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환 추모 20주기 이끄는 이정배 교수
종교재판이 중세 가톨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영국국교회 권위에 도전했다가 사제직에서 파면당했고, 그 200년 뒤 우리나라에서도 감리교 대표적 신학자가 극우파 김홍도 목사가 이끄는 금란교회에서 3천여명의 신자들에 에워싸인채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됐다. 그 종교재판으로 감신대 학장직은 물론 목사직, 신자직마저 잃은 지 3년만에 세상을 뜬 변선환 박사(1927~1995) 20주기를 맞았다.
변선환의 제자 이정배(60) 감신대 교수는 6일 “스승을 뵐 면목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고 변선환 박사
아니나 다를까.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신대는 이날 변선환 20주기 추모 행사 시작과 동시에 재단 이사회에 대한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로 일부 교수가 단식을 시작하는 등 20년 전의 아픔이 여전한 듯했다. 감신대의 상당수 교수와 학생들은 ‘전임 이규학 이사장이 전횡에 대한 반발로 물러나면서 선임된 김인환 새 이사장마저 과거와 단절보다는 수구를 택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안식년인데도 스승의 추모 행사를 위해 학교에 나온 이 교수는 “변선환은 교회권력에 의해 학교가 지배 당하는 것을 가장 염려했는데. 이런 악순환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뿐일까. 변선환이 그토록 주창한 기독교의 토착화가 제자리 걸음인 것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변선환은 “아시아인이 아시아의 민중성을 놓치면 아시아의 신학일 수 없다”며 “기독교가 아시아의 종교들과 함께 세상을 위한 공동체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불교의 이기영 교수, 유교의 유승국 교수, 민중신학자 안병무 교수, 강원용 목사, 가톨릭의 심상태 신부 등과 깊이있는 대화와 교류를 해왔다.
기독자교수협의회장을 지낸 이 교수도 스승의 뜻에 따라 주자학을 공부했고, 대화문화아카데미 활동 등을 통해 이웃종교와 다양한 교류를 했다. 변선환의 중매로 만난 그의 부인 이은선 세종대 교수(여자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도 스위스 유학에서 ‘페스탈로치와 왕양명’을 공부했고, 동학에도 조예가 깊다.
*이정배 교수
이 교수는 “변선환은 ‘전인류를 구원하실 때까지 기독교인만의 구원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한 것인데, 이를 두고, 보수 목사들이 ‘예수가 흘린 피는 개피냐’고 성도들을 자극해 종교재판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변선환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살길을 모색하지도 않고, 순교자가 되어 죽는 길을 택한 올곧은 학자였다. 한국 교회는 변선환 개인을 내친 것이 아니라, 그가 주장한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넓은 사상을 품지 못하고 시대의 흐름을 배척해버렸다.”
그러나 이 교수는 신념은 굳었지만, 제자들과 이웃들에게 자상하기 그지없었고, 민중을 사랑했고, 기독교의 토착화를 선도했던 스승의 맥이 끊어지지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보수 교회는 변화가 없음에도, 희망의 싹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변선환의 모교로 미국의 명문대엔 드류대에서도 2년 전 변선환의 사상을 기리는 국제세미나가 성황리에 열렸다. 또 5일 경기도 용인 변선환의 묘소를 찾은 길엔 제자들 뿐 아니라 제자들의 제자, 그 제자들까지 40여명이 함께 찾아 ‘변선환이 못 이룬 꿈을 이루기’를 기도했다.
감신대에선 이날 100주년기념관에서 변선환 어록과 사진 작품전을 열어 8일까지 전시한다. 또 8일 오후1시엔 김경재 한신교 명예교수가 설교하는 추모예배와 심포지엄 및 <선생님 그리운 선생님 변선환>,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