경험이 없어서 쫀쫀한 남자가 되었는데, 한번 경험을 했으니까 ‘이제는 바보 노릇을 해서는 안 되겠다’, ‘조금 폭넓은 사람, 멋있는 남자가 되어야겠다’ 하면 됩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너는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을 열어두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럴 수 있다’고 열어두세요. 그래야 자기가 쫀쫀해지지 않습니다.
요즘은 이런 남자를 여자들도 좋아해요? 좋다고 껌 붙듯이 붙어 다니는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할까요? 처음에는 그런 남자가 좋은데 조금 지나면 그런 남자에게서는 속박을 느껴서 나중에 귀찮아져요.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 상대를 귀찮게 하거나 상대를 속박하는 것은 행복의 나라로 가는 데 장애가 돼요. 좋아함이 속박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자기 보고 바보라고 얘기해서 죄송한데요.”
“괜찮습니다.”
“그런 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제가 알고 얘기한 거예요. (웃음) 그러니 실패가 트라우마가 되도록 하지 않고 경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에 한번 더 경험해 보고, 두 번 경험해 보고, 세 번 경험해 보면 ‘아, 여자들 마음이 이렇구나. 그러면 미리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렇게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한 다섯 번쯤 연습을 해보면 연애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나한테 계속 붙어있는 여자가 있으면 다섯 번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잖아요. 이렇게 빨리 빨리 떨어져줘야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연습하기 위해 내가 상대를 버리면 나쁜 사람이 되잖아요. 상대가 알아서 빨리 빨리 떨어져 주는 것은 하나도 손해날 것이 없어요. 그러니 그걸 가지고 상처입지 않았으면 해요.”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처음의 근심 어린 표정과는 달리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똑같은 일인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처가 되기도 하고 좋은 학습의 경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관점을 전환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일깨워 줍니다.
*이 글은 정토회 '스님의 하루'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68825&page=1&p_no=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