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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영화가 생각난다. 동자승 녀석이 물속 개구리며 뱀을 실에 묶어 잔돌을 매달아 놓는다. 그것들은 앞으로 나가보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얼마간 안간힘을 쓰다가 죽어버렸다. 그 녀석은 커서, 정을 통한 젊은 처자 쫓아 속세로 가서 살인까지 하고 저 스스로 묶어놓은 돌에 짓눌려 발버둥 쳤다. 그리고 되돌아와 중노릇하면서 엄마 잃은 아이를 동자승으로 키우는데, 그 녀석이 또 똑같이 개구리를 돌로 묶는다. 중은 스스로 맷돌을 허리에 매달고 절 뒤에 있는 겨울산을 죽을힘을 다해 오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렇게 삶의 수레바퀴가 끝없이 굴러가는 동안, 이 세상은 좀 좋아져 가고 있는 걸까.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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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죽을 구덩이 제 손으로 파고, 조금 뒤 제가 그 구덩이에서 총살되어 묻힐 줄도 모르고 웃고 있는 시골 촌부 보도연맹원들. 그 자손들은 오늘도 재판에서 희생 사실을 인정받지 못할까 애타하며 법원을 드나들고 있다.
그리고 숱한 재개발지역 철거민들, 활활 불타오르며 쓰러져 가는 용산 남일당 망루......
이 모든 일이며 사람들이 영락없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그것이다. 동자승의 개구리 같고, 맷돌 끌고 산을 오르는, 그 동자승이 자라난 중 같다.
세상은 좋아질 수 있을까.
온갖 지혜와, 원력과 자비, 신통과 위신력을 갖추신, 무한히 크고 반듯하고 너르신 부처님(大方廣佛)이 오셨어도, 하느님과 일체이신 성자 예수님이 오셨어도,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세상은 바뀐 게 없다.
돌, 나무, 돼지, 사람, 이 사람, 저 사람, 그 사람..... 세상 만물이 저마다 개체로 존재하는 한, 그래서 개체가 서로 다르고 개체가 자기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려 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게 개체 사이의 충돌이다. 저마다 이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밤이면 별빛 쏟아져 내리는 사막에 은둔하며 하느님을 묵상하는 수도승도, 히말라야 설산 토굴 속에 앉아 주관과 객관의 차별이 사라지는 '비상 비비상처 삼매'에 든 수행자도 하다못해 풀이나 낟알이라도 먹어야 사는 법. 하지만 풀이나 곡식이 수행자한테 먹히려고 생겨난 건 아니다. 그것도 생명인데 남의 생명 먹고 그 수도자 '개체'가 어디 높은 '경지'에 이른다는 건 좀 그렇다.
수행자와 낟알은 서로 이해가 부딪친다. '빨갱이'와 '보수반동'의 이해가 충돌하듯이. 이내창과 그를 쫓는 공안수사관이 서로 생각이 다르듯이.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상 만물이 변하지 않고 다른 것과 독립하여 저 혼자 개체로 존재하는 건 없다. ... 생각도 본래 내 것이란 없다. 유전자 특성에다 그간 남들이 이루어 놓은 지식과 내가 특정한 환경에서 겪은 경험이 합해져 잠시 '내 생각'이 된다. ... 하지만 만물은 이합집산하며 변해 가므로 어떤 '개체'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그저 만물의 끊임없는 이합집산인 흐름, 사건이 있을 뿐.
그래서 만물은 하나다.
이걸 성서에서는 모든 게 하느님의 피조물이라고, 화엄경에선 모든 존재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나타나심 아닌 게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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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이 모여 그저 잠시 나라는 개체로, 너라는 개체로 몸을 입고, 그 몸인 뇌 신경세포들의 창발적 활동으로 생각도 하고 아름다움도 느낀다.
어제 빨갱이의 아들이 오늘 보수반동이요, 오늘 사형수의 아들이 내일 성철 스님이다.
우리 스승들이 그러셨듯이, 그저 이 한세상 살면서 나와 이웃들이 이런 이치를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서로서로 도와줄 일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김형태 변호사 비망록>(한겨레출판) 중에서
김형태 변호사는... 1956년 서울 출생이다.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86년부터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을 주도했고, 천주교 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특별검사보,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덕수 대표 변호사이며 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격월간 《공동선》 발행인 등을 맡고 있다. 사형폐지와 인권보호 활동에 앞장서 왔으며, 임수경ㆍ문규현 방북사건,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 송두율 교수 사건, 문화방송 PD수첩 광우병 보도 관련 민ㆍ형사 사건, 인혁당ㆍ민청학련 재심 및 손해배상 사건, 용산참사 등 우리 사회 뜨거운 논쟁이 되었던 사건에 늘 함께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불교 등 타종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 종교간 소통을 주제로 한 강연에 자주 초대받는다. 법대 시절 법학 강의보다 문학과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지인들에게 술과 풍류를 즐기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더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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