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원하면 성 전환까지 할 수 있는 시대다 보니, 어쩜 남장 여인들 얘기가 별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세나 근대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비추면 상당히 별스런 얘기 속한다. 그 잣대는 성서 모세 5장 22,5: 여자는 남자 옷을 입어선 안 된다. 남자는 여자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었다. 이 근거로 여자가 남장을 한다는 것은 철저한 금지사항에 속했다. 이들은 물론 동성연애자들은 아니었고, 단지 남장으로 변장했다는 것이다.
유럽사에서 이런 남장 여인들이 대략 1500-1800년 사이에 자주 등장했다고 탈켄베르거 박사가 밝혔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잠시 즐기기 위한 축제 때나 카니발 때는 남장이 허락되었다. 또 여행 중엔 때론 남장 허용도 되었는데 남자 접근 방지용 방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명한 학자인 훔볼트가 로마 여행 때 두 딸을 데리고 갔다. 이때 아버지는 두 딸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동행했다고 한다.
“자매처럼 살았다” 법정 진술…서류 위조죄로 추방
이런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이 왜 남장을 하였을까? 이들이 들키지 않고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그럼 들켰을 경우는? 먼저 이들의 남장 동기는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말하자면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택했던 것이다. 당시 여자들에게 일거리란 하녀 일이 거의 전부였다. 만약 해고라도 당하면 기껏 다른 방도라 해봐야 매춘녀로 나서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바로 남장이었던 거다. 남장을 하면 남성들 일자리 영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들켜 법정에 선 여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얘기가 흘러나왔다.
역사에 남겨진 법정기록을 통해서 보자. 27살 먹은 마리아 폰 안트베르펜 얘기다. 1746년 어느 날 그녀는 하녀 일자리에서 해고당했다. 먹고살기가 막막해지자 생각해 낸 것이 남장이었다. 완벽하게 남장을 한 후 밤에 도망을 쳤던 그녀는 길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그가 그녀를 군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다. 이젠 이름도 남자 이름인 얀 폰 안트로 바꾼 그녀는 군인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남장 여인은 재주도 좋았다. 후에 장교의 딸인 요한나 크라메르스와 결혼 하고선 가정까지 꾸렸다. 그렇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녀의 남장이 들통나 버렸다. 하녀로 일한 적이 있었던 집주인이 마리아를 알아보았던 거다. 이 일로 평화롭던 이 가정은 그만 깨져 버렸고 법정일로 번졌다.
너무 신기하지 않는가? 남장 여인 마리아가 자기 부인(?) 요한나를 3년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다니! 후에 부인(?)인 요한나의 진술도 요상했다. 자기 남편이(?) 너무나 철저하게 가장으로 잘 살았노라고 했다. 남편은(?) 파이프 담배를 멋있게 피웠고, 자주 낚시도 갔다. 심지어 재봉틀로 옷까지 만들곤 했었다고 진술했다. 하여간 부인(?) 요한나는 남편이 남장을 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3년간 자매처럼 살았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3년 동안 그녀의 남편(?)이 여성 인줄 몰랐다 하니 너무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다. 그렇지만 이 남장 여인 얘기는 법정진술을 토대로 나온 얘기였다보니 믿을 수밖에 없다.
법정도 판결을 내려야겠는데 골치거리였다. 어떤 죄목으로 그녀를 다루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다가 어쨌든 판결은 내려졌다. 그녀가 속이고 한 결혼에는 아무 죄목이 없었고 단지 서류 위조죄를 걸고 넘어졌다. 즉 여자가 남장을 했고 이름까지 변경한 것만을 죄목으로 다루었던 거다. 그 지방 법을 어기고 결혼제도를 어지럽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녀는 결국 추방당했다.
법망 피하기 위해 선택도…부인이 동성애자 추정
1900년도에 일어났던 코로넬이라는 여인의 스캔들도 있었다. 이 여인 역시 남장을 하고선 엘프리다라는 여인과 결혼까지 했다. 자그마치 7년 후에 그녀의 남장이 발각되어버려 역시 법정에 섰던 경우도 있었다고 탈켄베르크 박사가 언급했는데, 남장 여인이 다시 여자와 결혼한 것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그는 말했다.
필자가 추측하기엔 이런 부인들(?)은 동성애자가 아니었을까? 만약에 동성애자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3년을, 7년을 부부로서 살 수 있었단 말인가? 물론 법정에 섰던 두 얘기 사이에는 시대적인 차이점은 있다. 마리아는 거의 중세에 가깝고, 코로넬은 거의 현대에 가깝다는 것이다.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범죄 후 순전히 법망을 피하기 위한 남장도 있었다. 바런츠라는 여인이 그 예다. 1705년 부모를 살해한 그녀는 즉시 남장을 하고 달아났다. 마도로스 복장에다가 담뱃대를 빨면서 완벽한 남자 역할을 했지만 결국 곧 체포되었다. 반대로 이런 범죄망에서 교묘히 잘 빠져나간 여인도 있었다. 17세기에 런던의 지하세계에서 소매치기로 살았다는 메리 피리트라는 영국 여인의 경우다.
남장을 하고선 네덜란드의 무역 배를 탔던 마그레텐 얀스라는 여인을 보자. 태양이 지글지글 끓는 아프리카 부근으로 배가 지나갔을 때다. 이런 더위에도 그녀는 껴입었던 옷을 벗지 않자 동료들의 원성이 자자해져 두려움에 떨었다. 마침 배가 아프리카 항구에 정박했기에 아프리카 애인(?)을 만나러 간다는 구실로 배에서 내리면서 순간을 모면했다. 하지만 요리조리 이유를 대면서 잘 피했던 그녀도 결국 남장 행각이 들통나 버렸다. 하기야 들통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 자료에 남았을 것이다.
선서하면 남자로…어기면 산 채로 매장당하기도
마지막으로 밀레나 무스학이 전하는 특이한 얘기를 보자. 1850년의 발칸반도의 산악 지방에서 나온 기록이다. 이 지방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늘 확연하게 구별되었다. 여자는 순종형으로 키웠고 거기에 또한 길들여졌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선서를 하게 된 여인들은 남자와 동등한 역할을 해야만 했다. 동시에 일생 동안 남성으로서의 의무와 지위가 주어졌다.
특히 대를 이을 남자가 없는 집에 여자애가 태어났을 경우다. 이런 집에선 아들이 태어났다고 바깥으로 공포해 버리고선 이 여아를 완전히 남자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후엔 아버지의 자리를 잇는다는 선서까지 시켰다. 평생을 남자 옷을 입고 남자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자로서 최고의 권위 상징인 무기까지 지닐 수 있었다. 이런 역할을 평생 철저하게 행하다 보면 본인 스스로도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 버린다고 했다.
그럼 선서 후 이런 역할을 어길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돌로 쳐 죽이거나 심한 경우엔 산 채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운명적으로 이런 남자 역할을 해야만 했던 경우는 자기가 스스로 원해서 남장을 하는 경우와는 상황이 전연 다르다.
몇 년 전 한국 TV에서 방영되었던 조선시대의 얘기인 ‘바람의 화원‘에서의 남장 여인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