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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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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는 포기를 부르고, 1승은 1승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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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거나 일도 사람도 싫증나면 그만
하루 또 하루 하다 보니 ‘54일 기도’ 세번째, 이젠 안다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인공 청소년들 가슴에는 대부분 아픈 가정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인생의 산전수전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이 글은 유혹과 열정, 막무가내 용기로 살았던 자신들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그것을 통해 같은 청소년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하는 또래 멘토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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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센터에는 종교랑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54일 기도’라는 게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54일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기도를 매일 하는 거다. 혼자 하지 않고 원하는 아이들이 함께 하기에 이렇게 하자고 룰을 정했다. 그러니까 혼자 해도 안 되고 장소를 바꿔도 안 되고 하루만 빠져도 미완성이 된다. 53일을 하고 마지막 하루를 빠졌다면 안타깝지만 안 된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그 시간에 단체 프로그램이 있거나 개인적으로 특별한 상황이 생겼을 경우는 지도 수녀님의 허락을 받고 다른 시간에 기도를 한다. 출석 체크는 수녀님이 도장을 찍어주는데 하루하루 도장 받는 재미도 꽤 있다. 수녀님은 54일 동안 우리랑 항상 같이 기도했다. 부득이 못 오시면 다음날 두 개를 찍어준다.
 막 입소한 새로미 때였다. 54일 기도를 다음달 1일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알림이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은 나는 ‘저게 뭐야? 기도한다는 데 저렇게 몰려? 나도 한 번 해봐?’ 하면서 일단 신청을 하고 봤다. 유난히 아이들이 몰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퇴소한 유림 언니 때문임을 나중에 소문으로 알았다.

호기심 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 반에...

  유림 언니는 작년 대검 검정고시 합격을 바라며 54일 기도를 바쳤다. 나이는 20살에 IQ가 보통보다 약간 떨어진, 그러나 너무 착한 언니였다. 드디어 시험을 보고  돌아와 가채점을 한 결과는 58점. 떨어진 것이다. 언니의 실망은 너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탱탱 붓도록 울고 난 유림 언니는 또 다시 믿음을 가지고 54일 기도를 다시 한 번 도전하면서 8월에 있을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 번째 기도를 시작한 지 26일쯤 되었을 때 합격자 명단이 나왔다. 그런데 그 중에 유림 언니가 있었다. 평균 61.8로 합격을 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지금까지 가채점대로 합격, 불합격이 나왔을 때 바뀐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만방에 퍼져서 나에게까지 들려 왔다. 
 나의 소원도 유림 언니처럼 검정고시 합격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호기심과 뭐, 밑져야 본전이지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계속 하다 보니 다른 현상들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엄청 꿀꿀했다가도 기도를 드리면 그 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했다. 한번은 기도하러 가기 전에 분노가 차오르고 화가 나고 짜증난 일이 있었는데 정해진 그 시간에 30분을 보내고 나니 내 안에 안 좋은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나쁜 감정이 가면서 한 번 끊어지고 기도하는 동안 점점 사라졌다. 또 막 입소하여 낯선 곳에 적응하기 힘든 그 기간에 아이들과 같이 기도를 하면서 센터에 적응도 빨랐다.
 그러나 고비도 있었다. 센터 지하실에는 노래방이 있다. 난 노래 부르길 좋아한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부리나케 내려가 노래방에서 노랠 부르는데 기도시간이 되면  아쉽고 갈까? 말까? 가지 말까 하다가 확 생각을 바꾸어 기도방으로 달렸다.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다.  
 가장 큰 고비는 검정고시가 끝난 후였다. 난 한 번에 합격을 했다. 54일이 되기 전에 내 기도 소원이 이루어진 거다. 그래도 가야 하는데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같았으나 끝까지 해냈다.

‘영혼 없는 몸’에서, 이젠 하고 싶은 것 많아져

  난 포기도 빠르고 끈기도 없는 성격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랐다.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시험에는 점수가 높게 나오길 바랐고, 음식은 계속 먹으면서 살이 빠지기를 바랐고,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돈이 많기를 바랐고, 뭐든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바라기만 했다. 싫증도 많이 냈다. 일로 따지면 한 번 했을 때는 재미있으나 계속 하다보면 질려 했다. 그러면 그만둔다. 또 다른 일을 했는데 그것도 하다가 그만두고……. 친구도 그랬다. 뭐 하다가 싫증나면 그만 만났다. 사람이든 일이든 그만둘 때는 끝맺음을 그냥 포기하듯이 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두 달쯤 되었을 때다. 출근을 하려는데 일어나기가 싫어서 오늘은 그만 쉬자 하고 도로 누웠다. 매장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전화하기도 귀찮고 자고 일어나보니 저녁 퇴근시간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했다. 주인은 나에게 왜 안 나왔느냐고 냉정하게 물었다. 난 ‘몸이 아파서 전화를 못 드렸습니다’하고 말했다. 주인은 다음부터는 전화를 꼭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또 한 번 더 있었다. 그때도 난 연락하지 않고 다음날 나갔다. 주인은 똑같이 물었고 나는 눈치가 보여서 카페 일을 관뒀다. 내 취향에 맞고 정말 다니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하고 싶었는데 포기했던 일이 이것만이 아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은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운동이었다. 난 초등학교 때 100미터 달리기 육상선수였는데 달리기가 재미있고 그쪽에 소질이 있었다. 나랑 잘 맞았다. 중1 때도 육상선수로 계속 뛰었다. 그때 공부도 좀 하는 편이어서 학원을 다녔다. 거기서 사귄 친구가 담배를 피웠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같이 피우기 시작했다. 중독성이 심하다보니 끊지를 못했다. 폐활량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학교에 가면 바로 가방을 교실에 놓고 운동장으로 나와 100미터 기록을 매일 재는데 폐활량이 딸려서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좋아했던 달리기 선수 생활을 관뒀다.
 난 54일 기도를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내 안에 바라는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또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숫기도 없고 의지도 없고 몸에 힘도 없고 진짜 말 그대로 나는 ‘영혼 없는 몸’ 같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 아이가 되었다. 나의 도전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 세 번째 54일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세 번째 기도가 끝나면 나는 퇴소를 한다. 센터 생활 6개월은 약 180일. 54일 기도를 세 번 하면 162일.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다. 마무리를 멋지게 하고 떠날 내 모습을 상상하면 진짜 뿌듯하다. 약속도 밥 먹듯 깨고, 싫증나면 포기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난 도전할 것이다. 내가 꼭 하고 싶은 그것을 찾아서. 
 ‘최가인! 54일 기도를 3번이나 했는데 못할 게 뭐 있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포기의 달·인·자, 내 친구에게 
 
 친구야!
난 원래 편지를 잘 못써. 전할 말은 많은데 내 마음 속에서 막 뒤죽박죽이야. 그래도 꼭 내 경험을 전하고 싶어서 너에게 이렇게 쓰게 됐어. 친구야, 처음 쓰는 편지에서 너의 애칭을 ‘달·인·자’로 한 번 지어봤어. 그 앞에는 또 ‘포기’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그대 애칭은 ‘포기의 달·인·자’. 미안, 기분이 안 좋아도 참아줘. 한 때는 내가 그 애칭을 달고 다녔거든. 하하. 서두가 좀 길었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게.
 달인자 친구야!
 지난 11월에는 『제4회 소년보호기관 청소년 문화축제』가 있었어. 뭐냐면, 나처럼 전국 다섯 군데 소년보호기관에 사는 청소년들의 공연을 말해. 보호청소년들과 그 가족 친지 그리고 내·외빈 손님들을 포함하여 약 700여 명이 참석했어. 우리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려고 전국 법원에서 마련해준 거야. 우리는 한 달 동안 준비한 끝에 무대 위에 올랐어. 댄스, 난타, 밴드, 뮤지컬, 합창 등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의 무대였어.

박찬호 선수가 들려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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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야!
 그날 공연 중에 특별출연으로 <코리아 특급> 박찬호 야구 선수가 나타나 우리에게 멘토를 주었어. 나도 한때 운동선수였잖아. 그래서 그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궜어. 그걸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 그분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말을 했는데 그 중 이런 얘길 했어.
 “우리가 여태까지 살아온 걸 보면 내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게 억울하든 슬프든, 고통스럽든 기쁘든, 모든 이 상태는 나의 선택에 의해서 와 있는 거죠. 나의 미래도 결국 내 선택에 의해서 결정될 겁니다. 그래서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선택을 어떻게 할 건가? 무엇을 할 건가? 이죠. 나는 상상의 스위치를 많이 만듭니다. 껐다, 켰다 하는 스위치 있죠? 그걸 늘 만드는 거죠. 첫 번째 스위치 이름은 절망. 두 번째 스위치는 두려움. 세 번째는 슬픔. 네 번째는 용기, 믿음, 미소, 할 수 있어, 괜찮아. 이런 스위치들을 다 만듭니다. 그런 후 눈을 감고 스위치들을 쫘악 둘러봅니다. 거기서 내가 어떤 스위치를 지금 올려서 켤까? 그리고 어떤 스위치를 과감하게 꺼버릴까? 이걸 매일 눈감고 생각하면서 선택을 했습니다. 나에게 용기란 스위치는 늘 켜 있었던 것 같아요. 왜? 미국에서의 삶이 너무 두려움이 많아서죠. 상대 선수를 아웃 시켜야 하는 마운드의 두려움. 게임을 이겨야 하는 두려움. 한국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아야 하는 두려움. 두려움이 너무 많으니까 용기가 항상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란 스위치를 항상 켜야 했죠.
‘용기 켜.’ ‘아 자신 없어.’ ‘켜.’ 이렇게 자꾸 켜 버릇하니까 괜찮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신감이 생겼죠.”
 친구야! 
 박찬호 선수는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자신을 이기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어. 다시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도, 이기는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계속 지는 사람은 지는 게 습관화 되어버린다고 말했어. 그 말을 들은 때 예전의 내가 보였어. 왜 난 자신에게 포기만 했을까? 지면 쓰라려야 하고 아파해야 하는데 왜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답은 이겨본 경험이 없었던 거야. 만약 승리를 맛본 경험이 있었다면 왜 이번엔 졌지? 이유가 뭘까? 하면서 생각이라는 걸 했을 거고 이기는 기쁨을 맛보았기에 다시 도전하려는 노력도 했을 거란 말이야.

하루만 참아 하루만, 그리고 용기를 켜

  친구야!
 하지만 난 이젠 변했어. 54일 기도를 끝까지 해내면서 승리의 기쁨을 알게 된 거야. 나를 이긴 내가 너무 뿌듯했어. 똑같은 기도문을 30분 동안 계속 반복하는 기도. 처음에는 모르는 기도문을 외우는 게 신기했으나 중간쯤 되니까 졸음도 오고 지루했어. 나랑 같이 기도했던 미영이는 3일 남기고 떨어져 나갔어. 그런데 난 해낸 거야. 54일 기도는 하루가 중요했어. 하루, 또 하루가 모여야만 완성이 되잖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친구야!
 넌 늦잠이 많아 지각을 자주 하잖아? 하루만, 하루만 그 잠한테 이겨봐. 너의 목표를 단 하루로 정해서 1승을 해봐. 한 번 이기면 내일은 조금 더 쉬워지고 모레는 더 쉽고……. 그러면 넌 계속 이기는 자가 될 거고, 그러다 어느 날 잠에게 지면 예전과 달리 넌 아파하고 쓰라려 할 거야. 그리곤 다시 이겨야겠다는 열망으로 용기란 스위치를 켜는 거야. “용기 켜.” “켜.” 자꾸 켜서 이기다보면 버릇이 되고 자신감이 생겨서 또 다른 도전도 두렵지 않게 될 거야. 야? 그런 너와 내가 멋있지 않니?
 친구야!
 난 54일 기도도 하고 소원을 이루어 물론 기뻐. 그러나 나중에는 기도 그 자체가 좋았고 나를 이겼다는 게 그 무엇보다 기뻤어. 포기는 포기로 이어졌는데 1승은 또 한 번 해내게 했어. 그리고 내가 말했지? 난 세 번째 도전 중이라고. 요즘 센터 친구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 
 “너, 나갈 때 다 됐는데 54일 기도 뭣 하러 또 해? 두 번이나 했잖아. 하지 마.”
 그러면 난 그냥 웃고 지나쳐. 왜냐하면 난 이제 포기와 승리의 차이를 알았으니까.
 친구야!
 벌써 올 한 해가 저물고 있네. 이제 조금 있으면 너의 얼굴을 보면서 얘기할 수 있겠지? 새해에는 너랑 나랑 이런 말을 자주 하면서 살자.  
 “넌 할 수 있어.”
 “하루만 참아, 하루만.”
 “용기 켜.”
 아참, 너의 애칭을 바꿔 줄게? 나도 똑같이 지을래. 나랑 외쳐봐. 자, 크게 
 우리들의 이름은 ‘승·리·의 달·인·자’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남민영 수녀님
 
 기도는
 폭풍우 몰아치는 내 맘을 고요히 만들고
 
 나 홀로 맞고 있는 소낙비 속으로 따스한 봄볕을 데려오고
 
 ‘낙심’과 ‘두려움’의 불빛에 흔들리는 스위치를 끄고
 ‘희망’과 ‘용기’의 스위치를 켜 
 내 맘을 환히 비춘다.
 
 인생의 마라톤에서
 이제 초반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친구여!
 ‘어제의 너’보다 ‘오늘의 너’를 향해 환하게 웃어줄 수 있도록
 매일의 충실을 한 걸음씩 걸어가렴.
 
 하느님께서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시고
 세상은 너의 푸른꿈을 응원한단다.
 레이스(race)가 끝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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