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이 빠져서는 진정한 호흡도 할 수 없다
마음을 순우리말로 하면 ‘얼’이다. 얼은 우리 몸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얼이 빠져’서는 집에 해당하는 몸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을 들여다보면 24시간 중 단 몇 분도 ‘얼’, 즉 마음이 몸 안에서 머물지 못한다. 마음은 온통 다른 바깥 사물이나 과거, 미래의 허상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 늘 몸 안에 머물지 못하니 인체 내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대책을 강구할 수가 없다. 몸과 주인인 마음이 괴리되어 일체감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선 병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쉽게 몰두하지 못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생각(念)이란, 지금(今) 현재의 마음(心)으로 내 몸을 비롯한 주변 사물의 변화를 자각하는 것이다. 마음이 몸을 떠나지 않고 항상 지금 현재의 상황에 깨어 있다면 더 이상 그러한 사고나 실수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마음, 즉 천방지축으로 놀아나는 마음을 한곳에 붙들어 두는 명상법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지관법(止觀法)이다.
지법(止法)이란, 말 그대로 특정한 대상에 마음을 머물게 하면서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벽에 검은 점을 찍어 놓고 시선을 고정시켜 계속해서 바라보거나,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일체 다른 생각이 일지 않도록 집중하는 화두선(話頭禪)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마음의 집중 훈련은 변화무쌍한 대상을 관찰하는 관법(觀法)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요건이다. 즉 지법이 잘 되지 않고서는 관법을 올바로 수행할 수 없다.
관법(觀法)이란, 지법을 통해 터득한 집중법을 적용하여 작게는 우리 몸 내부에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을 내관(內觀)하여 놓치지 않고 파악하는 법이다. 관법을 제대로 하면 마음이 한 시도 몸을 떠날 수 없으니 내부의 아주 작은 문제에도 곧바로 대처할 수 있게 되고, 몸에서 큰 탈이 생길 여지도 사라진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관법의 수행은 여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서는 관찰대상을 놓쳐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다른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 나라의 주인인 임금이 정사에 몰두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져 있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몸의 주인인 마음이 몸을 떠나 망상에 휩싸여 있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영화 <할> 중에서
마음을 몸 안에 머물게 하는 방법 역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전해져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좌선을 하건 와선을 하건 우리 몸의 변화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코끝을 집중하며 들고나는 숨을 관찰하거나, 혹은 호흡의 변화에 따른 복부의 들고남을 주도면밀하게 바라본다. 처음에는 대부분 2~3분도 지나지 않아 상념에 빠져 관찰대상을 놓치는 게 다반사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서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망상들에 사로잡혀 사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망연자실할 것이다. 그러나 망상들에서 벗어나 현재의 마음에 깨어 있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떠오르는 망상들을 그 순간 마음을 통하여 인식하게 되면 사라지게 하는 법 또한 무수히 많다.
‘잠의 마법’에서 추구하는 것 또한 ‘몸 안에서 늘 깨어 있기’이다. 그에 대한 사전준비로 행하는 것이 바로 종식법과 같은 호흡법이며, 더 나아가 입면의식을 통해 올곧은 마음으로 내 삶을 개선시키는 것이 잠의 마법을 실천하는 궁극적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