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왜 시큰둥하냐며 화내고 일일이 간섭하시는데…
법륜 스님이 모교인 경주고등학교를 방문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여러 질문 중에서 최근에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게 되어 고민이라는 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최근 들어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게 되어 대선배님께 질문 드립니다. 저는 평소에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너무 피곤해서 어머니 말씀에 좀 소홀히 반응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왜 어머니 말에 시큰둥하냐며 크게 화를 내시고, 그 일 이후 제가 하는 행동들을 일일이 간섭하십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싫은데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어린애예요, 어른이에요?
“싫으면 집을 나오면 돼요. (큰 웃음과 박수) 중국집에 취직해 짜장면 배달하거나 치킨집 보조일 하면서 사는 게 나아요, 아니면 ‘아직은 자립할 때가 좀 멀었다’고 받아들이고 어머니 잔소리 좀 들으면서 학교 공부하는 게 나아요?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어느 쪽이 나아요?”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질문자 망설이다 대답, 모두 웃음)
“지금은 내가 자립해서 살아요? 부모님 도움 받고 살아요?”
“의존하면서 삽니다.”
“의존하고 살지요? 질문자가 나중에 어떤 사람을 도와주게 되면 ‘내가 너를 도와주니까 네가 내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라는 생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니까’ 하고 따지지 말고 질문자가 현명하게 판단해보세요. 질문자는 어린애예요, 어른이에요?”
“아직은 어린...”
나라면 딱 집어치우고 중국집에…
“아니요. 어른이에요. 15살 넘었잖아요.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올라서 만주벌을 달릴 때가 19살이었어요. 옛날 같으면 장가 가서 애 하나 있을 나이쯤 돼요. 그러니까 절대 어린애가 아니에요. 우리가 원시 시대에 산다면 독립을 12살 때부터 합니다. 12살부터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에 부모로부터 독립해야겠지요. 내가 토끼를 잡든 뭐든 잡아서 먹고 살아야지, 부모가 절대로 안 도와줘요. 농경사회에서는 독립이 15살이에요. 조선시대에는 15살이면 장가 보내고 시집 보냈어요. 임금도 7살에 임금이 되면 15살까지는 ‘수렴청정’이라고 해서 엄마가 뒤에서 보살피다가, 15살 딱 넘으면 ‘친정’이라고 해서 임금이 직접 정사를 결정하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산업사회다 보니 학습기간이 길어졌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만 18세가 성년이에요.
그러니 질문자는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어른이지만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아직 미성년자니까 부모의 밑에 있는 거예요. 미성년자의 장점은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아직은 부모 말을 좀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부모니까 말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를 후원해주시는 분이니까 나도 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저라면 딱 집어치우고 중국집에 가버리겠어요. (학생들 감탄)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중국집에 가는 것보다는 엄마 잔소리 좀 듣고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년이 될 때까지는 엄마의 지원을 받는 대신에 조금 비위 맞추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에잇, 비위 맞추기 싫다’ 이렇게 해서 중국집 짜장면 배달을 하더라도 독립하는 게 더 나을까요? 질문자가 생각하기에 18살 될 때까지 앞으로 2년 동안은 어떻게 사는 것이 둘 중에 더 나아 보여요?”
“전자쪽이...”
“전자가 낫죠? 그러면 이걸 ‘엄마가 잔소리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고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먹고 살고 공부하는데 이 정도 잔소리쯤은 능히 들어줄 만 해요, 들어줄 만 하지 않아요?”
“들어줄 만합니다.” (모두 웃음)
교회 좀 다니세요…딱 맞는 예수님 말씀 있어요
“그래요. 그러니까 늘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고, 엄마가 잔소리 좀 해도 ‘감사합니다’ 하세요. 엄마는 어쨌든 의도적으로 질문자를 나쁘게 만들려고 잔소리하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는 나름 잘한다고 하는 거예요. 엄마가 잘한다고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질문자의 지금 처지를 질문자가 알아야 해요. 얻어먹는 주제니까 주인 말을 좀 들어야 해요. 대신 고등학교를 딱 졸업하면 바로 독립하세요. 알았죠?”
“예.”
“그때는 좀 더 얻어먹으려고 잔소리 듣는 것보다야 확 독립해버리는 게 나아요. 그러니까 지금 얻어먹는 동안에 공부 바짝 해서 괜찮은 대학에 가야겠죠? 아르바이트라도 하려면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야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좀 쉬울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소극적으로 임하는 건 바보예요. 지금 질문자가 엄마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차피 안 바뀌는 걸 바꾸려고 신경 쓰다가 자기 공부를 못 한단 말이에요. 이 상황을 그냥 유리하게 받아들이세요. 교회 다녀요?”
“안 다닙니다.”
“교회 좀 다니세요. (학생들 웃음) 교회 다니면 이런 경우에 딱 맞는 예수님 말씀이 있어요.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어라.’ 누가 나보고 5리를 가자고 해서 따라가면 가자고 한 사람이 갑이고 나는 을이에요. 그런데 내가 ‘10리 가 줄게!’ 하고 마음을 내버리면 누가 갑이 돼요?”
“제가 갑이에요.”
“그래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엄마한테 을이잖아요. 엄마가 갑이고 질문자는 을이어서 ‘잔소리 듣기 싫어’ 이렇게 해왔는데, ‘잔소리 안 들으면 좋겠지만, 지금 내 형편을 보니까 1~2년은 엄마의 지원을 받고 공부를 하는 게 나한테 유리하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 봐요. 그러면 스폰서에게 좀 잘 보이는 게 좋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좀 피곤해서 들어갔는데 어머니께서 오해하셨나 봅니다. 잘하겠습니다’ 이렇게 싹싹하게 2년은 잘 보여야 안 쫓겨나요. (학생들 웃음)
그런데 2년 넘어서도 계속 그렇게 빌붙어 살면 질문자는 주인이 못 됩니다. 질문자는 한 명의 독립된 인간이에요? 엄마의 노예예요?”
“독립된 인간입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엄마의 노예가 되면 안 돼요. 2년만 딱 지나면 엄마 말을 안 들어도 불효가 아니에요.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원을 받지 않을 때’라는 조건이 있어요.”
“충분히 해결된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내 실력이 100이라면 70정도 되면 잘한 것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명쾌한 즉문즉설이었습니다. 학생들도 예상치 못한 속시원한 답변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도 선생님들처럼 엄마 말 잘 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이렇게 정해진 답변을 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직설적인 답변에 깜짝 놀라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연 중간에 스님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고3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자발적으로 강연을 들으러 온 고3 학생들을 위해 수험생은 어떤 마음자세로 공부하면 좋은지 짧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수능공부한다니까 여러분을 위해서도 한 말씀 드릴게요. 시험을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자기 실력보다 더 나오길 바라기 때문에 시험이 부담스러운 거예요. (모두 웃음) 시험 칠 때는 내가 가진 실력대로 치는 거예요. 내가 가진 실력이 100이라 할 때 밖으로 표현되는 것은 70 정도가 되면 평균적으로 잘한 축에 속해요.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실력이 100이면 120이나 130쯤 나오기를 바래요. 그러다가 70이 나오면 기대했던 130에 비해 반타작으로 느껴지니까 ‘으아, 시험 못 쳤다’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험을 한두 번 못 쳐야지 맨날 못 치잖아요. (모두 웃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긴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자기 능력 밖을 원하는 거예요. 내가 실력이 100이라면 70이 나오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90으로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행으로 잘 치기를 바라지 말고, 실력을 한 150까지 끌어올리면 평균치로 해도 100 이상 나옵니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 며칠 더 한다고 성적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논다고 더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얼마 안 남은 기간 동안 욕심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세요. 그러면 확률상 긴장했을 때보다 편안할 때가 잘 나와요. 자기 실력이 100인데 긴장했을 때 70이 나온다면 편안할 때는 75나 80이 나와요. 여러분도 해봐서 알겠지만, 긴장하면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아닌 걸 고르라는데 꼭 맞는 걸 골라놓고 지난 뒤에 ‘어’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욕심을 줄이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내려놓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러분의 실력을 표현하기가 훨씬 용이해집니다.”
스님으로부터 깨알 같은 시험 공부 팁을 들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 교육은 규격에 맞춰 집어넣어앞으론 창조력 중시하는 ‘융합시대’강연을 마무리 하면서 스님이 학생들에게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모두들 큰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후배 학생들이 살아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창조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었습니다.“제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 여러분이 속한 청소년 시기의 특징은 심리가 약간 불안하다는 점이에요. 대신 굉장히 궁금한 게 많고 엉뚱한 것도 많아요. 그런데 현재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이 궁금하고 엉뚱하고 뭔가 시도해보려는 것을 규격에 집어넣어서 일단은 안정시키는 쪽에 중점을 두는 모방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긋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는 반면 창조력을 말살시키는 부작용도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서 주요하게 살아갈 시기, 즉 지금부터 20년 후는 이런 모방 시스템이 거의 종말을 고하고 창조력이 빛나는 시대가 될 거예요. 어느 학교 나왔고 전공이 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실제 실력을 얼마나 갖추었느냐가 중요한 시기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물론 그때에도 아직 학벌이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빠른 속도로 추세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그러니 이렇게 세상이 짜놓은 틀에 너무 얽매여 자기를 속박하지 마세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특별히 부족한 사람이 아니에요. 저도 여기 고등학교 다닐 때 월말고사 쳐서 수학성적이 조금 떨어지면 막 가슴아파했는데, 솔직히 그때 수학 점수가 70점에서 90점 됐다거나 100점에서 80점 되었다고 제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그러니 실력은 쌓되 성적에는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등수나 점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말이에요.선생님들, 학부형들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저를 초청했기 때문에 이런 말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저는 학생을 위해서 이야기하지, 학교를 위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스님 웃음) 그런데 이건 실력을 쌓는다는 걸 전제로 하고 하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사회에서는 실력은 필요하지만 등수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습니다.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꿈꾸는 창의력, 혼자서 하는 망상, 이런 것이 창조력의 근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분황사에 들어가 살았는데 학생으로서는 공부도 안 하고 좀 엉뚱해졌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많은 상상력을 갖게 됐습니다. 최제우 선생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원효대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다양한 것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만 있다가 과학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갖게 됐어요.여러분이 살아갈 미래의 시대는 수학이면 수학, 화학이면 화학, 물리면 물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융합 학문이 됩니다. 나아가서는 이과와 문과까지 융합이 돼요. 종교도 불교와 기독교로 나뉘어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융합해서 동서양이 통합된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내고, 나아가서는 종교와 과학이 융합되는 새로운 창조가 나올 겁니다. 학문이 이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그런 새로운 시대에 여러분이 지금 서 있으니까 성적 좀 떨어졌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고 여러분이 가진 재능들을 살리고 키워서 새로운 창조를 해나간다면, 꼭 노벨상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우리학교에도 그 정도의 창조력을 가진 인물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여러분이 학교와 나라의 꿈을 이루어주길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