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화재가 발생하면 첨단기구를 갖춘 소방차가 즉각 달려오고 불길만 잘 잡으면 어렵지 않게 불을 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세는 그 상황이 오늘날과 같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단 오늘날 같은 불끄는 장비를 갖추지 못했고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대개는 사람의 힘을 의존했기 때문이다.
언어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림 속에서 불끄는 모습들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더 잘 파악 할 수 있겠다. 위의 첫 그림과 그 아래에 같은 톤으로 그려진 그림은 1405년 스위스의 베른에서 불이 났을 때의 상황을 한 작가가 남겨 놓은 것이다. 1405년 4월 28일 발발한 이 화재 때문에 52채의 집이 불타버렸다. 다시 화재가 났다 바로 같은 해인 1405년 5월 14일이었다. 이 날의 화재는 바람이 무척이나 불었다 보니 600가구의 집과 재산을 태우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잃게 하였다. 하지만 왜 이렇게 이런 불이 발발했는지에 대한 원인은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그림들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당시의 화재가 어떠했고 또 어떻게 불길을 잡았는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불타는 집에서 그나마 건져낸 이불 보따리 등등 가재도구 옆에서 말똥말똥한 눈망울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8명의 아이들과 그 옆에는 요람에 태워진 한 영아! 다들 얼마나 놀랐을까? 그 옆엔 불 끄기 위해 열심히 물 퍼다 올리는 어른들이 보인다. 당시는 저런 방법이 최선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하늘색 빛이 나는 그림을 확대해보면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울고불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쩔쩔매면서 손을 하늘로 돌려 기도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한 때는 화재를 신의 엄벌로만 간주하다가 의식이 트인 후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나름대로 화재 대비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다시 한 500년이 지난 후 후세인들이 지금 우리의 소방차를 본다면 어쩜 우리가 지금 500년 전의 중세인들의 불끄기를 보는 것처럼 우리의 소방차 사용을 아주 형편없게 보지는 않을까? 500년 후, 그 땐 과연 어떤 시대가 도래할지? 하지만 너무나 상상 밖의 영역이라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