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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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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매춘녀와 마지막을 교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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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는 많은 죄를 용서받고 큰 사랑을 드러냈다.” (루가 7,36~50)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진 것은 무엇일까? 가진 것이 없어 내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자기 몸이겠지요. 피와 모혈세포를 내줄 수도 있고 안구를 줄 수도 있고 간과 신장을 내줄 수도 있고 신체를 의학도들의 교재로 내줄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대지의 초목들에게 퇴비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몸입니다.
 노동력이 있어도 사줄 곳이 없고 자신과 가족이 굶어야 할 때 몸을 팔게 되고 그래서 동서고금에 매매춘의 역사가 이어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고 별종 인간으로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이웃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해 그들로 하여금 몸을 팔게 만든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고 매춘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 비정하며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으로, 정말이지 안 될 말입니다.
 청년시절의 이야기 하나. 1982년쯤인데 한국일보 사회면에서 용산 역전의 윤락여성들이 동호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조그만 박스기사를 보았습니다. 당시 나환자 자녀들과 행려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과 협력활동을 하고 있던 우리 몇몇은 그들을 수소문하여 찾아갔습니다. 그 인연으로 그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냈고 몇 가지 사건과 체험을 겪었습니다. 그 활동에 참여한 자매가 오늘날 용산의 ‘막달래나의 집’을 만든 인연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건데 예수님께서는 매춘녀들이 율법학자들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일찍이 이 세상에서 받을 손가락질과 비난과 심판을 이미 다 받아버렸기 때문에 하느님도 문책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으며 눈물로 닦아드리던 여인의 행실이 죄 사함을 받음에 감지덕지한 행위라고만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큰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내용의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에 보면 그 여인의 행위에 대해서 예수님은 “나의 장례를 위한 일이다”라고 하신 것을 주목합니다.
 예루살렘의 비장한 분위기의 밤인데도 제자들은 아무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세 번씩이나 귀띔을 해주었건만, 정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을 예상하였기에 향유도 바르지 못하고 묻히게 될 운명의 날을 예감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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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사함 받음을 넘어 예수님과의 아주 큰 합일의 공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어쩌면 돌팔매질하려고 둘러싼 사람들 가운데 앉아 땅에 묵묵히 무엇인가 그리고 계셨던 예수님의 그 침묵의 시간에 그 여인과 깊은 영적 교감을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너를 비난하여 돌로 쳐 죽이려 하느냐? 두려워 말라! 머지않아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단다! 나와 함께 죽는다고 생각하라!”
 영적 차원의 교감을 모르는 자는 말을 하지 말아야지. 그 여인은 죄 사함에 감동받아 우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기에 슬피 눈물을 흘리며 발을 닦아 장례예식을 미리 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앞에 벌어지는 고난에 함몰되면 안됩니다. 그 넘어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는 자신이 더 중요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으니까요.
 사제서품에 탈락되어 추운 동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제들은 자신이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신부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훌륭한 사제가 되고 다른 동창신부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영성을 지닌 신부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지난 성찰의 시간들이 은총의 계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정주생활을 하는 가족들과 홈스쿨링을 하는 꼬뮌 학생들은 어떻게든 마을 생활의 시기를 견디고 살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주생활을 통해서 진정한 공동체인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리 삶에만 주어지는 은총을 발견하는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련 속에 우는 사람들아, 눈물로 주님의 운명에 합일되라! 시련 너머에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015. 9. 17) *
 하늘은 높고 소들은 살찌는데, 닭들은 왜 알을 적게 낳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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