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언론문화상 받은 지찬 스님
한 컷 카툰 주인공 ‘어라 스님’ 불교계 아이돌 스타
카톡 이모티콘·웹툰도 선봬…불교방송 디제이까지
“와우! 상금을 500만 원이나 받았어요. 빚을 좀 갚을 수 있게 됐어요.”
스님으로부터 지극히 속세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좀 생소하다. 하지만 스님의 표정은 너무 밝다. 행복해 보인다. 스님은 만화를 그린다. 한 컷 만화로 불경의 심오함을 표현한다. 직접 그린 캐릭터로 카카오톡의 이모티콘도 출시했다. 지극히 디지털적인 스님이다.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하는 노트북도 최신형이다.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한다.
불교계도 스님의 ‘첨단’을 인정했다. 지찬 스님(41)은 최근 조계종 총무원이 수여하는 ‘불교언론문화상’의 뉴미디어부문을 수상했다. 불교 수행을 하는 스님이 뉴미디어상을 수상한 것은 이례적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에 기러기 날개 모양의 여덟팔자 눈, 웃음을 듬뿍 머금은 친근한 스님 ‘어라’는 별다른 말없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든다. 이미 그가 만든 어라 스님은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불교계에서는 아이돌스타이다. 하지만 그런 어라 스님을 만든 지찬 스님은 중학교 때부터 자살을 꿈꿨다. 고통 없는 자살을….
중학생 때부터 생사에 집착, 자살 시도…누이동생도 비구니
그는 ‘신세대 포교사’로 불린다. 젊은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카툰으로 포교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인 어라 스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힘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지친 오후에는 “마음 챙겨”라고 속삭인다.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참을 인(忍)’자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리게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분홍색 하트를 날리기도 한다. 카툰뿐 아니라 불교방송의 디제이(DJ)도 한다. 재치있는 입담과 심금을 울리는 음악으로 방송을 듣는 이로 하여금 불교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포교활동을 한다고 평가를 받는다. 여동생도 비구니 스님이니, 한 집안에 두 명의 스님이 있는 셈이다.
어라 스님은 지찬 스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사물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어라?’라는 말은 궁금증이 일 때마다 그가 자연스럽게 내던 감탄사였다. 조숙했던 탓인지 중학생 때부터 생과 사의 문제에 천착했다. 온갖 사물의 존재 이유가 궁금했다. 학교에서는 그의 궁금증에 답을 주지 못했다. 결국 삶의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옥상에 올라가서 난간에 섰다.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내려다보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순간 “왜 두려움을 느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자살이 지금 선택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교 1학년 때 해인사로 갔다. 출가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를 면담한 스님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져오면 출가시켜준다”고 말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마침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행자승 과정을 거쳐 2004년 용화사에서 수계를 받았다.
선방 떠돌다 막내 동생이 보던 일본만화 보고 충격
전국의 선방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 속세의 일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화를 만났다. 막내 동생이 집안에서 보는 일본 만화책이었다. 일본작가 고이즈미 요시히로가 그린 <우리는 모두 돼지>라는 세 권짜리 만화책이었는데, 스님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간단한 선으로 그린 만화인데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민했던 삶과 불교의 문제를 쉽게 답을 주고 있었다.
“문득 만화를 배우고 싶었어요. 만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설법이 아닌 한 컷 만화로, 중생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었어요.”
지찬 스님은 4년 전 성신여자대학교의 사회교육원에서 하는 애니메이션 과정에 입학했다. 스님 복장으로 여자대학을 가기가 쑥스러워 체육복 차림으로 등교했다. 늦게 배우는 만화였지만 목표가 있기에 의욕이 샘 솟았다. 주변에서 좋게 평가해 주었다. 지난해 불교박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내친김에 불교카툰신문 ‘만만(卍卍)한 뉴스’를 창간해 대표가 됐다.
“불교박람회에 같이 참가한 작가들과 함께 불교적이면서도, 만화가 삽화로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웹툰을 만들기로 했어요. 만만(卍卍)은 부처님 가르침이 가득하다는 뜻과 한글로 어렵지 않게 쉽게 대할 수 있다(만만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죠.”
저잣거리 친구 스님 포교당 방 한 칸 빌려 작업
지찬 스님은 의정부 시내의 한 포교당에 거처를 삼고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과 출가 동기이고, 오디오 전문가인 친구 스님의 운영하는 포교당에 방을 하나 빌렸다. 수입이 일정치 않아 항상 얼마간의 빚을 지고 산다. 하지만 마음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욕심을 내려놓은 탓일까?
“비록 속세에서 만화를 그리고, 방송을 하지만 불교적인 수행은 항상 하고 있어요. 공부가 산속에서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어느 곳을 가든지 그곳이 공부하는 산이 된다는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어요.”
의정부/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