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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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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햇빛과 공기로 고통 발효시켜 희망을 담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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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필립보 생태마을’ 황창연 신부

  중2 15살, 아파도 너무 아팠다
 온몸이 바늘로 찌르듯
 
 그래서 마셨다, 독한 술을
 잠시 그때뿐, 세상은 온통 회색빛
 
 근처 성당에서 온종일 기도로 살았다
 응답이 왔다, “여기가 네 집이다”
 
 마침내 신부가 되고 꿈인 공동체
 기증받은 알맞춤한 산기슭에 마련
 
 국산콩 1500가마로 메주 1만5천개
 300개의 장독엔 된장 간장 가득
 
 피정 온 시각장애인들
 불편할 텐데 행복해 보인다니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렇단다
 
 전혀 모르는 할머니 한 분이
 어느 날 내민 봉투에 100억원
 
 아프리카 잠비아 농지 개발 위한
 포클레인 도움 호소에 10억원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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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마셨다. 처음엔 소주를 마시다가 값싸고 독한 국산 양주인 ‘캡틴 큐’를 마셔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15살. 친구들은 학교에 갔지만 그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온몸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손발의 관절이 붓고 걸을 수도 없었다. 팔목이 부어서 글씨도 쓸 수 없었고, 숟가락질도 어려워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턱관절이 튀어나와 얼굴이 삐뚤어지기도 했다. 독한 약을 먹었지만 고통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병원에서는 류머티즘 관절염이라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3년간 그는 그렇게 술을 마시며 홀로 지냈다. 그나마 술이 그를 고통에서 잠시 잠시 해방시켜 주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외로움 두려움 병마, 3중고에도…
 우연히 집 근처 성당에 갔다. 아무도 없는 평일 낮의 성당. 너무 편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2년 동안 성당에서 하루 종일 기도를 하며 지냈다. 아픈 몸을 어서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문득 어떤 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네 집이다.” 소년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멀리서, 은은히 그 소리는 계속 소년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깨달았다. 그 목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라는 것을. 그래서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검정고시를 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성적이 바닥이었다. 1학년 610명 가운데 597등.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병마의 삼중고에 시달렸다. 2학년 1학기 내내 학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묵언의 수행이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도 올렸고, 신학대학에도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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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연(51) 신부는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나 아파요. 힘들어요. 내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라고 이야기했더라면 그 힘든 풍랑을 넘어설 수 없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남에게 나를 이해시키기보다는 자신을 설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납치범이 신부님 시디 듣고 살려줘 전재산 내놔
 현재 강원도 평창에서 ‘성 필립보 생태마을’을 운영하는 황 신부는 1년에 300회 이상 강연을 한다. 자신이 겪은 수많은 ‘기적’을 증언한다.
 그가 겪은 기적 가운데 한 가지다. 어느 날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가 찾아와 “신부님! 하시고 싶은 일에 쓰세요”라고 말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무려 100억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돈을 기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할머니는 어느 날 납치를 당했다. 이틀간 할머니 차 트렁크에 할머니를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납치범은 할머니 차에 꽂혀 있는 황 신부의 강의 시디를 들었다. 할머니는 부자였지만 생활은 검소했다.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할머니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납치범은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할머니를 살려주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할머니는 전재산을 자신을 살린 목소리의 주인공인 황 신부를 찾아 헌금으로 내기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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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가 된 뒤 평택과 경기도 광주에서 본당 신부를 지낸 그는 생태마을을 운영하고 싶었다. 생태마을은 그가 신학생 때부터 꿈꾸던 삶의 방식이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이들이 모여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적합한 땅을 찾았다. 그 땅은 천주교 수원교구가 기증받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개발을 하지 못했던 강원도 평창 정개산 기슭의 땅이었다. 황 신부는 수원교구를 찾아가 개발을 제의했다. 담당 신부는 “성령이 황 신부를 나에게 보내주었다”며 선뜻 땅을 내주었다.
 하지만 개발 자금이 없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났어요. 기적이었어요. 그 천사는 성 필립보 생태마을을 탄생시킨 주인공인 김창린(필립보) 신부님이었어요.” 황 신부가 신학생 때 본당 신부로 모셨던 인연이 있던 김 신부는 당시 수원교구의 원로사제였다. 황 신부는 생태마을 건물의 뼈대 값만 해결했고,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20억원 정도가 더 필요했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김 신부는 평생 모아둔 장학금을 선뜻 내주었다. 그 덕분에 생태마을을 완공할 수 있었다. 마을 이름도 신부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문의전화가 와요, 싱싱한 생태가 있냐고. 어떤 이는 황태도 파냐고 물어요, 하하하.”

옷 100억어치 10만벌 선뜻
 어느 날 생태마을로 시각장애인 200명이 피정을 왔다. 시각장애인들은 생태마을에 머무는 내내 해맑게 웃었다. 그래서 황 신부는 물었다. “몸도 불편하신데 참 행복해 보이시네요.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으시나요?” 시각장애인이 답했다. “신부님, 우리는 눈에 뵈는 게 없어서 행복합니다.” 그들의 유머였다.
 한 시각장애인이 말했다. “신부님, 이렇게 경치 좋은 곳 처음 와 봅니다.” “아니 어떻게 경치 좋은지를 압니까?”(생태마을은 해발 300m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평창강이 휘돌아 흘러 사실 멋지다.) “신부님,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 흐르는 강물 소리와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바람이 싣고 오는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 보지 못해도 알아요. 얼마나 경치가 좋은지.”
 “두 눈 멀쩡한데 ‘사는 게 지겨워’,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라고 불평하는 이들은 주어진 복을 누릴 줄 모르는 이들입니다. 제 복을 차버리는 셈이죠.” 황 신부가 이야기한다.
 황 신부는 아프리카 잠비아의 농지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땅은 20년 전부터 한국의 수녀님들이 봉사하는 곳이다. 농토 곳곳에 개미집이 있어 옥수수 등 곡식을 심을 수 없다. 개미집은 삽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한 탑 형태이다. 땅을 개발하기 위해선 포클레인이 필요했다. 지난해 방송을 통해 도움을 호소했다. 2억원이 있으면 천만원짜리 중고 포클레인 한 대를 보낼 수 있다고 호소했다. 무려 10억원의 성금이 답지했다. 한 독지가는 컨테이너 두 대 분량의 옷을 기증했다. 10만벌로, 시가 100억원어치였다. 잠비아는 해발고도가 높아 날씨가 춥다. 그래서 두툼한 옷이 필요했다. 황 신부는 또 자신의 강연료나 책 인세를 모아 잠비아에 간호대학을 짓고 있다. 그가 쓴 <사는 맛 사는 멋>(바오로딸 펴냄)은 15만부가 팔렸다.

청국장 가루가 그에겐 만병통치약
 성 필립보 생태마을엔 300개의 장독이 있다. 올해 만든 메주가 1만5000개. 모두 국산 콩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 콩 1500가마를 사들였다. 무쇠솥단지를 걸어 놓고 참나무 장작으로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든다. 농약 안 친 짚을 구해 열십자로 메주를 묶어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한달간 매달아 놓으면 하얀 곰팡이가 핀다. 이 메주를 황토방에서 보름 정도 발효시켜 평창의 청정한 햇빛과 공기에 말린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숨쉬는 항아리에 말린 메주를 넣고 간장과 된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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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신부는 청국장에 애착이 많다. 어린 나이에 음주를 많이 한 탓인지 나이 들어 위암 수술까지 한 황 신부는 청국장 가루를 먹으며 편한 속을 유지하게 됐단다. 그에겐 청국장 가루가 거의 만병통치약이다. 
 “전국의 우리 콩을 모두 수매해 메주로 만들고 싶어요. 농민들도 살고, 건강도 살릴 수 있어요. 간단한 원리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거스르면서 생긴 병은, 하느님 주신 대로 돌아가면 치유받아요.” 그가 생태마을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200명을 수용하는 생태마을은 이미 올해 8월까지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평창/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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