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이야기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직장에서 갈등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상사와 부하 직원이 의견 차이로 다투고 있다.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긴장감이 감돈다. 카메라가 직원의 분노한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이마에 깊이 파인 주름살이 유난스럽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직원은 분노를 터뜨린다. “이런 회사, 그만두겠소!” 배경음악이 극도로 고조되는 가운데 직원은 자리를 박차고 문을 거칠게 닫으며 나간다.
드라마가 끝나고 시원한 맥주 광고가 나온다. 막힌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간다는 소화제 광고도 연이어 나온다. 이것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나도 저랬어. 나도 사장 앞에서 저렇게 하고 나가야 했는데! 나도 다시 저런 상황이 오면 박차고 나가야지.” 그러나 텔레비전은 그 이후 문을 박차고 나간 직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더 이상 관심이 없다. 한 번의 카타르시스 때문에 그는 앞으로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하고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이력서에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텔레비전은 더 이상 가르쳐주지 않는다.
참을 만하면 참아야 하고 견딜 만하면 견뎌야 한다. 지나친 욕구와 욕망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그러나 조급함의 끝은 후회다. ‘참는다’는 말은 사람에 대한 인내를 말하고, ‘견딘다’는 것은 환경에 대한 인내를 말한다. 인내한다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내는 상황에 판단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에 패권을 차지했던 세 인물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을 평가하는 이야기가 있다. 울지 않는 앵무새를 앞에 두고 그들의 반응은 달랐다. 오다 노부나가는 말하기를 “앵무새가 울지 않거든 죽여 버려라”라고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앵무새가 울지 않거든 어떻게든 울게 만들어라”라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라고 했다. 성급하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 오다,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권모술수의 인물 도요토미,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무섭도록 차가운 도쿠가와, 이 세 사람 가운데 도쿠가와가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막부가 됐다. 결국 참고 견디는 사람이 천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나쁜 음식은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고난이라는 문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문을 두드리고, 누군가는 그 앞에서 돌아서며, 누군가는 그 문을 열고 지나간다. 물론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진 짐이 제일 무겁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신이 진 짐은 자신이 질 수 있으니까 진 것이지, 질 수 없는 짐을 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얼마나 참느냐가 승패를 가름한다. 내일은 어떨지 몰라도 오늘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참고 견뎌야 한다. 오늘은 인내의 속옷을 갈아입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