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주인공 청소년들 가슴에는 대부분 아픈 가정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인생의 산전수전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이 글은 유혹과 열정, 막무가내 용기로 살았던 자신들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그것을 통해 같은 청소년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하는 또래 멘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곳, 분류심사원은 법원 차를 타고 간다. 도착하면 수갑을 찬 채 교육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문신이나 야매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한 후 사무실 쪽으로 옮겨진다. 여기서 옷을 벗고 키, 몸무게, 피검사, 혈압, 시력 검사를 받는다. 피검사에서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도 나온다. 임신테스트도 한다. 유화 언니는 자기가 임신한 사실을 여기서 알게 되었다. 그 언니는 하루 종일 아이 때문에 울었다. 옷은 정해진 것으로 바꿔 입는다.
신입방, 본방, 재범방…CCTV로 낱낱이
검사가 끝나면 신입 방으로 들어가는데 열여섯 살 이하와 이상으로 나누어진다. 방은 신입방, 본방, 재범방이 있다. 나는 그날 오후 7시에 신입 3반으로 들어갔다. 새로 들어오면 모두 지켜야 하는 준수사항을 방 안에서 열 번씩 쓴다. 이걸 왜 써야 될까? 규칙을 어기면 기간이 연장되니까 쓰면서 되새기고 잘 지키라는 경고다.
복도는 밤에도 밤새도록 불이 밝혀져 있고, 방에는 형광등이 꺼지는 동시에 벽에 붙어 있는 스피커 전원이 켜진다. 연결된 인터폰도 여전히 빨간 불이다. 만약 우리가 누워서 떠들면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대로 해야 한다. 이불 위에서 10분 정도 정좌하고 앉아 있으라거나, 태도가 더 안 좋으면 손들고 서 있으라고 말한다. CCTV는 각 방은 물론이고 복도, 교육장, 식당 등 우리가 움직이는 곳에는 모두 다 있다.
기상은 아침 6시 30분. 세수를 하러 가는 곳은 릴레이식이다. 우리 반 3반이 갔다 오면 그 다음 4반이 가는 식이다. 아침밥은 7시 10분에 먹는다. 밥을 먹기 위해 복장을 단정히 하고 여자아이들은 머리를 묶는다. 또 먹기 전에 항상 차례대로 앉으면서 번호를 외친다.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안 하면 끝까지 하거나, 무릎 꿇고 30분 동안 반성하게 한다. 7시 40분까지 밥을 먹는다. 50분부터는 남자 아이들이 먹는다. 식사 끝에 선생님들이 약간 연설을 하고 오늘 시간표에 대해서 알려준다. 양치질을 한 후, 각방에 들어가 정좌하는데, 아빠다리를 하고 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 자세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참아야 한다. 스피커로 선생님이 편안한 자세로 있으라 하면 그때 양쪽 다리만 펼 수 있다.
» 영화 <돈 크라이 마미> 한 장면.
보통 하루 일정은 이렇게 아침에 밥 먹고 방에 들어갔다가 교육장에서 책을 읽는다. 점심 때도 밥 먹고 양치하고 조금 쉬었다가 교육장에 올라가서 또 책 읽고 TV를 본다. TV는 사무실에서 틀어준다. 교육장에서도 CCTV에 나의 행동이 기록되고 선생님이 늘 계신다.
목요일에는 ‘푸름이 방송’이라는 게 있다. 컬투쇼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내용은 노래와 함께 각 지역 소년원과 분류심사원에서 보낸 편지와 사연을 들려준다. 또 여기를 거쳐 간 사람 중 성공한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도 보여준다. 일요일에는 종교집회가 있고, 월요일에는 주부집회라는 것이 있는데, 엄마들이 와서 기도해 주고 찬송가를 불러준다.
어느 때는 점심 후에 앞으로 보호처분을 어떻게 받는지 개인적으로 알려 준다. 우리 전체를 대상으로 대강당에서 변호사가 법에 대해 알려줄 때도 있다. 그럴 때만 우리는 집중하고 반응을 보인다. 앞으로 내가 어떤 처분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중요한 문제니까. 대강당에 모일 때면 남자들은 뒤쪽에, 여자들은 앞쪽에 앉는다. 여자들은 뒤를 돌아보면서 남자 애들에게 막 욕을 한다. 안면이 있으면 ‘야, 누구’하면서 또 욕을 한다. 남자들은 ‘누구 이쁘다’하고 외치고 “나, 내일 나간다”며 소리를 지른다. 여기 우리들의 말은 보통 욕이고 소리 지르기다.
욕하고 소리 지르고…, 담배, 본드 금단현상에…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는데 뒷면에는 꾸중마크, 칭찬마크 칸이 있다. 꾸중마크 세 개를 받으면 혼자서 샤워실, 화장실, 교육장 청소를 한다. 다섯 개면 선생님이 특별교육을 한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판사에게 넘겨질 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고 들었다. 평소에 면회시간은 15분. 만약 칭찬마크가 다섯 개면 특별면회 1시간을 준다.
여기서도 정신 못 차리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는 재판을 받고 당연히 집에 갈 수 있다고 혼자 판단하고 착각한다. 그래서 초반에만 규칙을 좀 지키다가 본방에 가면 다른 애들 무릎을 베거나 벽에 기댄다. 방송으로 선생님이 “일어나! 일어나!”해도 안 일어난다. ‘내 몸인데 왜 눕지 못하게 하냐’며 선생님께 따지러 가기도 한다. 그들은 누구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여기 나가면 이 사람들하고는 평생 상관없어”, “난 재판받고 나가면 끝이야”라고 한다. 계속 규칙을 어기고 선생님께 대들면 독방에 간다. 독방에서도 소리 지르고 선생님께 폭력을 쓰면 밧줄로 묶인다.
이상한 언니도 있었다. 선생님과 만날 싸우고 아∼악 소리를 질렀다. 만날 누워 있고 간식도 아이들 것 빼앗아 먹고, 밥 먹을 때도 맛있는 거 나오면 얼른 더 먹고……. 담배를 여기서는 못 피우니까 연필을 잡고 담배 피는 흉내를 낸다. 또 드링크 빨대 속에 치약을 짜 넣어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다. 본드했던 아이들은 빵 봉투에 치약을 짜넣고서 숨을 들이마신다. 또 하루에 한 번씩 아픈 사람이 가는 의무과에 가서 허리에 바르는 파스를 받아 손에 비벼 냄새를 맡는다.
여자생활관 쪽에 남자생활관이 보이는 창문이 하나 있다. 운동장은 여자와 남자 생활관 사이에 있다. 여자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들에게 창문으로 막 소리를 지른다. 양쪽 건물 사이의 운동장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 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난 그 메아리 소리가 언제나 이렇게 들려 왔다.
“나, 외로워~”
“나, 슬퍼~”
“나, 외로워~”
경험 하지 않는 너에게친구야!이 글을 쓰는 동안 다시 한 번 그때를 되돌아 보았어. 12월 20일. 분류심사원에 가기 전, 나는 보호관찰소에 먼저 가야 했어. 1년 동안 난 보호관찰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행을 하고 다녔거든. 더 이상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보호관찰소로 향하는 나는 너무 긴장되고 무서웠는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어. 그때 핸드폰이 울렸어. 아빠였어. 그저 빨리 가보라는 말뿐이었어. 그래도 아빠랑 통화를 하고 난 뒤라 그런지 마음이 그나마 편안해졌어. 나는 보호관찰소에 도착하여 담당 선생님을 찾아뵈었어.“잘 왔다. 소지품 다 꺼내 놓고 저기에 앉아 있어라.”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조용히 원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소지품을 꺼내 놓고 의자에 앉았어. 그리고 잠시 후에 내 손목에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지고 나의 손과 허리에 포승줄이 묶여졌어. 난 그때서야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어. 자유를 마음껏 누리던 난 포승줄과 수갑에 점령당하였고 화장실을 갈 때도 선생님 팔에 이끌려가야 했어. 나는 의자에 앉아서 그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 왜 위반을 하였는지 조사를 받고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 선생님은 “그만 울고 밥 먹자”고 하셨어. 나는 “입맛이 없어요. 그냥 안 먹을게요”라고 대답했어. 분명히 아침밥도 먹지 않았는데 배도 고프지 않고 속이 꽉 막힌 느낌이었어. 계속 울고 지쳐서 그런지 나는 의자에 앉아 잠시 잠이 들었어.“지수야. 일어나서 밥 먹어라.”선생님은 안 먹겠다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내 앞에 놔주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짬뽕이 정말 맛있어 보였는데 먹기는 싫었어. 그래도 한 번 먹어보겠다는 의지로 젓가락을 들고 한 입을 먹었는데 도대체 넘어가질 않고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그때 선생님께서 “왜 안 먹니?”라고 걱정스레 말했어. 나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어. 선생님은 나에게 걱정 말라는 눈짓을 하고는 내 앞에 음식을 치워주셨어.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선생님께서 가자고 했어. 나는 다시 두 분 선생님들 손에 이끌려 지하주차장으로 향하였고 차에 올라탔어. 잠깐의 침묵 뒤에 선생님께서 “아빠에게 전화해봐라”고 하시곤 내 손에 휴대폰을 쥐어 주었어. 나는 포승줄에 묶히고 수갑을 찬 채 휴대폰 번호를 어렵게 누르고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 아빠는 곧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미안하다”라고 하셨어. 나는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라고 한 뒤에 우리 두 사람은 계속 울었어. “아빠, 나 지금 서울 분류심사원 가고 있어”라고 하자 아빠는 “아빠가 다음에 면회 갈게”라고 하셨어. 면회라는 단어와 아빠가 우는 소리를 들으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 통화를 끝내고도 계속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아졌어. 얼마나 울었을까.분류심사원에 도착했어. 나는 차에서 내려 심사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선생님이 오른쪽 초인종을 누르니 안에서 사람이 나와 지문을 찍어 문을 열리게 했어. 굳게 닫힌 철장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 들어가자 나를 점령했던 수갑과 포승줄을 풀어 주었어.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시며 나의 온몸을 샅샅이 검문하고 또 검문하였어. 그리고 나서 다 같이 지내는 방으로 들어가 앉았어. 구석마다 나를 감시하는 CCTV와 마이크로 무엇을 말하면 우리는 거기에 따라 이동하고 움직이게 하는 스피커……. 나는 정말로 답답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암울해졌어. 그렇게 하루를 마쳤어.다음날 아빠가 면회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어. 지문인식을 해야 나갈 수 있는 두 개의 문을 통과하면 또 다시 면회장 사이에 굳게 닫힌 철장을 열고 나서야 아빠와 대면할 수 있었어. 아빠와 나는 서로 보자마자 그저 울기에 바빴어. 15분이라는 짧은 면회시간이 더욱 더 짧게 느껴졌어. 아빠는 사온 빵과 과자 그리고 음료수를 바쁘게 까주고 나는 울면서 먹고 또 먹었어.“이제 5분 남았습니다.”나는 그때서야 말문을 열었어.“아빠 정말 미안해. 정말…….”나는 아빠 손을 꽉 잡으며 말했어.“아니야, 우리 딸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있어야 해.”그때 면회가 끝났어. 아빠에게 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철창문만 보며 걸어갔어.분류심사원. 나는 거기서 4주를 보내고 2011년 1월, 수원지방법원으로 향했어. 다시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법원에 도착하여 까치방에서 재판 차례를 기다렸어. 기다리는 내내 긴장이 되어 미쳐버릴 것 같았어. 긴 시간 뒤에 내 차례가 되었어. 나는 판사님이 계시는 법정 안으로 들어갔어.친구야!이런 경험을 한 나로서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 글을 쓴 이유도 오직 그거야. 넌 절대 이런 경험을 하면 안 된다는 거. 네가 뭐든 다 해도 좋아. 마음껏 놀아도 괜찮아. 다만 다만, 죄만은 짓지 마. 죄를 지으면 그 결과로, 나처럼 사람이 죽을 때까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게 되고, 하지 않아야 될 경험을 하게 돼.거듭 말할 게. 나처럼 놀기 좋아하는 친구야!뭐든지 하면서 마음껏 놀아. 하지만 죄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놀아야 돼. 죄만은 안 돼. 부탁이야. 아름다운 기억들로 채워도 모자랄 삶의 시간에......
오늘이 비록 그늘이어도
-남민영 수녀
따뜻한 햇볕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그늘에 앉아 있어도 햇볕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그늘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기에
따뜻함, 위로, 받아들여짐, 평화……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은
오늘이 비록 그늘이어도
언젠가 또 따뜻한 햇살이 나를 비출 것을 희망한다.
주님!
부활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 이 계절에
그 빛을 누리지 못하고
눈 멀고, 마음 멀고, 몸마저 차가운 그늘 속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체험이 필요하고,
힘들 때 꺼내어 위로 받을 수 있는 추억이 필요하며,
‘난 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한다’라고 이야기 해 줄
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
사랑 때문에 죽음의 저 끝에서도 차마 편히 쉬지 못하고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신 당신의 부활의 빛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소서
저희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사랑을 건네는 부활의 빛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