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어느 해 봄엔가 비가 안 와서 모내기를 못 하고 있었다. 세상에 논을 호미로 파서 모를 심을 정도가 되었다. 산속에서 자잘하게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서 물지게로 아버지가 옮겨와서는 논에다 붓고 호미로 파서 모를 심어야 했다. 그때 우리 어머니는 소리내어 울었다. 그 좋은 논 다 두고 이런 논에다 모를 심는다고 말이다. 그 썩을 놈, 염병할 놈의 형제 때문에 온 식구가 다 고생한다고 울면서 넋두리를 했더랬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가 팍 죽어가지고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논에다 부으면서 말 한마디도 못 하셨다. 허리가 끊어지게 일하면서도 자기 형제 때문에 그랬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아버지의 그늘진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형이나 누나도 아무 소리를 못했다. 그런데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 지난간 일 탓해봤자 뭐할 거요? 그렇게 팔자 탓하고 작은 아버지 욕해서 뭐할 거요? 지금 농사라도 잘해야 우리 식구 안 굶어죽지, 지금이라도 하늘이 비 내려주면 안 굶어 죽고 우리 식구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눈물을 닦으시면서 내게 말했다. "이놈의 자식, 막내 자식은 언사도 좋고 성격도 좋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 다섯 남매가 침울하고 침통할 때, 막내인 내가 어머니를 달래며 가정의 웃음과 평화를 만들었다. <꽃씨 심는 남자-소강석 에세이>(샘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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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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