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검은 예수 <3>
세계성체대회 100만 명 침묵의 촛불행렬
필리핀 민주주의 지핀 ‘피플 파워’ 되기도
» 성체 행렬의 앞에 선 성광 실은 꽃차를 신도들이 초를 들고 따르고 있다.
다락방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예수는 12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했다. 최후의 만찬이다. 식사를 하던 예수는 빵을 쪼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희들은 모두 이것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 주는 내 몸이다.” 예수는 포도주를 든 잔을 들어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들의 죄를 사하려 주려고 흘릴 나의 피이다.”
아마도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빵이 자신의 몸이라니? 또 포도주가 자신의 피라니? 빵과 포도주를 받은 제자들은 당시는 예수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다음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겐 그냥 종교적 이야기일 뿐인 이 순간은, 신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이를 믿고 안 믿고가, 예수를 믿고 안 믿고와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기 위해 성찬례를 거행한다. 그리고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예수의 부활과 구원은 실제로 현존한다”고 믿고 다짐한다. 특히 예수가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주는 내 몸이다, 이는 너희들을 위해 흘리는 피다”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에 의미를 둔다.
29일 필리핀 중부의 세부에서 열린 제51차 세계성체대회의 미사와 성체 행렬은 그런 예수의 희생과 부활을 믿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뜨거운 믿음의 한마당이었다. 성체행렬은 성지순례의 축소판 형식이다. 신자들은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성당 밖으로 나선다. 손에 촛불을 들었다. 이는 성당을 찾지 못해 헤매는 예수가 길거리로 나서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또 하느님의 은총과 강복이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세계성체대회는 1874년 프랑스의 타미지에가 벌인 성체와 관련된 성지순례운동에서 유래해 1881년 프랑스 서북부 릴에서 제1차 세계성체대회가 열렸다. 4년마다 열리는 성체대회는 1989년 10월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서울에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성체 행렬의 상징인 성광은 화려하다. 성광은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한 성물. 가운데는 성체가 모셔진다. 둥근 성체는 곧 예수가 나눠준 빵이다. 성체를 품은 성광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성체 행렬의 앞에 선다. 세부의 주민들은 중앙 대로에 나와서 성광을 기다린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성체미사가 끝나자 성체 행렬은 천천히 움직인다. 가다가 가끔 멈춘다. 시골에서 거행하는 성체행렬은 자신들의 경작지를 축복하는 의미도 있었다. 행렬이 멈추는 이유는 쉬기도 하지만 모든 지역과 거리에 하느님이 머물러 계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침묵의 행렬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촛불만 반짝인다. 주최 쪽에선 100만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의 행렬.
서울에서의 촛불 행렬은 강한 의사의 표현이고, 물대포와 경찰의 무력 사용이 연상되지만 이곳의 촛불 행렬은 지극히 평화적이고 장엄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걷는다. 이런 종교적 힘이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지난 1986년의 ‘피플 파워’이다.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무너뜨리고 코라손 아키노 정부를 세웠다. 당시 탱크를 앞세운 정부 진압군을 막은 것이 가톨릭 주교과 신부, 수도자와 신자들이었다.
특히 세부의 가톨릭 신자들은 ‘아기 예수’를 모신다. 우리에겐 생소한 아기 예수는 ‘산토 니뇨’(아기 예수의 스페인어)를 기리는 축제를 즐길 만큼 굉장하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이 카톨릭 신부와 처음 필리핀 땅에 들어와 최초의 미사를 드린 것이 1521년. 당시 마젤란은 세부 섬의 원주민 지도자 우마본의 아내인 후아나 여왕에게 아기 예수상을 선물했다. 필리핀 최초의 그리스도 공동체는 이 아기 예수를 신앙의 중심으로 모셨다. 그러나 마젤란이 다른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죽고, 스페인 원정대가 필리핀에서 철수하자, 원주민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을 인도한 사목자를 잃었다. 그래서 몰래 아기 예수를 바라보며 44년간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1565년, 뒤에 필리핀의 초대 총독이 된 스페인의 군인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와 아우구스티노회 선교사들이 다시 필리핀을 점령할 때까지 그들은 산토 니뇨를 버리지 않았고, 산토 니뇨는 그들을 지켰다. 스페인 군대가 포격을 하고 마을을 살펴보니 불에 타서 무너진 오두막에서 기적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아기 예수가 발견됐다. 그때부터 아기 예수는 신앙의 상징이 됐다. 아기 예수가 발견된 곳에 성당이 세워지고, 발견된 날을 축일로 기린다. 발견된 4월28일이 예수 부활의 시기와 겹쳐 1월로 옮겼다.
필리핀인들은 아기 예수를 기리는 축제를 ‘시눌룩축제’라고 부른다. 시눌룩은 세부 언어로 ‘물결처럼’이라는 뜻으로 북소리에 맞춰 두 걸음 나아갔다가, 한 걸음 물러서는 반복된 춤사위가 게속된다. 손에는 칼과 방패도 들었다. 사람들은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며 “핏 셰노르(비나이다, 주님)울 외친다. 화려하게 장식한 한 명의 여왕은 아기 예수상을 들어 보이며 경배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 빵과 포도주의 소박한 표정이, 우리 여정의 힘과 양식이 되시며 희망이 증인이 된다”며 “이런 신비의 앞에서 이성은 한계를 느끼지만, 성령의 은총으로 빛을 받은 마음은 요청된 응답을 명확히 이해하고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를 인용해 성체 대회를 설명했다.
“착하신 목자, 참된 방이신 예수님/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오소서/ 천상의 빵이며 착한 목자/저희를 길러 주시고 지켜 주시어/불멸의 나라에서 당신의 빛나는 영광을 보게 하소서…”
세부(필리핀)/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