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불교 카툰 ‘만만한뉴스’ 공동대표 지찬 스님
“와우! 상금을 500만원이나 받았어요. 빚을 좀 갚을 수 있게 됐어요.” 스님으로부터 지극히 세속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좀 생소하다. 하지만 스님의 표정은 너무 밝다. 행복해 보인다. 스님은 만화를 그린다. 한 컷 만화로 불경의 심오함을 표현한다. 직접 그린 캐릭터로 카카오톡의 이모티콘도 출시했다. 지극히 디지털적인 스님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노트북도 최신형이다.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한다. 불교계도 그의 ‘첨단’을 인정했다. 지찬(41) 스님은 최근 조계종 총무원이 수여하는 ‘불교언론문화상’의 뉴미디어 부문을 수상했다. 이례적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에 기러기 날개 모양의 여덟팔자 눈, 웃음을 듬뿍 머금은 표정, 그가 창조한 캐릭터 ‘어라 스님’은 불교계의 아이돌 스타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 든다.‘고교 졸업장 가져와라’ 스님 말씀에
동국대 졸업 뒤 2004년 수계 받아
동생이 보던 일본 만화 보고 ‘깨달음’2011년 성신여대 만화창작 과정 ‘도전’
캐릭터 ‘어라 스님’ 개발 아이돌 스타로
불교언론문화상 뉴미디어상 ‘첨단포교’그는 ‘신세대 포교사’로 불린다. 젊은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카툰으로 포교를 하기 때문이다. ‘어라 스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힘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고, 지친 오후에는 “마음 챙겨”라고 속삭인다.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참을 인’(忍)자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리게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분홍색 하트를 날리기도 한다. 그는 카툰 뿐 아니라 <불교방송>의 디제이(DJ)도 한다. 재치있는 입담과 심금을 울리는 음악으로 청취자들을 불교의 세계로 이끈다.‘어라 스님’은 지찬 스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사물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어라?’라는 말은 궁금증이 일 때마다 그가 자연스럽게 내던 감탄사였다. 조숙했던 탓인지 중학생 때부터 생과 사의 문제에 천착했다. 온갖 사물의 존재 이유가 궁금했다. 학교에서는 그의 궁금증에 답을 주지 못했다. 결국 삶의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옥상에 올라가서 난간에 섰다.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내려다보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순간 “왜 두려움을 느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자살은 지금 선택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교 1학년 때 해인사로 갔다. 출가를 결심했다. 그를 면담한 스님은 “고교 졸업장을 가져오면 출가시켜준다”고 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마침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3년 행자승 과정을 거쳐 이듬해 송광사에서 수계를 받았다.전국의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 속세의 일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만화를 만났다. 막내 동생이 보던 일본 만화책이었다. 고이즈미 요시히로가 그린 <우리는 모두 돼지>세권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간단한 선으로 그린 만화가 그 자신 오랫동안 번뇌해온 삶과 불교의 문제를 쉽게 풀어주었기 때문이다.“문득 만화를 배우고 싶었어요. 만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설법이 아닌 한 컷 만화로, 중생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었어요.”지찬 스님은 4년 전 성신여대 사회교육원의 만화창작 과정에 입학했다. 승복 차림으로 여대를 들락거리기가 쑥스러워 추리닝을 입고 다녔다. 늦깍이였지만 목표가 있기에 의욕이 샘 솟았다. 평가도 좋았다. 지난해 불교박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내친김에 불교카툰신문 <만만(卍卍)한 뉴스>를 불교 카툰 작가들과 창간해 공동대표가 됐다.“만만은 ‘부처님 가르침이 가득하다’는 뜻과 ‘어렵지 않게 쉽게 대할 수 있다’는 우리말 ‘만만하다’ 두 가지 의미를 담았죠.”지찬 스님은 의정부 시내 한 포교당에 거처를 삼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오디오 전문가인 도반 스님의 포교당에 방을 하나 빌렸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 항상 얼마간의 빚을 지고 산다. 하지만 마음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욕심을 내려놓은 탓일까?“비록 속세에서 만화를 그리고, 방송을 하지만 불교 수행은 항상하고 있어요. 어디든 그곳이 공부하는 산이 된다는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어요.”의정부/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