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 ‘콘돌은 날아간다’ 한 장면.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은 바리사이였는데 하느님 앞에 의로운 자는 세리였다고 예수님이 선언합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사회지도층으로 살아온 것이 하느님 앞에 공덕이 되어야 정상인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바리사이] : “오, 하느님! 당신은 전지전능하시니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두 아실 겁니다. 제가 강도 같은 자들이나 불의한 자들, 간음하는 자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알고 계십니다. 저기 서 있는 세리같은 죄인도 아님을 아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하고 수입의 십일조도 열심히 바치는 신앙생활을 당신께서 알고 계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오하느님](하느님 성은 오씨ㅋ) : “그래? 네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네 자신이 이미 아는구나. 그러니 내가 너에 대해 판단하거나 충고해 줄 말도 없고 무엇보다 네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너를 위해 해줄 일이 없구나. 잘 가거라!
[세리] :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오, 하느님! 동족들이 저를 죄인으로 여겨 상놈처럼 취급하고 상종도 안하려 함을 아실 겁니다. 제발 하느님만이라도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 영혼이 얼마나 소외되고 날마다 고독에 우는지 당신이 모두 아십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오하느님] : “그래 너의 번뇌와 고독을 늘 보고 있었다. 다 내려놓고 내게로 오너라. 나는 어머니의 품이다. 자식이 살인자라 한들 자식을 내치는 어미 보았느냐? 네 마음과 영혼을 내게 맡겨라. 너를 보는 내 심정은 연민으로 가득하니 너로 인하여 뜨겁게 되었구나. 너의 무쇠처럼 단단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영혼은 나의 뜨거운 품에서 모두 녹아 없어질 것이다. 너를 위한 일을 만들어 보련다. 자식을 위한 수고는 얼마나 큰 어미의 기쁨이던가? 고맙다!”
[예수님] : “죄 많은 세리가 의롭게 되어 돌아갔으니 하느님 앞에 온 보람이 크도다!”
강자는 교만하기 쉽고 약자는 비굴하기 쉽습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패권을 가져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여기지요. 저 종편 텔레비전에 나와서 온갖 정치 현실과 시민사회 운동을 심판하고 칼질하는 사회 저명인사들을 좀 봐요! 북한은 제 동포로 여기지도 않고 미국을 숭배하고 친일 독재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듭니다. 자기들의 생각과 의도가 절대 옳은 진리로 여깁니다. 그들의 위대하신 판단은 하느님의 판단과 심판까지 대신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하느님의 안보를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역사를 아실 겁니다. 자신들이 늘 심판자로 군림했기에 하느님을 처형시키고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몰랐던 거지요.
신앙인이라면 부와 지배의 권력을 부러워하거나 얻지 못해 안달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에서 멀어져요. 자신의 삶을 늘 성찰하면서 각성하고 죄의식을 하느님 앞에 드러내는데 부지런해야 하고 자비의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죄는 영혼을 파멸시키지만 그것을 아는 죄의식은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을 받는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아오스딩 성인은 “오, 복된 죄여!” 하고 죄를 찬양하였습니다. 죄인임을 자각하게 하는 성찰능력은 공동생활 수행의 척도가 됩니다.
님이 오시나 보다. 봄비 내리는 소리!
※<산위의마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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