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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부터 되묻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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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부터 되묻고,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종교환경회의 주관 대화모임 ‘종교, 생명의 길을 다시 묻다’ 열려

2013.6.15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차도에서 마을을 향한 샛길을 따라 한참 걸어 들어가 만난 이층 건물.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논에 둘러싸인 이곳에 수단을 입은 신부, 법복을 입은 스님과 교무가 함께 둘러앉아 있다. 이들은 종교환경회의가 주최한 종교인 대화마당 ‘종교, 다시 생명의 길을 묻다’에 참여한 종교인들이다.

4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원불교 ‘은혜의 집’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정홍규 신부, 이현주 목사, 도법 스님, 전희식 선생이 한 자리에 모여 종교와 생명의 가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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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환경회의가 주관한 대화모임 ‘종교, 다시 생명의 길을 묻다’가 4일 경기도 용인시 은혜의 집에서 열렸다. ⓒ문양효숙 기자 


도법 스님은 “종교에 길을 ‘다시’ 묻자 하니 (길이) 안 보여서 갑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종교는 정말 생명의 길을 묻고 살았나. 제대로 묻지 않아 오늘 이런 종교가 된 것은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홍규 신부(대구대교구)는 구제역 때문에 학교 근처에 300마리나 되는 소를 묻었던 경험을 전하며 “죽은 동물을 위한 연도와 기도가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인간과 다른 종으로 구별된 게 아니라 모든 동물을 포함하는 우주론적 기도가 있어야 한다”며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종교적 우주론, 우주적 종교론을 이야기할 때”라고 말했다.

이현주 목사는 “종교의 문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교주를 왕따시킨 것이라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없었으면 예수를 못 만났을 텐데 역설적이게도 교회에서는 예수가 주인인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 목사는 “종교한테 길을 묻는다고 어찌 알겠나, 교주한테 물어봐야지”라며 “다른 종교도 그렇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얼마 전에 내가 나 자신에게 너는 사람들에게 ‘손가락 말고 저 달을 보라’고 항상 이야기하면서 왜 너는 안보냐?’고 말하더라.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저 달을 봐’ 하는 게 아니라 얼굴을 돌려 달을 보면서 ‘저 달을 봐’ 하라는 거였다.”

이 목사는 또 “사람 생각은 계속 바뀌는게 정상”이라며 “초지일관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만 어떻게 바뀌는지가 문제이며 “‘자기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을 해야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도 이에 동감한다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이 불교를 제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파악한 불교는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과 ‘실제’를 바라본다. 그런데 우리는 낡은 지식에 길들여져 있어서 실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정홍규 신부는 “아이들과 시골 대안학교에서 생활한 지 10년째”라며 “본당 신부를 하다 본당을 떠나보니 보이는 게 많다”고 말했다.

“지금은 신부가 아니라 마을 주민으로 살아간다. 내 본연의 모습이다. 아이들에게는 도그마가 필요 없다. 사랑이면 충분하다. 도그마가 오히려 사람을 갈라놓고 차별한다. 틀을 떠나야 제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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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정홍규 신부, 도법스님, 이현주 목사, 전희식 선생 ⓒ문양효숙 기자 


‘해야 하는 연대’에서 ‘자연스럽게 되는 연대’로
새로운 눈으로 실제를 보면 선의를 품고 노력한 결과를 볼 수 있을 것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어진 대화 시간에 한 참가자는 “오늘 단체 이름들을 보니 ‘연대’가 많이 들어간다. 연대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은 연대인가” 물었다. 이에 이현주 목사는 “연대라는 게 같이 하자는 건데, 원래 되는 것 아닌가. 혼자 사는 인간이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생각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내가 조직적으로 해내는 생각, 다른 하나는 뜬금없이 나한테 툭 던져지는 생각이다. 나는 후자가 꽤 믿을만 하다고 본다. 위험하다고 여길지 몰라도 종교생활에서는 이런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연대도 저절로 되는 게 진짜다. ‘하자! 하자!’ 해서 되는 것 말고 살다보지 저절로 되는 것 말이다.”

이 목사는 이렇게 깊은 곳에서 스스로 나오는 연대를 위해 “자신과 자신의 이름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에서 책이 동시에 나와서 법륜 스님과 함께 출판 기념회를 한 적이 있다. 어떤 기자가 ‘여기 지금 기독교 신자도 있고 불교 신자도 있는데 소감이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글쎄, 기자 눈에는 여기 불교도 있고 기독교도 있고 그런 거 같지만 둘러보니 사람이 많이 왔네요’라고 답했다. 우리 스승 예수께서도 그렇게 사셨다. 목사, 신부가 뭘 한다, 이런 건 껄끄럽다. 왜냐하면 이름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표는 아주 여러 종류고 계속 갈아 끼워야 한다. 이름표를 가지고는 진짜 연대가 어렵다. 달라이 라마 스님도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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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효숙 기자 


또 다른 참가자는 “생명운동도 그렇고 조직화되고 목적을 향해 달려나가는 순간 경계를 치는 느낌이다. 속해 있는 듯 하면서도 자유로운 분들이시니 지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법 스님은 “결국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나’라는 기득권과 종교, 이념, 단체 등 ‘내가 속한 집단’이라는 기득권에 평생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붙잡고는 싸워서 이긴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스스로가 기득권자임을 계속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도법 스님은 “운동하는 이들의 좌절감이나 패배감은 실제를 명확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낡은 지식으로 현실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졌어, 막지 못 했어, 실패했어’라고 많이 생각한다. 개별 상황으로는 승패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도, 사회도 많이 성장했다. 대단히 많은 이들이 변화했고 많은 부분이 이뤄졌다. 우리가 선의를 갖고 노력한 것들은 결코 헛되지 않고 노력한 만큼 실현된다. 세상의 이치다. 실제를 제대로 봐야 한다.”

도법 스님은 “이런 것들을 정확히 직시하고 스스로 소화시키는 것이 종교인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바람직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진보나 민주주의도 결국 물질과 국가에 기반해
지금은 종교가 자기 근원으로 돌아가야 할 때

오후에는 정토회 유정길 선생이 정토회의 ‘쓰레기 제로 캠페인'의 경험을 나누며, 민주주의와 진보, 생태주의에 대해 논했다.

유정길 선생은 먼저 진보, 민주주의, 종교에 문제를 제기했다. 유 선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보는 기본적으로 국가주의와 물질중심주의에 기반한다”고 지적하고, “이는 생태 위기를 발생시키는 직선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민주주의의 결정권은 현세대를 사는 이들에게만 국한된다”고 지적했다.

“미래 세대를 반영한 결정권이 현 민주주의에는 없다. 더군다나 언어를 교류할 수 없는 생명들의 결정권을 고려하면 현재 민주주의는 충분하지 않다. 생태민주주의를 시도하려면 미래 세대를 대변하는 이와 생명을 대변하는 이를 세워두고 우리 결정이 옳은지 그들을 통해 물어야한다.”

유 선생은 “종교가 복덕방 거간꾼 역할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처님한테, 하느님한테 10만 원 벌던 걸 100만 원 벌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경쟁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욕구가 종교적 신심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부처님만 해도 버리고 버려서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라고 했다. 종교는 완전히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유 선생은 “과거에는 종교를 외피로 삼아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면서 “그러나 지금 시대는 종교가 자기 근본에 더 철저해지며 운동할 수 있는 때”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기본이 경쟁이다. 그런데 내가 이긴다는 건 누군가 진다는 뜻이다. 이런 갈등이 인간과 인간에게도 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곁에 오면 마음의 평화가 깨진다. 작은 전쟁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이런 마음이 결국 큰 전쟁의 원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가치에 근본을 두어야 올바른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

종교대화모임에 참석한 양기석 신부(수원교구)는 “좋은 말은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그런 삶을 살았던 분들을 직접 만나니 그 삶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며 “개인적으로 이런 시간이 반복될수록 신앙이 풍요로워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천주교 · 개신교 · 불교 · 원불교 · 천도교 5개 종단의 8개 환경단체로 구성된 종교환경회의는 지난 2001년 구성된 이래 4대강, 핵발전소 문제 등 당면한 환경 이슈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생명의 가치를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이를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종교인대화마당’을 열고, 생태환경 문제가 있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종교인 생명평화순례를 열어왔다. 특히 오는 8월에는 영주댐, 영양댐 등 대규모 댐 건설로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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