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다 공짜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0년 전, 변변찮은 우리 집 살림살이를 가져가는 분들마다 내게 연거푸 인사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유학 마치고 귀국할 즈음 세간살이를 정리해야 했다. 인터넷에 중고 물건을 판다고 광고를 내서 푼돈이라도 챙겨볼까 생각했는데, 가재도구마다 일일이 가격을 매겨 번거롭게 파는 게 귀찮기도 해서 필요한 분 있으면 거저 가져가시라고 글을 올렸다. 그냥 주긴 아까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받아가는 분들마다 고맙다고 나더러 인정 많다고 칭찬해주니 마음이 뿌듯했다. 뭔가를 소유하는 기쁨만 아니라 거저 주는 기쁨도 크다는 것을 그제야 처음 깨달았다. 보잘것없지만 가진 게 있어 베풀 수도 있었기에 감사했다.
지난 12월,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회사 지분의 99%를 평생에 걸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 더 평등하고 더 희망찬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약 52조원을 가난과 기아를 퇴치하고 포용적이며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훌륭한 결정이기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켠으로는 삐딱한 생각도 들었다. 평생 먹고살 걱정 없는 부자니까 큰 기부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도 여기저기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지만, 얼마간의 벌이가 있으니 가능한 게 사실이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정말로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은 남에게 줄 것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기부는 좋은 것이다. 사적 소유가 보장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소유를 약자에게 거저 주는 건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히 혁명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비단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뿐만 아니라 많은 보통 사람들도 이미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가진 게 있어야 베풀 것도 있는 법이다. 쥐꼬리만한 시급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알바생들, 각종 갑질과 열정페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장님 소리는 듣지만 사실상 도시빈민의 삶을 살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 종이박스를 주워 하루하루 연명하는 어르신들에게 기부란 배부른 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진 게 없어 베풀 것도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만 19살 이상 남녀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거권이다. 모두가 한 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선거는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 선거권을 기부하면 어떨까? 물론 내 맘에 들고 자기를 유익하게 할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고통당하는 자를 위해 투표권을 기부하면 어떨까?
가진 게 없어 저커버그처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재산의 99%를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급급한 막막한 인생이기에 베풀 재산도 없고 베풀 마음마저 메말라 버린 인생이 태반이다. 하지만 한 표를 갖고 있지 않은가? 혹시 아는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약자를 위해서 투표하는 이상한 선거로 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지.
남오성 목사(주날개그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