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교지도자협 스페인 성지순례
» 세비야 대성당에서 김희중 대주교(맨 왼쪽)가 기도를 하자, 성지 순례에 참가한 각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왼쪽 둘째부터 천도교 박남수 교령,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유교 어윤경 성균관장)
자승 총무원장, 김희중 대주교,이영훈 목사, 박남수 천도교 교령,어윤경 성균관장이웃 종교 체험 5박6일 동행성모 마리아가 웃는 이유?아기 예수가 간질여서!스님의 자문자답에 성당이 들썩데레사 성인 손가락 유해에입을 맞추고, 염주를 선물로 주자수녀님이 환하게 웃는다.이슬람교도의 알람브라 궁정에유대인이 보낸 12사자상종교 공존의 증표에 끄덕끄덕
» 세비야 대성당 내부에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 성모 마리아의 얼굴 모습이 동양적이라 이채롭다.
성모 마리아가 웃고 있다. 아기 예수를 사랑스럽게 안고 있다. 성모 마리아상의 얼굴이 익숙하다. 동양의 보살 모습이다, 가늘고 긴 눈 모양에 수줍게 웃는 입 모양까지. 아기 예수도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며 웃는다. 문득 자승 총무원장이 묻는다. “왜 성모 마리아가 웃는지 아시나요?” 다들 머뭇거린다.
“아기 예수가 손가락으로 턱을 간질이고 있어서 그래요.” 순간 다들 폭소를 터뜨린다.
지난달 27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자리한 세비야 대성당에서는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성당 이모저모를 자세히 살피며 성지 순례를 하고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내부에는 그림, 조각품, 목조 조각 등 종교 관련 예술작품뿐 아니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플라테레스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유해도 안치돼 있다. 성모 마리아상의 앞에서 한국 종교 지도자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마음을 열었다.
» 세비야 대성당 외부 모습. 참배객들이 항상 몰린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지난달 24~29일 5박6일간의 일정으로 이웃 종교 체험을 위해 스페인 성지순례를 했다. 이번 성지 순례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천주교 주교회의 김희중 대주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여의도 순복음교회), 천도교 박남수 교령, 유교 어윤경 성균관장 등이 참가했다.
세계 각지 순례자들도 호기심 눈길
세비야 대성당에 들어서자 자승 총무원장이 제안을 했다. “천주교 성당에 들어왔으니 김희중 대주교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다들 성당 한가운데 있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인다.
» 세비아 대성당 내부에 세워진 십자가 예수
» 세비아 대성당 내부의 벽 장식
» 세비아 대성당의 내부 벽화
» 세비아 대성당의 천장에 그려진 그림
» 새비아 대성당 외부의 장식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김 대주교는 차분한 목소리로 기도한다. “한국에 있는 모든 종교가 마음을 합해 평화가 공존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남북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다스려주시고 힘을 모아주소서. 이번 성지 순례가 우리 사회와 국가, 각 종단의 공동체를 위한 유익하고 의미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남북한이 화해의 길로 가고, 평화공존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이 모든 기도가 각자가 믿는 절대자의 힘으로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주변에서 성당을 참배하던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흥미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천주교 대주교가 기도하고, 스님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종교 간의 화합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듯하다.
» 알람브라 궁정의 한 가운데 있는 사자의 중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의 종교지도자들. (왼쪽부터) 유교 어윤경 성균관장, 천도교 박남수 교령,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천주교 주교회의 김희중 대주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순례 세번째 날에는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찾았다. 우리에게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연주로 유명한 곳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베르베르족은 714년 그라나다 북쪽의 코르도바에 무어 왕조를 세웠다. 가톨릭 세력에게 코르도바가 공격당하자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로 몰려들어 나스르 왕조를 세우고 이 궁전을 지었다.
» 기타연주곡 ‘알람브라 궁정의 추억’의 작곡 모티브가 된 알람브라 궁정의 분수대.
» 알람브라 궁정의 벨라탑. 외부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탑으로 종탑에 있는 종을 1월2일 결혼하지 않는 젊은 여성이 치면 그 해에 결혼한다는 전설이 있어, 이날만 되면 종을 치기 위해 처녀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 알람브라 궁정의 사자 장식
가톨릭 신자가 90%인 스페인에 이교도인 이슬람의 궁전이 보존되고 있는 셈이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제자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다가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알람브라 궁정을 걷다가 정원의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이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한없이 애잔한 멜로디와 영롱한 음색의 깊은 울림은, 이 기타 연주곡을 들은 이로 하여금 이 궁전을 찾게 만든다.
빗장 풀린 봉쇄 수녀원
알람브라 궁정의 한가운데는 물을 뿜는 12마리의 사자상이 있는 ‘사자의 중정’이 있다.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는 회랑이 둘러싼 중정은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파격적이다. 궁정 안에 사자의 형상을 한 분수대를 설치하고 보존한 뜻은 그 당시 그라나다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열두 부족장들이 자신을 지배하는 나스르 왕조의 술탄에게 우호의 증표로 보낸 선물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다르지만 이슬람교도와 유대인들이 당시에는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았고, 이슬람교도들이 자신들의 교리에는 어긋나지만 두 종족 사이의 평화를 지키려는 의도에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사자상을 바라보며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론다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은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는 봉쇄수녀원. 수녀 한 명이 데레사 성인 유해(손가락)를 모셔오자 자승 총무원장이 유해에 입을 맞추고, 염주를 선물로 주었다.
이날 오후엔 론다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을 찾았다.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녀원이다. 한국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왔다는 이야기에 굳게 닫혔던 대문이 열렸다. 수녀 한 명이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 유해(손가락)를 모셔왔다. 자승 스님이 그 유해에 입을 맞추고, 염주를 선물로 주었다. 수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라나다·세비야(스페인)/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