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번 미사만 마치면 사제관에 틀어박혔다. 신부가 되기까지 9년간 참으며 결심한 대로 잠만 잤다. 정말 달콤한 ‘자유’였다.
신학교의 일과는 엄격한 규율의 연속이었다. 새벽 5시 반 기숙사에 퍼지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며 기상해 아침기도 40분, 묵상 40분, 미사 40분의 예식을 치르고 아침식사를 했다. 비로소 전날 저녁기도 때부터의 침묵 규칙이 풀렸다. 잠깐 동료들과 대화를 하고 오전 수업, 점심, 참회 묵상, 오후 수업, 저녁식사, 묵주기도, 그리고 침묵이었다.
그렇게 한 달쯤 자고 나니 문득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스스로 하는 기도는 게으름 피우며 청한 낮잠보다 달콤했다. 그때 깨달았다. 사제라 해도 타율 기도는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고교때 신부 권유로 사제의 길
신학교 9년 마친뒤 한달간 잠만
“스스로 기도하니 잠보다 달콤”
종교간 대화·연극·방송 출연 활발
‘날라리 괴짜’ 별명도 개의치 않아
“척 대신 솔직” 인생상담서 펴내
홍창진(56·광명성당 주임신부) 신부는 웃긴다. 개그맨 수준의 입담으로 듣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외모부터 범상치 않다. ‘날라리 신부’ ‘조폭 신부’ ‘괴짜 신부’로 불린다. 그 자신 그런 별명을 좋아한다. 공적인 자리가 아니면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이 일상이다. 술도 자주 마신다. “신부가 뭐 저래?” 수군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버리고, 비우니까 행복해졌어요.” 근엄한 사제가 김치 국물 묻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동네 아저씨로 탈바꿈한 이유다.
그는 오페라 <토스카>에서 추기경 역을, 연극 <레미제라블>에서 주교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신부가 나오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한 케이블 방송 토크쇼인 <오 마이 갓>에서 거침없는 입담으로 눈길을 끌었다. 최근엔 인생상담을 담은 <홍창진 신부의 유쾌한 인생탐구>(중앙북스)를 펴냈다. 만능 재주꾼이다.
어머니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7남매의 다섯째인 그가 성직자가 되리라고는 가족 누구도 상상도 못했다. 선린중 시절 응원단장을 할 정도로 그는 끼가 많았다. 고교를 중퇴하고 대입 검정고시를 본 뒤 문득 고1 때 만났던 한 신부님의 권유가 떠올랐다. “제가 정말 신부가 될 수 있을까요?” “응.” 그 확신에 찬 답변 덕분에 그는 광주가톨릭대를 선택했다.
천주교 주교회의의 ‘종교간 대화’ 총무를 11년간 맡았던 경험도 그의 보폭을 넓혀주었다. 경기종교인평화회의를 이끌고 있는 그는 지난 5월 기독교·천주교·불교·원불교·천도교 등 경기도 7개 종교 단체 지도자 55명이 서명한 ‘지자체 재정개편안 철회’ 성명을 대표 낭독하기도 했다. 2005년 창단한 장애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를 이끌고 있다.
그의 행복 비법은 ‘솔직함’이다. “사제 생활 27년 동안 허세를 부린 절반은 행복하지 않았어요. 거룩한 척, 착한 척하느라 부자연스럽고 불편했어요. 그놈의 체면에 얽매여서 한 번도 진정한 평화를 느끼지 못했어요. 이제는 좀 못나고 부족한 대로 나를 드러낸 채 사람들 앞에 섭니다. 용기를 내서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순간,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맛보게 됩니다. 내 삶을 구속한 것이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행복해집니다.”
그는 “남 눈치를 보지 말고 내 눈치를 보라”고 강조한다. 남한테 인정받는 대신 나에게 인정받으면 만사가 즐겁기 때문이란다. 화도 내고 싶으면 내라고 말한다. “우리는 화가 나면 일단은 참으려고 생각해요. 화는 나쁜 것, 표현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는 잠재의식이 뿌리 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참으려는 태도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나빠져요.”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겁을 주고, 헌금을 내면 대신 기도해서 불행을 막아준다고 설교하는 종교도 있어요. 마치 보험회사처럼.”
그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 종교의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종교는 결코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상품이 아닙니다. 신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을 깨닫고, 욕심을 버리고 평화를 얻는 것이 종교의 참모습입니다.”
그는 65살에 조기 은퇴해 히말라야 해발 2500m의 전기도 없는 산골에 가서 바리스타를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힘겹게 올라온 산악인들이 외면할 수 없는 향긋한 커피를 팔며 노년을 보낼 것입니다. 은퇴한 동양의 신부가 내린 커피, ‘땡기지’ 않나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