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보다 일이 좋다고? ‘일의 역설’은 왜 생기나
*해수욕장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한겨레 자료사진
기다리던 여름휴가철이 시작됐다.
로마시대 시인 오비디우스는 “여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고 읊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표적인 여가 예찬론자다. 여가는 삶의 궁극적 목표이고 인간은 여가를 지닐 때 가장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전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평화를 위해 존재하듯, 일은 여가를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보았다.
일에서 벗어난 여가는 모든 이가 꿈꾸는 것이지만, 좋은 여가를 보내는 것은 휴가와 함께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베스트셀러 <몰입>을 통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을 널리 알린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1980년대 미국 시카고 지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일의 역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밝혀냈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늘 일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휴가를 갈망하지만, 실제로는 여가를 보낼 때보다 일을 하고 있을 때 더 큰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이 연구에서 노동자들은 자유시간이 되면 오히려 지루함과 불안감을 느끼는 경향을 보일 뿐만 아니라 목표 상실로 인한 혼란스러운 감정도 자주 경험했다.
칙센트미하이는 자유시간을 즐기는 게 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자유시간을 즐기는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여가가 생겨도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이 아니다”라는 게 그가 밝힌 이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를 제대로 사용하는 능력은 모든 생활의 기초이므로, 시민들에게 여가 사용법을 훈련시키지 않는 정치가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여가 사용법은 더욱 중요해졌다. 일터와 개인의 영역이 시공간적으로 분리됐던 구획이 사라지면서 모든 시간과 장소가 일터로 변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별개로 각종 자동화 도구,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시간절약 도우미들 덕분에 여가시간은 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는 사람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제임스 글릭은 <빨리빨리>에서 “우리가 더 많은 시간절약 기기와 전략을 장만할수록 우리는 더 시간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가 활용 능력이 핵심적인 능력이 되는 사회로 들어서
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