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 토론’서 수행지도 나서
물이 반쯤 든 유리잔을 얼굴 높이로 들었다. 그리고 옆의 통역에게 물었다.
“물이 잔잔해졌나요?” 통역은 답했다. “아뇨, 흔들리는데요.”
스님은 얼굴을 유리잔 가까이 디밀고, 시선을 물컵에 집중했다. 그리고 또 물었다. “이제 물이 잔잔해 졌나요?” “아뇨, 긴장이 더해져서 그런지 물은 더 흔들리네요.”
청중들은 조용히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26일 오후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6 세계명상대전’ 의 ‘무차(無遮)토론’에서 아잔 브람 스님이 대부분 불교 수행자의 숙제인 ‘내려놓음’의 비법을 설명했다. 무차토론은 수행을 많이 한 고승들이 일반 대중들과 함께 서로의 수행 경험과 의견을 별다른 벽이 없이 토론하는 불교 특유의 토론방식이다. 즉, 차별이나 격의 없이 떠오르는 화두와 의문에 대해서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즉문즉답식 토론이다. 일반인들에겐 고승의 ‘내공’을 나름대로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 킹 코브라를 쓰다듬으며 돌려 세운 아잔간하 스님이 부드럽게 웃고 있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이날 무차대회에는 세 분의 동서양 고승이 참가했다. 타이 불교의 큰 스승이자 숲속 은둔 수행자로 명상가 아잔 차의 직계 제자이자 조카인 아잔간하 스님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호주 출신으로 태국 아잔 차의 수제자인 아잔브람 스님, 그리고 한국 불교계의 대표 선승 혜국 스님 등이 참여했다.
마침 1천여명의 관중석에서 “집착에서 벗어나, 내려놓음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하나?”는 질문이 나왔다. 이 질문에 아잔브람 스님이 물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스님은 순간 집중하던 물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이제 물이 잔잔해졌나요?” 통역은 물컵을 자세히 보다가 대답했다. “네, 이제 잔잔해졌네요.”
스님은 설명한다. “그냥 이렇게 내려놓으면 돼요. 매우 단순하고 쉬워요.”
관중들은 큰 박수로 화답한다. 자신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마치 테이블 위에 놓인 물처럼 잔잔해짐을 느낀 것 같다.
스님은 보충 설명한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버려야 합니다. 자아가 있으면 엉망이 됩니다.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자체를 내려놓을때 깨달음은 옵니다.”
설명은 쉬운듯, 어려운 듯하다.
» 수행을위해 손가락을 태우는 고행을 한 혜국 스님이 깨달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젊은 시절 수행을 하며 자신을 다잡기 위해 오른손 세개의 손가락의 절반을 태우는 고행을 했던 혜국스님은 “모든 업이란 처음에는 내가 업을 만들지만, 점점 그 업이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이 업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무언가를 얻고자 이루고자 애쓰기보다는 버리는 것, 놓아두는 것” 이라고 조언했다.
‘고통’의 본질과 해소법에 대해 아잔 간하 스님은 “고통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우리가 이를 완화할 방법을 찾게 되는 만큼 때로 고통이 행복의 원인이 된다”며 ‘행복은 고통에서 온다’고 설명했고, 아잔 브람 스님은 “사람을 자살에 이러게 만드는 결정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놓아버림에 대한 훈련으로 극복가능 하다”고 말했다. 혜국 스님은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고통이 일어난다”며 “고통의 원인은 나의 습관에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명상대전에 참가한 스님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 세계명상대전에 참가한 스님과 일반인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성욕에서 해탈한 수행자가 실제로 있나?”는 관중의 질문에 대해 아잔 브람 스님은 “성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수행자를 본적이 있다. 두뇌학자들은 고통을 느끼는 두뇌 부문이 성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부문과 일치함을 발견했다. 이는 인간이 성적인 욕망을 즐거움이라고 해석하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혜국 스님은 “성욕은 갈증이나 배고픔 같은 욕망과 같은 차원”이라며 “이런 욕망의 공허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잔간하 스님은 “깨달음의 이치를 자꾸 말로 논하는 것 자체가 필요하지 않아요. 어떤 깊은 법은 말을 계속 할수록 혼란만 가중시킵니다.”라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정선/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