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규칙에 놓이게 될 때 생각을 하게 돼
모든 ‘말’들이 생생한 실감으로 생명 얻어
» 서울 중구 필동 감이당에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스님, 삼매가 뭐예요?” 불교동화책을 읽고 있던 아이가 묻습니다. 조금 생각하다가 “삼매란 ‘온전히 그것이 되는 것’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이 재미가 있어 밥 먹을 생각도 않고 심지어 자신의 존재마저 잊고 내가 온전히 책이 될 때 독서 삼매가 되는 것이라고 풀이해 주었습니다. 나와 대상이 접속하고 결속하는 일념과, ‘나’와 ‘너’라는 관념마저 사라진 무념의 경지가 바로 삼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삼매의 뜻을 잘 이해했다는 아이의 다음 말이 좌중을 웃음으로 흔들었습니다. “스님, 그럼 저도 큰스님들처럼 삼매를 얻었어요.” 무슨 삼매냐고 물으니 ‘게임 삼매’라고 합니다. 세간의 표현대로 모두가 빵! 터졌습니다.
» 용문사 템플스테이 ‘뽕잎밥 만들어 먹기 체험’에 참가해 점심 공양을 하는 학생. 이병학 기자
지난해 12월에 중학생 여덟 명과 함께 보름 동안 청소년 인문고전학당을 열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인데 학원에 보내지 않고 모든 것이 불편한 산중 암자에 보낸 부모들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산중으로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감성의 회복, 친구와의 협동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입시와 인터넷 환경 때문입니다. 인문학당에서의 교육 목표는 ‘아! 그 말이 그 말이었구나’를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유와 감성을 회복하고 그리고 아이들이 평생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많은 규제를 하였습니다. 스마트폰과 돈을 몰수했습니다. 몸이 부지런하면 정신이 깨어난다고 ‘세뇌’시키며, 손수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게 했습니다. 삼시 세 끼도 매우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또 학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서로가 경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익숙한 것에 갇히지 않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눈이 열리고 마음이 성장한다는 믿음으로 기존의 삶의 방식을 해체하고 규제했습니다.
사람은 낯선 규칙에 놓이게 될 때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산중에 살게 되니 엄마와 아빠가 그리워집니다. 인문학당 중간에 아빠의 생일을 맞은 수빈이는 전날부터 축하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 마음이 기특하여 제 전화를 주었습니다. 긴 시간 아빠와 말을 나눕니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러할 때 비로소 세상의 모든 ‘말’들이 생생한 실감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립다, 보고 싶다, 아프다, 심심하다, 배고프다, 외롭다, 기쁘다, 슬프다, 울고 싶다, 부끄럽다, 믿는다, 존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 SNS소통이 불통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말을 실감하고 사는 일입니다. 말은 그 말이 지시하는 의미와 감성을 회복할 때 마침내 활자와 소리를 넘어 내 삶의 뼈대와 속살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실감한다고 하는 것은 곧 사유와 감성이 한 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스마트폰의 액정에 눈과 귀가 몰두하는 시대, 삶의 공간에 사유와 감성이 머물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 말이 실감과 생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이 그 말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일상의 규칙을 규제하고 해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거짓으로 포장된 교묘한 말들을 걷어내고 진실한 말의 삼매를 꿈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