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인 이인근씨가 2014년 6월 10일 대법원 앞에서 사측의 부당해고에 대한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며 일인시위 중이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7년을 이어온 인연들이 있다. 날수로는 3000일, 햇수로는 10년째, 해고자인 콜트콜텍 노동자들이다. 신부인지라 처음에는 그들만 봐도 목이 멨다. 결심하지 않아도 몸은 어느새 그들 옆에 있었다. 그저 곁에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무심한 날수만큼 눈물도 가물어갔다. 뜨끔거리던 가슴 언저리도 잠잠해졌다. 그런 나를 자책도 했고, 내 감정에 충실한 것이 꼭 상대방에게도 좋은 것만은 아닐 거라 세련되게 자위도 했다. 하지만 늙은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들을 찾아오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하나같이 힘내라고,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이젠 내게 너무 무거워진 말들도 빠트리지 않는다. 어쩌면 이대로 주저앉아도 그만일 그들을, 절단 난 그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건 그런 말들인지도 모르겠다.
현대 세계와의 대화를 기치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었던 요한 23세는 흔히 진보로 분류되는 교황이다. 냉전 시절 소비에트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까지 만날 만큼 그는 대담하면서도 낙천적이었다. 당장 세상 종말이 닥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거짓 예언자들을 경계하라 할 만큼 내일을 낙관했다. 6년의 짧은 임기 동안 신자를 막론하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인물이자 교회를 세상 한복판으로 단박에 옮겨놓은 사람이다.
» 교황 요한 23세(왼쪽)와 교황 비오 9세.
그런 그와 나란히 같은 날(2000년 9월 3일) 시복(성인의 전 단계)된 인물은 현대 문명 자체를 단죄한 ‘보수’의 상징, 교황 비오 9세였다. 상반된 두 인물을 한날한시에 배치한 교회를 두고 학자들은 가톨릭 특유의 균형감이라 평했다. 일면 맞지만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비오 9세 역시 시대의 수인이었다. 폭력적 국가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범람 앞에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많지 않았다. 요한 23세도, 비오 9세도 모두 교회의 경험이다. 진보와 보수, 옳음과 그름 너머 모두 역사의 부침 속에 자신을 찾아가던 교회의 여정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양심 속에 활동하고 역사 속에 현존함을 굳게 믿는다.” 요한 23세의 확신은 그가 신뢰를 둔 곳이 낙관적 내일이 아니라 부대끼면서도 전진할 역사의 깊이였음을 깨닫게 한다.
누구나 벅찬 현실과 마주하게 되면 묻게 되는 것이 있다. 희망할 이유다. 하지만 완고한 어둠 앞에 그것은 확신이라기보다는 주문에 가깝다.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이 생면부지였던 이들이 내민 손길일 수도 있겠다. 무모한 전장에 떠미는 것이 주문이든 뭐든, 노동자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아니 자신들도 모를 테지만, 그들이 지키고 싶은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프리모 레비가 지켜낸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겠다. 철저하게 짓이겨졌지만 인간이었음을 한사코 잊지 않으려했던 레비, 그의 기억으로 다시 한 번 온전할 수 있었던 인류라는 대명사, 끝내 지켜냈던 인간이라는 존엄 말이다. 노동자들의 싸움이 그들만의 것일 수 없는 이유고 내 늙은 마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다.
곧 성탄이다. 하지만 예수가 가져올 거라 믿었던 평화도 구원도 아직은 없다. 그렇다고 실패는 아니다. 다만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다. 역사의 깊이를 믿는 이라면 이 미완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상징도 알아볼 테다.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할지 모르지만 이미 살고 있는 저 무모한 이들처럼 말이다.
장동훈/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