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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여유있게,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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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여유 있게, 느리게!  
 
2013년 06월 11일 <당당뉴스> 박철 pakchol@empal.com  
 
 
시나브로 계절은 망종(芒種)을 막 지났습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 셈입니다. 계절은 내가 직면한 시간의 단면으로 생각할 때는 엄청 느리고 더딘 것 같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움직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그야말로 속도와의 전쟁입니다. 더 많은 경험과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속도이기 때문이지요. TV광고나 언론 매체들은 모두 빠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 집엔 아이들이 셋입니다. 큰아들이 대학교 4학년, 둘째아들이 3학년, 늦둥이 딸이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모두 취업과 진학에 바빠 새벽에 집에서 나갔다 밤12시에 집에 들어오기 일쑤여서 거의 아이들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딸 입에서 단골로 나오는 말이 ‘바쁘다’는 것이고, 밥을 먹어도 허둥지둥 이고,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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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의 다랭이 마을의 풍경. 자연은 순리에 따라 천천히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은 속도 경쟁의 시대입니다.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삶을 갖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 속도이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이나 인터넷 CF들은 모두 빠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아이들 교육도 정규과정보다 더 빨리 선행학습을 위해 사교육비를 지출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빨리 성공하고자 경쟁합니다.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주기도 점점 짧아집니다.

따라서 속도와 경쟁의 시대에서 우리는 또한 삶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삶의 의미란 속도보다는 사색과 고민, 고독, 느림이라는 단어에 더 잘 어울립니다. 속도에 빠져 있을 때는 내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그리고 속도와 경쟁, 효율성을 따지다 보면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속도를 높이는 것이 더 많은 경험과 재화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경험과 삶을 소유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것 보다 속도와 경쟁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삶의 의미란 속도보다는 사색과 고민, 고독, 느림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립니다. 속도에 빠져 있을 때는 내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일테면 삶의 방향 상실자가 되고 맙니다.

중세시대 수도사들은 ‘스타티오’(statio)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스타티오’는 라틴어로 ‘머물고 있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의 의미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한 가지 여유를 갖는 것, 책을 읽은 후 잠시 내용에 대해 묵상하거나, 전화를 하기 전에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 등….

우리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기를 보지 않으면 ‘빨리 빨리’를 외치는 세상의 파도 속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느려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일, 자연이나 사물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 저녁에 가족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면서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일 등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십자가 성호를 긋듯이 자기 내면을 응시하며 주문을 겁시다. “천천히, 여유 있게, 느리게!”
 
*이 글은 당당뉴스(http://www.dangdangnews.com)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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