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기쁨
근자에 들어 부쩍 암자를 찾는 손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룻밤 암자에 머물고자 하는 사연은 각양각색이지만 사연을 애써 묻지는 않습니다. 따지고 시비하고 험담하고 편가르기 좋아하는 세속이니 산중 절집이라도 침묵과 미소로 사연 많은 이들을 편안하게 품어야지요. 제가 사는 암자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스마트폰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있지만 접속 불량인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런 환경을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보며 환성을 지르며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합니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광주에 사는 부부가 암자를 찾았습니다. 저녁 7시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날은 제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다른 손님이 있어 그 부부와 차를 마시며 대화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마땅하게 놀 거리도 없는 산중의 긴긴밤을 어찌 보낼까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했습니다. 부부가 차를 마시면서 책 한권을 서로 소리 내어 읽으면 어떻겠느냐고요. 부부는 머뭇거림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여, 안도현 시인의 성인을 위한 동화 <연어>를 각자에게 주고 각 장마다 서로 번갈아 감정도 넣어 가며 낭독해 보라고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책을 펼쳐보는 사람. 정용일 기자
차담을 하면서도 마음은 가끔 부부에게 쏠렸습니다. 정말 약속대로 읽고는 있는 걸까, 재미를 못 느껴 서먹한 분위기로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지는 않을지. 다음날 수국과 수련이 핀 연못 위 누각 차실에서 부부에게 차를 건네며 ‘책을 읽었는지’ 넌지시 물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주신 책 한 권 다 읽는 데 한 시간 사십분쯤 걸리던데요.” 다 읽은 소감을 여쭈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참 좋았고요, 읽는 내내 느낌이 달랐습니다. 모처럼 색다른 소통의 기쁨 같은 걸 느꼈습니다”라고 했다. 부부가 말은 아꼈지만 소리내어 책을 읽은 기쁨을 누렸다는 것을 표정을 보고 알았습니다.
책을 소리내어 읽는 효과는 의외로 놀랍습니다. 저는 차를 마시면서 사람들에게 시와 에세이를 읽게 합니다. 다들 신기해하고 좋아합니다. 고등학교 이후 낭독한 경험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감정을 넣어 읽는 재미도 크다고 합니다. 음성으로 표현하니 표정이 살아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문명의 도구에 원색적 표현을 가리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 대화의 단절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도구가 넘쳐나는 시대에 역설이고 모순입니다. 진정한 소통과 교감은 먼저 서로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나누어야 합니다. 말과 생각의 나눔은 듣는 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낭독은 경청과 대화의 아주 좋은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작지만 큰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만나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거나 의미없는 잡담을 나누기보다 글 한 편을 읽는 것은 어떨까요? 가족이 모여 배역을 정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법인 스님(일지암 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