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을 일반인 함께 할 영적 쉼터 만들겠다”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
135명 수도자 생활하는 공동체
40대 젊은 원장 발탁은 파격적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람에게
여백 같은 공간 만들고 싶어”
‘수도원의 원장’은 엄격함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얼굴이 해맑게 바뀌었다.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의 새 아빠스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43·사진)를 6월19일 만났다. 아빠스란 ‘영적 아버지’, ‘영적 스승’이란 뜻의 콥트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자치수도원의 수도원장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다.
왜관수도원은 전세계 수백 곳의 베네딕도수도원 가운데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규모다. 135명의 수도자가 분도출판사, 피정의집, 순심교육재단, 분도가구공예사, 금속공예실, 유리화공예실, 분도식품, 분도노인마을, 구미가톨릭근로자 문화센터, 농장 등을 운영한다.
젊고 열려 있는 그가 이 거대 공동체의 종신 아빠스로 부름 받은 뜻은 뭘까. 그는 “왜 우리 공동체원들이 이런 무모한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파안대소를 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왜 저를 지금 이 시점에 수도원 장상(지도자)으로 불렀는지 공동체원들의 의견들을 모아가며 하느님의 뜻을 찾겠다”고 말했다.
공지영 작가의 <한겨레> 연재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배경이기도 한 수도원은 1909년 서울 백동에 한국천주교 첫 남자수도회로 설립된 뒤 함경도 원산 인근 덕원으로 옮겼다가 6·25로 남하해 왜관에 자리잡았다. ‘일하며 기도하라’는 베네딕도 수도원의 모토다.
울릉도에서 태어나 고교 때 대구로 옮겨 경북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97년 이 수도원에서 첫 서원을 하고 2001년 사제로 서품받았다. “92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수도원에 왔을 때 온종일 논에서 일하고 목공소의 나무들을 쌓으며 막걸리 한잔 마시며 일하니 생각이 단순해지고 행복했다.” 중학교 때부터 컴퓨터광이었고, 대학 때는 아마추어무선통신에 빠졌던 그는 일찍이 96년 수도원 누리집을 만들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연 장본인이다. 그는 이 누리집을 통해 ‘봉쇄구역’의 모습까지 외부에 공개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람들이 잠시 쉬며 내려놓을 수 있는 여백 같은 공간,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그는 수도원을 ‘일반인들도 함께할 수 있는 영적 쉼터’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훈남형이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겠다는 말에 그는 “대학 시절 ‘머지않아 한집에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여성도 있었지만 그때는 둔해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둔감하지 않다. 가톨릭의 본산인 로마에 5년간 유학도 다녀왔고, 2011년부터는 수련원장으로서 새내기 수도자들을 교육했다. 틈틈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왔다.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만남도 표피적이다. 하느님 체험도 그렇다. 일상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데, 내가 어려울 때만 필요할 때만 찾는다.”
그는 “처음엔 종을 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를 해야 하는 수도원 규율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멈추고 시작하고 일하고 멈추는 단순한 리듬에 내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니 그 안에서 큰 힘이 나오는 것 같다”며 “영적 휴식을 원하는 사람은 신자든 아니든 누구든 오라”고 두 팔을 벌렸다.
왜관(경북)/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