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고 주먹질 하기
-속삭임으로 다가오는 하느님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하여 정말로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하늘을 보고 주먹질이라도 해야 성이 풀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주먹질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런 짓이 쓸데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요즘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은 하늘 보고 주먹질하는 대신, 팔을 하늘로 향하여 크게 벌리고 뭔가 외치며 울부짖는다. 그러나 이런다고 또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해도, 팔을 들어 울부짖어도 하늘은 무심하여 아무 반응이 없다. 노자(老子) <도덕경> 5장에 보면 하늘은 모든 사람들을 ‘짚으로 만든 개[추구(芻狗)]’처럼 취급한다고 했다. 누구는 잘 봐주고 누구는 버리는 식으로 편애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하늘을 향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히브리 성서에 보면 차라리 차분히 하늘의 음성을 들으려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한다.
옛날 이스라엘에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하느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지자를 죽이는 등 사회가 극도로 혼란했을 때 끝까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한 사람이다. 그가 암담한 현실을 개탄하던 어느 날 하느님의 말씀이 이르렀다. 밖에 나가 하느님을 찾으라는 분부였다.
엘리야는 분부대로 산에 서서 하느님을 기다렸다. 처음에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술 정도로 센 바람이 지나갔다. 이 바람 속에서 하느님이 나타나실까 기다렸지만 거기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았다. 다음에 지진이 있었고 그 다음에 큰 불이 있었는데, 혹시나 했으나 거기에도 역시나 하느님은 계시지 않았다. 이런 요란한 것들이 다 지나가고 드디어 ‘세미한 소리’,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성경에 의하면 하느님은 이 ‘세미한 소리’ 중에 나타나 엘리야에게 앞으로 할 일을 자세히 일러주셨다고 한다.(열왕상 19장)
*교회에서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 주인공. 영화 <완득이> 중에서
한국의 현실이 대내외적으로 암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암담한 현실을 염려하며 하느님을 찾는다. 여럿이 서울 시청 광장 같은 데 모여 목소리를 합해 하느님께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그러나 큰 소리로 ‘주여! 주여!’ 외쳐 요란하고 화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거기에 하느님이 계실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유네스코 초대 사무총장, 건국대학교 총장, 캐나다 칼튼 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한신대 총장 등을 역임하시고 2003년 7월 밴쿠버에서 86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고 정대위(鄭大爲) 박사님은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한국 그리스도교인 중 많은 이들이 ‘주여! 주여!’ 큰소리로 외치며 기도하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저 멀리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 그래서 반드시 큰 소리로 기도해야 들으실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하느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에 친구나 연인에게 하듯 소근 소근 속삭여도 들으시고 응답하실 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란함이 아니라 조용함 속에서 ‘세미한 소리’를 들으려고 기다리는 열린 자세가 아닐까. 하늘 보고 주먹질하거나 팔을 벌리고 떠드는 것이 어쩌면 무모한 짓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