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파교회 누리집 사진.
유월 어느 날, 산승이 교회에 간 까닭은? 좋은 책을 만들어 사람의 생각을 깨우고 세상을 흔들고 있는 한종호 목사에게 낚였기 때문입니다. 올봄 강진에서 조금의 인연이 있는 그와 고진하 시인의 영랑문학상 시상식에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가 출간한 책과 나의 책을 주고받았습니다. 얼마 후 한 권의 책을 보내왔습니다. 김기석 목사의 편지글이었습니다.
며칠 후 한 목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김 목사가 시무하는 용산 청파교회에서 열리는 출간 기념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무심히 책상에 둔 책을 보았습니다. 먼저 책 표지에 박힌 글들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세속적 우상과의 싸움에서, 회한과 절망 사이에서,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희망 사이에서” 김 목사는 자본과 욕망의 허상에 사로잡혀 비몽사몽으로 살아가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준엄하게 묻습니다.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책 표지를 읽고 나서 목차를 꼼꼼히 살폈습니다. 무엇보다도 흔한 말씀으로 훈계하는 글들이 없어서 믿음이 갔습니다. 자신과 세상을 향하여 정직하고 치열하게 질문하고, 사유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지혜와 감성이 어우러진 편지였습니다. 많은 시와 인문학 서적의 글에서 성찰하고 예언하는 목회자는 드물기 때문인지 초면에도 어색함 없이 호감과 정감을 나누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에게 질문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꾸려는 목자라는 믿음이 갔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마약과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왜 신은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 교종이 마닐라에서 12세 소녀에게 받은 질문을 되새기며,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세상의 굳어짐을 풀어주는 일이 종교의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고통이 왜 일어나느냐고 묻지 않고 그저 경전의 말씀이 유일한 정답이라며 기교 있게 쏟아내는 오늘의 종교인에게 따끔한 일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청파교회 누리집 사진자료실.
그날, 김 목사의 글과 함께 내가 받은 나직한 감동은 교회의 분위기였습니다. 100년이 넘은 교회의 겉과 안은 소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돈으로 치장한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그 흔한 리모델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음먹고 꾸미려고 한다면 결코 돈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본당의 벽은 옛 모습 그대로인 듯했고, 의자는 낡아서 반질반질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더없이 편했습니다. 엄숙하고 경건하고 따뜻한 가슴을 느꼈습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종교건축물이 넘치는 시대에 돈을 입히지 않는, 그 겸허하고 당당한 자신감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역대 담임목사들의 생각도 대단하지만 신자들 역시 훌륭합니다. 구원이 결코 크고 화려한 성전에 있지 않음을 알고, 대형 교회에 주눅들지 않는 그 신앙적 태도는 모든 종교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날 불교 수행자인 나를 대하는 교회의 신자들은 조금도 경계를 두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겸손하게 환한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고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유는 작은 깨달음을 시로 말했습니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그렇다면 그날 이후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청파교회에 앉아 본 뒤에야 오늘날 마음의 성전이 사치스럽고 허황됨을 알았네.”
법인 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