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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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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집을 나왔다, 그래도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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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 찜질방 모텔…돈은 없고 결국, 뻔한 공식
비슷한 처지니까 친구?…절대로, 단지 공범일 뿐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인공 청소년들 가슴에는 대부분 아픈 가정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인생의 산전수전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이 글은 유혹과 열정, 막무가내 용기로 살았던 자신들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그것을 통해 같은 청소년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하는 또래 멘토들의 이야기입니다.



Q1.jpg» SBS 뉴스 장면 캡쳐.

그때가 집을 나온 지 일주일 되던 아침이었다. 나는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랑 동네 놀이터로 갈 계획이었다. 건널목에서 파란 신호등이 켜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내 눈에 엄마가 보였다. 맞은편에 서 있는 엄마는 슬리퍼에 이상한 바지를 입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엄마도 날 알아봤다. 횡단보도를 반쯤 건널 때 엄마가 날 잡았다.  
 “수연아 집에 가서 얘기 좀 하자.”
 난 그 손을 뿌리치며 “왜 그래요 누구세요? 누군데 참견이에요. 놔요.”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것도 무시하고 언덕길을 향하여 올라갔다. 친구들이 물었다.  
 “누구야?”
 “모르는 사람이야. 신경 쓰지 마.” 
 “수연아, 수연아.” 엄마가 날 불렀다. 
 “아, 부르지 말라니까…. 너 같은 엄마 둔 적 없어. 꺼지라구.” 
 그래도 엄마는 계속 따라왔다. 난 언덕 위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엄청 화를 냈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돈 2만 원을 내 손에 지워주며 말했다. 안 들어와도 좋으니까 밥은 먹고 다니라고. 그리고 들어오고 싶을 때 집에 들어오라고. 
 “뭔데 상관이야. 내 인생 내가 살지. 엄마가 살아 줘?” 난 이러면서 끝까지 화를 냈다.

아빠는 도망갔고 체육선생이었던 엄마는 목숨 걸고 낳아

  엄마는 기계체조 선수였으며 한때는 체육선생님이기도 했다. 나에겐 엄마가 기계체조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랑 대회에 나갔던 사진들이 있다. 그러나 부상을 당하여 모든 걸 잃었고 지금도 발목이 좋지 않아 걸을 때 똑바로 걷지 못한다. 나를 낳고서는 당장 일자리가 없어서 공장도 다니고 식당에서도 일을 했다. 그러면서 영양사 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축구선수단에서 영양사로 일한다. 
 스무 살 후반에 엄마가 나를 배었을 때 아빠는 도망갔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나를 낳는 걸 반대했다. 산부인과 의사도 내가 기형아로 태어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아이는 살아도 엄마는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꼭 낳아야겠다고 거절했단다. 목숨을 걸고 나를 낳은 엄마는 내 기저귀값, 분유값을 벌기 위해 자동차 부품 공장에 나가 야간까지 일을 했다. 난 엄마랑 떨어져 5년 동안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어느 날 나를 데리러 온 엄마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같이 살 거라고. 나는 완전히 신이 나서 엄마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 집에는 어떤 아저씨랑 또 다른 할머니가 살고 있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무당이었던 그 할머니는 큰 방에서 이상한 돌에게 절을 하고 칼을 휘두르곤 했다. 점을 치러 손님이 찾아올 때면 나는 작은방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난 어렸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선, 그 방법으로 새 아빠 쪽, 그러니까 아저씨 딸인 동생 민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러면 엄마랑 내가 이 집에서 쫓겨날 수 있겠지?’ 생각하고선 민희를 꼬집고 이거해라 저거해라며 내가 할 일도 다 시켰다. 그래도 쫓아내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계속 밥을 먹지 않고 자주 굶었다. 한 달쯤 지나니까 엄마가 무당 할머니에게 따로 나가 살겠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랑 단둘이만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또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난 그 집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엄청 좋았다. 우리는 방 하나에 거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나랑 민희랑은 방에서 자고 거실에서는 엄마와 새 아빠가 잤다. 
 새 아빠는 몸에 문신이 많고 핸드폰도 네다섯 개에 돈도 엄청 많이 든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새 아빠는 만날 술 먹고 새벽에 들어와 엄마랑 싸웠다. 내 나이 일곱 살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새 아빠가 물건을 던지고 TV도 깨고 집을 나갔다. 나는 엄마한테 우리 짐 싸자고, 지금이라도 외할머니네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왜 내가 나가냐. 이 집도 내 돈으로 얻었으며 아직 새 아빠랑 헤어질 맘이 없다고 했다. 그 후 한 달도 안 되어 또 두 사람은 문을 닫고 싸웠다. 그날 새 아빠가 휘두른 칼은 엄마 얼굴에 굉장히 긴 상처를 냈다. 나는 힘도 없고 바짝 마른 꼬맹이였지만 엄마가 죽을 것 같아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엄마는 이혼 서류를 썼다. 우리 둘은 원룸에 들어갔다. 방은 이불 하나 깔 정도로 좁았지만 엄마랑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 꿈만 같았다. 새 아빠의 담배 냄새도 없으니 너무 좋았다.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이 내 옷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놀림을 받곤 했으니까.

아빠도 없다고 욕하는 아이와 싸웠다고 전학이라니...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2학년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같은 반 은비가 넌 아빠도 없는 게, 하면서 나에게 욕을 했다. 난 너무 화가 나서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얘기하냐며 책상을 발로 찼다. 선생님이 말리는데도 난 울면서 은비한테 따졌다. 그 전에는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 진짜 잘 지냈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  
 “너네 엄마가 나 알아?”
 계속 싸우다가 우리 둘은 교장실로 가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날보고 더 이상 네가 학교에 있으면 안 되겠다고 다른 데로 전학을 가라고 했다. 엄마가 학교에 와서 그게 왜 전학까지 갈 일이냐. 지금 2년 동안 애가 뭘 잘못한 게 있느냐고 따졌으나 교장은 엄마 말을 무시하고 그냥 나갔다. 교감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도 이렇게 크게 결정이 날 줄 몰랐다며 말릴 때까지 말려 보겠다고 했으나 결국은 일주일도 안 되어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빠가 없다는 놀림을 당하고 전학까지 당한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난 아빠 없는 애들도 크게 성장한다는 걸 보여주고자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민선이는 전학 간 학교에서 4학년 때 만났다. 짝꿍이었으며 공부도 잘해서 나랑 잘 맞았다. 나는 반에서 2등이었고 민선이는 항상 1등이었다. 나는 공부를 계속 꾸준히 한 결과 2학기 때는 4학년 전체에서 1등을 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밀린 민선이는 그날부터 나와 말을 안했다. 전학 간 학교에서 난 민선이 말고는 친구가 없었다. 사교성이 많은 내가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다. 아빠가 없다는 모욕을 받은 후부터 난 친구 사귀는 게 두려웠다. 말조심도 해야 될 것 같았고 무조건 우리 집을 숨기고 싶었다.
 어느 학교든 약간 삐뚤게 나가는 애가 한 명쯤은 있다. 민선이 없이 혼자 다니는 나에게 말을 건 하영이가 그런 애였다. 활발한 성격인 그 애랑 난 뭔가가 금방 통했다. 하영이네는 아빠가 큰 회사 부장이며 엄마는 피아노 학원을 했다. 걔네 부모는 늘 바빴다. 하영이도 집에 혼자 있는 건 나랑 똑같았다. 그 앤 중학교에 다니는 오빠들과도 친했다. 나는 하영이만 믿고 친구들을 막 사귀었다. 5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전교 1등도 했지만 거짓말이 시작되었다, 하니까 늘었다

  “수연아, 오늘 밤늦게까지 놀자.” 
 “뭐하고?”
 “그냥 노래방도 가고 피시방도 가자.”
 “나 돈 없는데?” 
 “내가 돈 있어.” 
 “어 그래?”
 거짓말이 시작되었다. 엄마한테는 학원에서 늦게 끝나니까 데려오지 말라 하고, 학원에는 엄마가 아파서 못 간다고 했다. 거짓말이 늘면서 할머니도 팔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피시방에서 엄마한테 머리끄덩이를 잡혔다. 그렇게 화가 난 엄마 모습을 처음 봤다. 집으로 끌려온 나에게 엄마가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러는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애들이랑 노는 거라고 했다. 엄마한테 내 복잡한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엄마가 새벽에 술을 먹고 들어오고 어느 때는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우리 엄마 왜 이래? 내가 그랬으면 아마 죽일 것처럼 달려들 거 아냐?’ 난 반항심이 일었다.  
 엄마가 3일 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나 가슴 조이며 지냈는지 모른다. 학교도 갈 수 없었다. 새벽에도 버스 정류장에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돌아왔지만 인생을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나는 밥도 안 먹고 그냥 울기만 했다.
 “왜 울어?”
 “왜 전화 안 받았어?”
 “핸드폰 꺼졌어.”
 “그러면 엄마 친구 거라도 빌려서 연락할 수 없었어? 그러면 내가 학교도 가고 그랬을 거 아냐.”
 엄마도 내가 당한 충격 때문에 방황하고 있었다. 또 내가 숨기는 스트레스를 엄마도 겪으면서 수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난 반항심만 일었다. 어린 나는 그래도 되지만 엄마는 절대 그러면 안 되었다.

Q3.jpg»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의 한 장면.

언니가 술먹자고 했고 엄마는 술에 취해 전화를 끊어

  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영이를 통해 지나 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는 중2였다. 셋은 계속 어울려 다녔다. 지나 언니가 어느 날 밤에 같이 술을 먹자며 집을 나오라 했다. 망설이는 나에게 “우리만 믿고 나오면 돼. 수연이 네가 술을 안 먹어 봐서 몰라. 진짜 맛있어. 빨리 나와.”
 딱 그 순간에는 그 언니가 날 끝까지 지켜 줄 건가보다 했다. 나는 옷 몇 가지를 챙겨서 그 언니만 믿고 집을 나왔다. 얼마나 바보 같은가. 지나 언니는 할머니랑 살았다. 방도 세 개가 있었다. 그날 밤 늦었지만 엄마한테 미안해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집이 아니었다. 주위가 아주 소란했다. 
 “엄마 어디야?” 
 엄마는 그냥 끊었다. 다시 걸었다. 
 “어디냐고?”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다. 사실 그때 내 심정은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만취한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화가 났다. 남자소리도 들렸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 배터리와 유심까지 빼버린 상태로 가방에 쑤셔 넣으며 결심했다.  ‘알았어. 엄마가 그래봐. 나도 집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집이 싫은 너에게
 
 친구야!
 혼자서 밥 먹고 있구나. 쓸쓸하지? 그치? 난 알아. 혼자 밥 먹고, 혼자 TV 보면서 웃고, 뭘 사러가도 혼자 가는 너의 심정. 정말 난 집이 아니라 고아원에 사는 애 같았어. 혼자 밥 먹는 게 싫어 굶은 적도 많았지. 그런 내 마음을 엄마한테는 표현하지 못했어.
 항상 생각하는 건데 친구야! 
 나처럼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 대부분이 집에 아빠 혹은 엄마만 있거나 아니면 맞벌이해서 집에 어른이 없었어. 그러면 그 집은 비행의 아지트가 됐어. 어른들은 우리를 위해서 돈 벌려 다닌다고 하는데 진정 우리가 필요한 게 뭔지를 면회 온 엄마한테 난 얘기했어. 우리 집이 더 좁아지든, 망하든, 내가 학원을 전혀 못 다녀도 진짜 시급한 건 돈이 아니라 엄마냄새가 있는 집이라고.

Q2.jpg»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마리아’의 한 장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돈도 뭣도 아닌 엄마냄새

  아빠가 없는 친구야! 
 너도 그랬을 거야. 친구들 핸드폰에서 아빠랑 찍은 사진 볼 때, 가족 여행 간다고 좋아할 때, 참 마음이 그랬지? 우린 아닌 척, 안 그런 척하고 지냈을 뿐이야. 
 난 엄마 울타리를 빠져나와 지나 언니네 집에서 일주일 정도 있었잖아? 그때 지나 할머니가 막 화를 냈어. 저 애는 왜 자기 집에 안 가냐. 잰 집도 없냐?, 하면서. 그래서 그 집에서 밥도 먹기가 어려웠어. 이렇게 되면 집 나온 아이들이 옮겨 다니는 공식은 거의 비슷해. 처음에는 친구 집으로 그 다음은 찜질방이나 모텔…. 그러나 어디든 오래 머물 수는 없어. 거기다 돈은 없고. 결국 나쁜 짓을 시작하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지.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말이야. 그들은 처지가 비슷하니까 친할 것 같으나 절대 아니야. 그들과 난 단지 공범이지 친구가 아니야. 그들과의 관계는 나쁜 짓 할 때만 이어져.
 난 그걸 깨닫고 한 달 만에 집에 들어왔어. 엄마는 내가 가출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제발 집에 들어오라고 사정하면서 쫓아다녔어. 그러다가 가출 한 달 동안 내가 이런저런 사고를 치면서 엄마는 경찰에 불러 다니고 남한테 사과하고 죄송하다고 빌었어. 집에 들어오기 며칠 전에도 엄마는 나 때문에 경찰서에 가야 했어. 그러다보니 엄마는 내가 집에 들어오는 날 엄청 때리고 난 그냥 맞았어.

배가 아파 응급차 불러달랬더니 “내가 니 보호자도 아니고…”

  이틀 후였어. 지나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 경찰이 너한테 거짓말 한 거다, 그러니 잠깐 얘기할 게 있으니까 나오라고 했어. 난 또 집을 나온 거야. 하지만 내 얼굴 표정이나 행동은 예전의 내가 아니었어. 그걸 그들도 느꼈을 거야. 그날 밤 모텔 방에서 나, 지나 언니, 미선이랑 술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던 중 내가 슬슬 아프기 시작한 거야. 그 증세는 며칠 전부터 조금씩 있었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두 손이 차가와지면서 배가 찢어질 듯 아파 왔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난 지나 언니에게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반응했어. 
 “너 집 나왔잖아. 우리 돈 없어. 돈 없는데 어떻게 병원에 가니?” 이러는 거야. 아, 하긴 그렇다며 그냥 참고 말았는데 그 다음날도 계속 배가 콕콕 송곳으로 찌르듯 죽을 것 같이 아팠어. 
 “언니, 나 진짜 너무 아파. 응급차라도 불러줘”라고 했더니 
 “내가 어떻게 불러? 내가 니 보호자도 아니고 널 끝까지 데리고 갈 것도 아닌데 널 병원엘 어떻게 데리고 가.” 
 이런 식으로 나에게 따지듯 말했어. 그때 딱, 번개처럼 스친 거야.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생각이 들었어. 나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거길 나와 사촌 오빠한테 공중전화로 내 처지를 알렸어. 도저히 엄마한테는 말할 수가 없었어.

Q4.jpg» 밤거리의 유흥산업도 가출한 여자아이들을 종종 잡아끈다. 청소년을 고용한 성매매 알선업자가 구속되는 일도 잊을 만하면 나오는 뉴스 가운데 하나다. 김정효 한겨레 기자

언니와 가끔씩 놀던 그 오빠들은 한통속으로 성매매 내보내

  친구야!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 막 나오게 된 사건이 있어. 그 일 때문에 한 달만에 난 집에 들어오게 된 거야. 그 일이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으나 너에게 말할게. 그러니까 어느 날 점심 먹고 난 오후였어. 지나 언니와 오빠 두 명이랑 차 안에서 난 두 시간이 넘게 앉아 있었어. 스무 살이 넘은 그들은 지나 언니가 가끔씩 데리고 와서 우리랑 놀던 오빠였어. 그들은 어떤 여자아이를 성매매하러 보낸 뒤 차 안에서 기다렸던 거야.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나는 너무 지루해서 왜 안 가냐며 빨리 가자고 하품을 하면서 짜증을 냈어. 그때 경찰이 우리 차 쪽으로 다가왔어. 나중에 경찰서에 가서 알았어. 그들은 한 여자애를 성매매 보내놓고 거기서 기다렸던 건데, 그 여자애가 경찰에 신고 한 거였어. 운전석에 있던 오빠는 잽싸게 도망치고 나머지 우리들은 경찰서에 가서 핸드폰을 모두 압수당했어. 나를 조사한 경찰 아저씨가 지나 언니가 그 오빠들과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주었어. 내용은 이랬어. 
 “이 애, 집 나왔으니까 시키는 대로 할 거야.” 
 “언제 되는데?” 
 “조금 있으면 시킬 수 있어.” 
 “알았어.” 
 “넘겨주면 얼마 줄 거야?”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어. 그날 나는 경찰서에서 집으로 가고, 지나 언니는 미성년자라 바로 구속이 안 되니까 부모가 불려와서 나왔던 거야. 나중에 우리 엄마도 경찰서에 불려갔어. 성매매 상습범이었던 그 오빠는 바로 구속되었어.

집 밖의 거리는 그냥 놔두지 않아, 더구나 여자 아이는

  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절차를 밟았어. 맹장이 터진 거야. 침대에 누웠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 ‘그들을 끝까지 믿고 나에게 있던 전 재산도 다 맡기고 하라는 대로 했는데 나중에 남은 게 이 정도였어? 내가 진짜 죽을 듯이 아프니까 이렇게 나오는구나.’ 수술실에 들어갔는데도 계속 그들이 맴돌았고 언덕 위에서 엄마랑 싸웠던 생각도 났어. 그때 집에 들어갔으면 이렇게 수모도 안 당하고 삼촌이 아니라 엄마랑 병원에 같이 왔었을 텐데. 계속 마취가 되지 않아 수술이 12시간이나 걸렸어. 손과 발이 다 묶이고 코에는 호스를 꽂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이틀 후에 깨어났어. 그동안 핸드폰에는 지나 언니를 포함하여 그들이 보낸 문자로 가득했어.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많이 컸네! 수연아.” 
 “언니, 오빠들이 널 가지고 논 건데 너는 진짜 잘 넘어오더라.” 
 “너 진짜 어디야. 죽고 싶어?” 
 “너는 날 믿으면 안 됐어.” 
 별 욕이란 욕을 다 보냈어. 입원 사흘째 되던 날 엄마가 와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어.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는데 목이 메어 한참을 울었어. 경찰서에서 집으로 왔을 때는 엄마한테 엄청 맞아서 울었고. 그래도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집이고 엄마라는 걸 알았어.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아빠가 없고 엄마가 술먹고 들어오는 집이라도, 아무리 허름하고 짜증나서 들어가기 싫어도 집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였어. 세상에 모든 사람들 중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집이 필요 없는 이가 있을까?
 친구야!
 만약에 말이야. 정말 집에 머물 수 없는 상황도 있을 거야. 그러면 널 보호해 줄 어른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돼. 집을 나와서 지켜줄 울타리가 없는 청소년을 집 밖의 거리는 그냥 놔두지 않아. 더더군다나 나처럼 여자 아이는. 그 뒷말은 생략해도 넌 짐작할 수 있지?


 
 
 그 집을 찾아......

         -남민영 수녀             
                       
 새들도 훨~훨~ 자유롭게 날다 저녁이 되면
 어미가 가지를 물어다 만들어 놓은
 따스한 둥지로 돌아가고
 
 빗방울도 대지와 촉촉이 입맞춤한
 황홀한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늘 위 구름에게 돌아간다.
 
 모든 존재는
 그 누군가의 사랑의 마음으로 덥혀진
 마음을 뉘일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진심’의 벽돌로 신뢰의 벽을 쌓고
 ‘이해의 눈길’로 용서의 지붕을 덮고
 ‘사랑의 기다림’으로 언제나 문을 열어 놓은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길 위를 헤맨다
 그 집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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