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종교음식 전문가
권력은 그들만의 음식문화 코드를 만들어 탐식해
자신만의 레시피로 함께하고 동물과 인간 공존을
‘먹방’의 시대이다. ‘먹고 마시는 방송’이 대세이다. 전국의 맛집을 구석구석 찾아내서, 맛있게 먹는 ‘먹보’가 뜨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대중의 스타가 됐다. 한국인 유전자에 있는 식탐 탓일까? 아니면 한국의 정신문화적 코드에 ‘풍류’가 있기 때문일까?
다이어트 부작용 겪고 불교윤리 공부
먹방의 카메라를 로마시대로 옮겨보자. 연회 참석자들은 알프스에서 실어온 얼음과 다양한 포도주로 가볍게 목을 축인다. 알프스의 얼음을 식탁에 옮겨오기 까지는 얼음이 녹기전에 로마 귀족의 식탁에 올리기 위해 노예들의 촌각을 다투는 질주가 필요했다. 내장을 꺼내고 소시지로 배를 채운 돼지, 거위의 내장, 양의 고환, 송아지 췌장, 곰 엉덩이살,달팽이 튀김 등 진귀한 산해진미가 대중욕탕을 다녀온 귀족들의 식탐을 자극했다. 로마의 미식가들은 더 많은 음식을 맛보기 위해 억지로 구토를 해 위장을 비우고 다시 먹기를 반복했다. 먹는자가 곧 상류층이었고, 최고 지배계층이었다. 이런 탐식의 문화는 ‘미식’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됐다. 또 권력은 음식문화 코드를 복잡하고 정교하게 다듬어 일반인들이 흉내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종교음식 전문가인 김현진(45·)씨는 “먹방 현상은 음식의 왜곡된 관음증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이어트를 위해 먹은 음식의 부작용 때문이다. 대학생 때 그는 몸무게가 80㎏까지 불었다. 살을 빼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여섯달 동안 달리기를 하며 달걀과 닭가슴살을 주로 먹었다. 덕분에 체중은 40㎏이나 줄었고, 혈압 수치도 정상이 됐다. 하지만 눈가에는 가려움증과 각질이 자리잡았고, 우울증과 불면증도 생겼다. 병원에서는 ‘항상제 알러지’라고 진단했다. 닭고기에 함유된 항생제가 원인이었다. “그동안 먹은 닭이 양계장에서 어떻게 키워지는지가 궁금했어요. 유명 닭고기 양계장을 가봤어요. 충격이었어요.”
사람 입에 들어오기까지 다른 동물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는지를 직접 눈으로 본 김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불교윤리를 공부했다. 학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지만, 살생을 금지한 불교의 계율학을 통해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육식은 피하면서 식물 죽이는 건 괜찮은지 의문 들어
먼저 그는 불자들이 살생을 금지하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육식은 피하면서 식물을 죽이는 것은 당연시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살아있는 것은 죽이면 안된다는 ‘불살생의 원칙’을 지키려면 생존을 포기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로 초기 불교에서는 식물도 감각을 지니고 불성이 있다는 인도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수용했다고 한다. 탁발로 식사를 해결한 출가자들은 걸식에 의존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살생에 대해선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출가하지 않은 불교(재가)신도들은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공양을 통해 자신의 죄가 덜해지기만을 기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숲에 들어가 독립된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한 승려들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야 했고, 식물을 먹는 것은 해탈의 장애가 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며 채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됐다고 한다.
그럼 왜 불교 음식에서는 오신채를 금할까? 김씨는 “자극이 강한 파, 마늘, 부추, 달래, 홍거 등 다섯 가지 채소를 금지하는 전통은 이들 채소가 인간에게 음란한 생각을 일으키고, 탐(貪·욕심), 진(嗔·분노), 치(癡·어리석음)를 일으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애초 오신채를 먹으면 신선이 못된다는 도교의 전통이 불교에 흡수됐다고 김씨는 설명한다. 붓다는 파와 마늘만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고온다습한 인도에서 이 음식을 먹으면 심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먹는다는 건 생명 살리지만 다른 생명 죽이는 역설
중국과 일본 불교와는 달리 한국 불교에서 아직도 사찰음식에서 오신채 금지 전통을 유지하는 이유는 수행이나 공부를 하는 공동체에서 최적화된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마시는 과정 자체가 수행의 일부로 녹아 있는 것이 사찰음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다른 생명을 죽이는 역설적인 행위이죠. 종교에서 음식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건 교조주의가 아니라 결국 사랑이에요. 가난한 자, 없는 자와 나누는 밥상을 추구해야 합니다.”
최근 각종 종교와 음식의 연관 관계를 서술한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난달 펴냄)을 낸 김씨는 “먹방에 좌우되는 음식 문화가 아니라 자신만의 레시피와 음식 코드에 따라,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 의미있는 식탁을 차려주는 음식문화를 창조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나만의 식탁이니라 나와 너, 우리를 위한 식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외 계층에겐 먹고 마시는 것이 생존의 문제이자, 기본적인 삶의 과제입니다. 인간의 만찬이 풍성해지는 것은 함께 나눔에서 시작돼요. 강자가 약자를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는 날, 우리도 신들의 향연에 함께할 수 있어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