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털어놔도 동조를 구할 뿐
어차피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 대단한 액션이나 엄청난 정답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냥 ‘응, 그래’ 정도의 맞장구면 된다. 그 사람들은 내게 정답을 바란 것이 아니다. 박미향 기자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방물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갈림길을 만나면 공중에 막대기를 던져서 갈 길을 결정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할머니가 갈림길을 만나자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기 위해 막대기를 공중에 던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머니가 막대기를 한 번만 던지는 것이 아니고 되풀이해서 던지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왜 그렇게 막대기를 여러 번 던지는 겁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떨어진 막대기를 주우며 대답했다. “이 막대기가 계속 오른쪽 길만 가리키잖아. 그런데 난 지금 왼쪽 길로 가고 싶거든. 내가 보기에는 왼쪽 길이 훨씬 순탄해 보이는데 말이야.” 그리고 할머니는 막대기가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을 가리킬 때까지 계속 던지고 있었다.
나는 가끔 고민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을 마주한다. 찾아온 방문객은 내 앞에서 가지고 온 문제의 보따리를 내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안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주저리주저리 말 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한참을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자신의 신세와 생각을 털어놓는다. 이럴 때 나는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공감의 탄식을 내면서 그저 “어, 그래… 그래서… 그렇구나” 정도의 간단한 맞장구를 칠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국 그는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좋겠지?” 하고, 자신의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답을 꺼내놓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무슨 해답을 얻었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해답을 찾은 그를 향해 “참 잘되었군”이라고 하며 지지해 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여기저기서 답을 구하지만 사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이미 마음속에 결정해 두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은 내가 가진 답에 대한 지지를 얻고자 함이다. 어차피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다른 답에 동조하여 내가 가진 답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답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불안해하며 그 불안을 해소하고자 동조자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얼굴이야 눈으로 보니 구별해 줄 수 있겠지만 깊이 감추어진 마음의 답을 어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구하지만 답은 내 안에 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내가 선택하여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남들의 기준이나 시선으로 정해진 답은 결코 나에게 정답이 될 수 없다.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기에 그냥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소견대로 사는 것이 좋다. 내 속에 답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나중에 핑곗거리를 만들지 말고 소신껏 밀고 나가야 한다. 그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오늘도 나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밖에 없다.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
문병하 목사/ 양주 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