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한 은수자 카스티씨마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카스티씨마는 경건한 그리스도교신자 였을 뿐만 아니라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혜가 넘쳐났던 그녀는 미모 또한 남에게 빠지지 않았다. 그녀의 이 특출한 미모에 대한 소문은 이미 알렉산드리아에 쫙 퍼져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아주 신분 높은 귀족집안과 혼사를 할 것은 물론이고,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 것 이라는 단정까지 했다. 이런 딸을 둔 그녀의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떵떵거리는 집안의 사윗감을 멋대로 고를 수 있다는 자부심에 늘 차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딸을 알렉산드리아에서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는 한 귀족의 아들과 구두혼사를 맺어 버렸다. 그 시대의 관습에 따르면 이런 구두 결혼약속이 공식적인 약혼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른 소망을 품고 있었던 그녀는 코앞에 바로 이런 결혼이 다가와 버리자 너무나 당황했다. 그녀의 꿈은 수도원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고 기도하고 명상하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소망을 아버지께 알린다 한 들 대항할 자신은 전연 없었다 보니 차라리 다른 방편을 택했다. 아예 집을 도망 나오는 것이었다. 꽃다운 18살의 처녀 카스티씨마는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남장을 했다. 모습 또한 중세 수도자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는데 바로 머리 언저리에 머리칼이 없는 특이한 대머리였다. 이젠 이름도 바꾸어 알리아스 에머랄드라는 남자이름으로 남자 수도원에 입회했다. 그녀가 남장을 한 채 수녀원이 아닌 남자 수도원에 들어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가면 그의 아버지가 그녀를 당장 찾아 나설 것을 알았고, 그러면 그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들키게 되면 강제적인 결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젠 더 이상 카스티씨마가 아니었고 이젠 남자 알리아스 에머랄드가 되었다. 사실 이런 남장이 수도원에서 과연 잘 먹혀 들어갈까 하는 많은 걱정을 했었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게 남자 수도승들과도 합류하면서 잘 어울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녀의 너무나 아름다운 미모 때문이었다. 물론 남자수도승으로 분장을 한 그녀였지만 수도복 사이로 흘러나오는 여인의 美가 늘 눈부셨다 보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동료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상하게시리 동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관찰했던 것이다. 같은 남성(?)이었지만 그녀는 너무나 눈부신 꽃미남(?)
였던지라 그(녀)의 동료들이 그녀의 여성성을 넌지시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수도생활에만 전념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수도원 안에서도 서서히 불만이 생겨났다. 온전한 꿈을 채우기 위해 들어온 이 수도원조차도 그녀에게는 그리 깊은 만족감을 채워 주지 못했던 거다. 그녀의 온전한 바램은 공동생활보다는 고독 속에서 침묵하면서 홀로 신과 예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원했던 거였다. 드디어 그녀는 여길 떠나 동료들의 발이 뜸한 곳에 오두막집을 지어서 혼자 살 결심을 했다. 유럽의 성녀들의 전기를 보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 했다 ‚ 예수는 나의 신랑이다'이런 대목들이 자주 나온다. 카스티씨마도 간절히 그런 삶을 원했음이 분명하다.
딸이 사라져 버린걸 알았던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큰 슬픔에 잠기었다. 어쨌든 딸을 찾아 구두로 약혼했던 남자와 결혼 시키기위해 온 알렉산드리아를 다 뒤졌다. 하지만 그는 딸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도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갔으리라 넌지시 짐작하고선 온 수녀원을 다 뒤지고 뒤졌던 것이다. 딸을 찾다 지친 아버지는 한 수도원에 많은 기부까지 했다. 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을 했던 것이다. 기도 청탁을 받은 수도승들이 그녀가 다시 나타날 수 있도록 신께 간절하게 기도까지 드렸다.
이런 시간에 그녀는 오두막에서 고독과 침묵을 지키면서 경건한 종교적인 삶을 키워가고 있었다. 신은 수도승들의 기도를 외면하고선 이 여인을 숨겨 주었단 말인가? (신이 있어 이런 기도를 듣게 되다면 어느 쪽 원을 들어 주어야 한단 말인가? 심한 갈등이 일어날 것 같다. 정말 기도란 뭘까?)
많은 세월이 흘렀다. 한 수도원 원장이 파푸누티스가 아직도 딸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파푸누티스에게 딸을 대신할 수 있는 한 경건한 수도승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그도 이젠 딸 찾는 것을 포기해버리고 차라리 경건하다는 이 수도승과 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기로 마음 먹었다. 드디어 파푸누티스는 수도원장으로부터 토굴/오두막집에서 혼자 살아가던 한 수도승을 소개 받았다.
이 수도승이 누구였는가? 바로 그의 딸 카스티씨마였다. 물론 이 수도원 측에도 카스티씨마가 파푸누티스의 딸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수도승이 남장 여인 이라는 것까지도 미치지 못했다. 수도원장은 단지 한 경건한 수도승과 평신도의 만남을 주선 했을 뿐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고리가 부녀간에 새로이 얽히는 순간 이었다.
하지만 카스티씨마는 아버지를 당장 알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더 철저하고 매몰차게 숨겼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변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못 알아 볼 정도 였을까? 토굴에서 살았던 그의(?) 모습도 많이 변했음이 분명 할 것이요, 줄곧 기도하면서 단식한 삶에다 머리까지 깎고 남장까지 했으니 그녀의 변신을 눈치채지 못했음은 어쩜 당연할지도 모른다. 현대인이 얼굴 성형을 조금만 해도 달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카스티씨마의 입장에선 너무나 다행이었을 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버지와의 이 상봉 때문에 다시 집으로 끌려 갈 상황이 되
었을 것이다.
딸 인줄은 전연 모르고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이 수도승 딸과 영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 수도승의 종교적인 경건함과 지혜에 탄복을 하면서 많은 영적감화를 받았다. 하루는 파푸누티스가 딸을 소개해준 수도원장에게 감사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그는 이 젊은 수도승으로부터 많은 영적인 위안을 받고 있기에 너무 기쁘다고! 심지어 그토록 찾고 있던 딸을 만난 것 같다는 심정을 전했다. 사실은 그의 딸이었지만! 이렇게 아버지는 딸 잃은 마음을 진짜 딸로부터(?) 영적인 자양분을 받으면서 삶의 위로를 받았다. 이렇게 만난 이후 이들의 대화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실제의 딸을 눈 앞에 붙들고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아버지! 이것을 보면 어떤 인연이라는 커다란 줄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를 더러 옹매듭으로 매고 있다는 것을 상상 할 수 있다.
자그마치 3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남장한 채 토굴에서 잘 살수 있게 해 준 神께 늘 감사 드렸다. 카스티씨마, 아니 에머랄드는 이젠 56살이 되었다. 그녀에게도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미 백발이 되어 버렸던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죽어가는 이 수도승을 보기 위해 왔다. 딸 찾는 것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 수도승에게 청했다. 죽어서 천국에 도달하면 신께 자기가 잃어 버렸던 딸을 찾을 수 있게 좀 빌어 달라고 애원했다. 눈앞에 있는 이 수도승이 정말 자기 딸 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죽음과 사투하던 에머랄드는 이때 생각을 바꾸었다. 죽어가면서까지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 때가 기원 후 470년 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고백했다. "아버지"하고 그녀는 나지막하게 마지막으로 불렀다. "당신의 슬픔을 이제 끝내세요, 제가 당신 딸 카스티씨마 입니다."아버지 파푸누티스는 이 말을 듣고는 놀라 자빠져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마를 대로 마른 딸의 가냘픈 몸을 물끄러미 가슴 아프게 쳐다 보고 있는 사이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자 그녀의 性이 여자라는 것이 알려진 것은 당연하다. 그녀의 유물은 프랑스로 옮겨져 성 요한나 성당에 안치 되었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한 장님 수도승이 그녀의 죽은 몸에 손을 대자마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녀가 살아 생전에 했던 거짓말, 즉, 남장여인으로서 수도원에서 살았다던지, 아니면 평생을 아버지를 속였다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이 사실 엄밀히 말하면 교회법에 저촉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겐 예외적으로 이런 교회법의 잣대를 대지 않았다. 그녀가 남자 은수자처럼 신을 섬기고 살 방편으로 택했던 남장이었고, 그녀가 남장하고 부모를 속인 이유 또한 신을 섬기기 위함이었기에 무한대의 관용이 따랐다.
그녀가 죽고 나자 그녀의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그렇게 딸을 잘 보호해 주었던 수도원에 연거푸 감사를 드렸다. 감사의 표징으로 많은 그의 재산을 이 수도원에다 다 헌납했다. 그는 딸이 살았던 오두막에서 10년을 더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분명 딸과 다시 상봉 하였을 것이다. 1500년 전에 살았던 한 여인은 눈앞에 놓인 부와 미모를 다 놓아버리고 스스로 택한 가난과 고독을 끌어 않았던 그 '빈 모습’과 그것도 꽃다운 18살의 나이에 신의 경지를 찾아 떠났던 그녀가 넘 부럽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라도 놓지 못해 안달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