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종교, 지옥의 정치
“기도 시간에 눈 뜨면 지옥 간다!” 어릴 적 교회 선생님은 이렇게 으름장을 놓곤 했다. 순진했던 나는 곧이곧대로 믿었다. 기도 드릴 때 눈 뜨면 그 즉시로 머리에 뿔난 시뻘건 괴물이 삼지창을 들고 나타나서 눈 뜬 아이들을 끓는 기름 솥에 처박아 버린다고 진짜로 믿었다. 그래서 기도 시간에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누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도, 이건 분명 사탄의 장난일 거라고 믿고 절대로 눈 뜨지 않았다. 지옥에 가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그 날도 여전히 기도 시간에 소란스러웠지만 꿋꿋이 눈 감고 버티고 있었다. 그 때 평소와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이상해서 설마 하며 긴장하며 실눈을 떴는데, 이런, 선생님들이 기도 시간에 시시덕대며 잡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제길. 마귀, 삼지창, 기름 솥 따위는 없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기도 시간에도 서슴없이 눈 뜨는 담대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눈 뜨면서 신앙의 눈도 뜨게 되었다.
당시 내 신앙은 지옥의 신앙이었다. 어떻게 하면 지옥에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게 신앙의 이유였다. 사실 그 때 교회의 메시지도 지옥이었다. 예배에 안 오고, 헌금 안 하고, 목사님 말씀에 안 들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며 죄의식과 공포심을 자극했다. 천국의 소망이나 하나님 나라의 기쁨보다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신앙의 동력이었다. 죄악의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할 교회가 지옥의 굴레로 신자를 억압한 것이다.
*영화 <선 오브 갓> 중에서
예수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가르쳤다. 그런데 그 때 교회가 주장한 진리는 인간을 협박하는 율법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를 세상에 보냈다. 하지만 어떤 교회는 죄인을 천국으로 구원하기 보다는 지옥으로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지옥을 모면하려는 공포의 종교보다는 천국에 도달하려는 소망의 종교가 진정한 기쁜 소식, 복음 아닐까?
공포의 종교는 공포의 정치를 닮았고, 공포의 정치는 파시즘을 닮았다.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의 저자 로버트 팩스턴에 의하면, 불안과 공포에 내몰린 대중들이 파괴적 성향을 내비치며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으로 결집하여 급진 우익 이데올로기를 만나면 파시즘이 일어난다. 그러고 보니 혹시 지금 이 나라가 파시즘의 나라인가 싶어 등골이 오싹하다.
최근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다. 화약 냄새 매캐한 군사적 대치가 일촉즉발의 위기 직전까지 갔다가 돌연 재개된 남북 대화로 최악의 사태를 면했다. 전쟁의 공포로 국민은 불안에 떨었으나, 남북의 정부는 체제 안정과 지지율 상승이라는 수확을 얻었다. 전쟁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정치는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신자의 내세를 담보로 지옥의 공포를 악용하는 종교가 지옥의 종교라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전쟁의 공포를 활용하는 정치는 지옥의 정치일 것이다.
이 천년 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지옥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다. 지금 이 곳에 예수의 정신으로 지옥의 종교, 지옥의 정치가 물러나고 사랑의 종교, 평화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소망해본다.
남오성(일산은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