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 사성암
바위가 많은 산으로 가거라
조계사 불학연구소에 있을 때(2012년) 처음으로 조용헌 선생을 만났다. 아무른 약속도 없이 전화 한 통 후, 불쑥 등장한 것이다. 서울 볼일로 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고 했다. 연재하고 있는 신문칼럼과 몇 권의 저서를 이미 읽은 터이라 전혀 낯설지 않았다. '강호동양학'의 동호인으로서, 그리고 글팬으로서 저자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어쨌거나 기쁜 일이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렀다. 몇 달 전에 또 전화를 받았다. 졸작『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않다』를 잘 읽었다는 인사였다. 그 책 속에 선생의 말씀도 몇마디 인용한 것을 매개체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 공치사가 오고갔다. 8월 초순에 출판사에서 신간이 배달되었다. 조용헌 선생의 『휴휴명당』이었다. '도시인이 꼭 가봐야 할 기운 솟는 명당 22곳'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틀 만에 완독했다.
삼십년을 절집에 살면서 기운 솟는 명당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8년간의 수도승(首都僧:서울에서 승려노릇 하는 것)생활을 마감할 무렵이였다. 정말 "소진(消盡)이란 것이 이런거구나"할만큼 기진맥진한 상태가 계속됐다. 증세는 출근 후 하루를 버틸 수 없을 만큼 기운이 달렸다. 일이 무섭고 업무로 사람이 찾아오면 짜증부터 났다. 자가진단을 통해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기를 충전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갑자기 조용헌 선생의 '바위가 많은 산으로 가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평소의 독서가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이다.
*이병학 기자
그런데 도시에 살면서 고유업무 이외에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들이 서울을 떠난다고 함께 순식간에 정리되는 것은 아니였다. 그리고 본사인 합천 해인사와의 정기적인 인연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두 공간을 원할하게 오갈 수 있는 중간지점을 선택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한반도 지도를 펼쳤다.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또 기운을 솟게하는 바위산을 찾았다. 낙점한 곳은 충북 보은 속리산이였다. 다행이도 법주사에는 내가 머물 수 있는 빈 자리가 있었다. 그렇게 둥지를 틀었다.
절 마당에는 바위덩어리가 빙 둘러져 있었다. 문장대 가는 길은 바닥마저도 전부 바위였다. 시간만 나면 등산하고 돌문 사이로 산책하며 살았다. 또 바위 위에서 땀을 식히며 아무 생각없이 한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방전된 건전지가 충전되듯 하루하루 몸기운이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일년 만에 탈진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휴휴명당』목차에는 '나의 명당'속리산이 빠져 있어 약간 서운했다. 그 대신 속리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인근의 괴산 환벽정(環碧亭)을 등재해 놓았다. 하지만 그 때는 가보지 못했다. 기가 강한 곳임을 몰랐기 때문이다. 진즉 이 책이 나왔더라면 환벽정을 오가면서 더욱 급속충전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쉽다. 조선후기 노론세력이 300년간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명당을 찾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연마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석까지 붙였다.
장성 백양산 약사암은 흰색바위 절벽의 중간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약사암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영천굴(靈泉窟)의 약수는 천년동안 민초들의 병을 고쳐준 역사를 자랑하는 신령스런 샘물로 소개했다. 그 이유는 흰바위의 기(氣)를 듬뿍 머금은 물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얼마 전 열반하신 법전(1926~2014) 은사스님을 떠올렸다. 언젠가 영천굴에서 기도한 일을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대동아 전쟁 때 징집을 피하기 위해 당신께서 숨어 기도한 곳이였다. 젊은 사람은 스님이건 민간인이건, 가리지 않고 무조건 전부 끌고가던 시절이었다. 기도를 회향하는 날 절 마당에 당시로서 매우 귀한 승용차가 들어오는 꿈을 꾸셨다고 했다. 그 현몽 때문인지 징집을 피할 수 있었다. 이유는 해방이 왔기 때문이다. 승용차는 광복을 상징한 것이였다.
22곳의 기운 솟는 명당의 대부분이 절집이다. 템플스테이도 이 책의 논리대로 하자면 결국 기를 충전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성지순례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절집에서 먹은 밥그릇 수가 만만치 않은 까닭에 대부분의 명당에서 알게 모르게 이미 기를 충전받은 셈이다. 이제 욕심을 더하여 절집을 제외한 서너 군데 가보지 못한 명당의 기까지 보태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해지는 파주 교하리와 김제 학성강당, 그리고 계룡산 향적산방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꼭 들러봐야겠다. 내친 김에 저자의 토굴인 휴휴산방까지 덤으로 끼워넣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