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는 없는 것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누구입니까?”(마태 18,1~5;10;12~14)
세계의 크리스챤 공동체들은 마태오 복음의 산상설교(5~7c)와 공동체 설교(18c)를 공동생활의 헌장으로 삼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의 첫번째 가르침은 '참된 행복'으로 인생관에 관한 것이고 공동체설교의 첫째 가르침은 ‘겸손’으로 덕행에 관한 것 입니다. ‘기도하고 노동하라!’ 가르치신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규칙에는 ‘겸손’에 대한 가르침의 장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이근영 선임기자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제자들의 질문에는 명예심과 권위, 소유욕에 대한 잠배적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높은 사람의 개념 자체가 세상적 지상적인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하늘나라의 형식을 궁금해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대답은 명쾌합니다.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언감생심, 우승이 문제가 아니고 본선에 나갈 수나 있겠어? 하늘에서 큰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나 있겠는가? 를 먼저 생각해야 순서가 맞겠지요.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이처럼 작은 자, 겸손한 자, 낮은 자가 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겸손하게 낮추고 작아져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일까요?
뭐, 작아지고 작아지고 보이지 않게 너무 작아져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정도가 되면 되지 않겠는가? 가르치신 바있습니다. 바람같은 혼으로 남아야 겨우 가능하지 않을까? 바늘귀를 통과한 존재들에게 크다작다 높고 낮다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늘나라에는 누가 ‘크고 작고, 높고 낮고, 길고 짧고, 많고 적고’ 없습니다. 물 속의 붕어에게는 물이 필요 없을진데...
하늘나라에는 없는 것 없이 다 있습니다.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이 다 있습니다. 착한 사람과 좋은 삶만이 있습니다. 필요 없는 것은 있으나마나 여서 없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부자 가난한 이, 지위, 능력이 있고 없고 높고 낮고 크고 작고가 없습니다. 모든 존재의 자아가 실현된 곳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없지요. 그래야 하늘나라 자격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내 두 아들을 스승님의 오른쪽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제자들 중에는 어머니까지 나서서 아들의 인사 청탁을 한 경우도 있었지만 현실 정치에서 능력이 안되서 예수님을 따랐던 걸까요? 하늘나라에서 차지할 것에 관심이 그렇게 많았다는 거...
지상에서 욕망하고 추구하던 부질없는 것들을 하나 둘 버리고자 애써도 부족할 진데 어찌 그것을 하늘나라에서 마저 구하려고 할까? 아주 탄탄하고 영원한 소유와 권력과 명예를 구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 되는 것이어서야 되겠는가?
무소유의 공동생활이란 그런 하늘나라를 미리 선취하여 살자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 공동생활의 비결 한 수를 배웁니다. (2015. 8. ) *
길산이가 벌써 대학 4학년, 덕균이가 군대를 간다니, 세월은 남한강처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