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청란교회 목사
»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인 청란교회 앞에는 잔디로 만든 미로가 있다. 미로를 따라 걸어서 가장 한가운데 도착하면 ‘나는 어디에 있나요?’(where am I?)라고 쓴 표지석에 도착한다. 청란교회를 만든 송길원 목사가 그 표지석 앞에 편히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십자가는 정면이 아닌 출입구 위의자도 교단도 없는 5평 크기오로지 한 가족만을 위한 예배공간‘죽기 전 가봐야 할 교회’ 중 하나로연애결혼하고 잉꼬부부인 척 했지만잔소리-고집에 실망해 이혼 직전까지분에 겨워 쓰러진 아내 보고 반성25년간 교회 없이 행복한 가정 사역양평에 종합가정치유센터 곧 완공가평 두 교회와 ‘영성-선교-가정’ 띠한국형 ‘바이블 벨트’로 순례코스“한국 교회 가면 벗고 고백을”
십자가는 정면에 있기 마련이다. 설교하는 목사의 뒤편에 자리 잡은 십자가는 그 공간이 교회임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교회의 정면엔 십자가가 없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예배 중간 중간 정면의 십자가가 사라집니다. 찬송가 가사를 알려주는 프로젝트 막이 내려와 십자가와 교인 사이를 차단합니다. 십자가는 항상 눈에 보여야 합니다.”
“그럼 이 교회엔 십자가가 어디에 있나요?”
“고개를 돌려 보세요. 십자가가 보입니다.” 고개를 돌렸다. 나가는 문이다. 그 문 위에 작은 십자가가 있다. “왜 십자가가 나가는 문 위에 있나요?” “예배를 보고 나가면서 십자가를 봐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떠나서도 항상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요. 등 위에 십자가를 두고 나가면 일상생활에서도 십자가를 마음에 두지 못합니다.”
송길원 목사(59)가 만든 교회의 십자가가 출입구 위에 세워져 있는 이유이다.
» 교회 바닥 면적은 5평크기. 10명 정도가 들어서면 꽉 차는 5평 크기의 청란교회 내부. 높이가 9m 천정을 보면 둥그런 모양의 실내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가족 해체“
이 교회엔 교인이 앉을 의자도 없고, 목사가 설교하는 교단도 없다. 교회가 작아서 일까? 교회 바닥 면적은 5평 크기. 10명 정도가 들어서면 꽉 찬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면 둥그런 모양의 실내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높이가 9m가 되니 그리 낮은 공간은 아니다.
중간에 서서 말을 하면 사방으로 소리가 울린다. 그 공명은 나를 떠난 소리가 우주를 돌아 다시 나에게 오는듯한 느낌이다. 교회의 외벽은 초록색이다. 외양은 세워놓은 계란이다. 초기 교회처럼 입식이다. 이름은 청란교회.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이다. “왜 이런 교회를 지었나요?”
“이 교회는 한 가족만을 위한 교회입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선 채로 예배를 봅니다. 남편의 호흡이 느껴집니다. 아내의 흰머리와 주름살이 보입니다. 자녀들과 눈이 마주치면 마음과 마음이 이어집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그분과 나의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게 됩니다.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찹니다.”
송 목사는 지난 25년 동안 자신의 교회 없이 사역을 해왔다. 그 사역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교회의 출발이 가정인데, 송 목사는 한국 교회가 기초 단위인 가정의 행복에 무관심했다고 말한다.
“가정이 행복하면 세상이 평화롭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첫 번째 제도가 가정인데, 우리는 그동안 가정을 잃고 살았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교회 건물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계란은 부활과 생명, 희망을 상징해요.”
송 목사는 세계 교회에 내놓을 한국을 대표할 교회를 짓고 싶었다고 했다. 교회는 대형화되지만 특징이 없는 콘크리트 빌딩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에 파묻혀 목소리를 잃고 있는 가족의 가치를 높혀 주고 싶었다고 한다. 오로지 한 가족만을 위한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주일에 한 가족이 교회를 갑니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가족들은 해체됩니다. 자녀들은 초등부, 중등부로 가고, 부모는 떨어져 예배를 봅니다. 왜 성가대는 가족이 함께 하면 안될까요? 또 아내는 점심을 봉사하기 위해 식당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해가 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가족이 만납니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C학점만 주던 철학교수가 장인
송 목사가 가족을 중심으로 사역을 한 이유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연애결혼을 했고, 남들에겐 화목한 부부로 비쳤지만, 부부생활은 원만치 않았다. 아내 김향숙(55)씨와 송 목사는 1983년, 1998년, 2003년 세 번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 관계를 유지하면서 똑같은 결혼식을 세 번이나 치르며 신랑 신부로 맞은 것은 결혼 생활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계속 결혼식을 올리고 가족문화운동을 펼치는 건 가정의 행복은 부부 두 사람의 끝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거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초 아내가 고등부 교사로 일하던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송 목사를 아내가 마음에 둔 것은 송 목사의 유머 감각 때문이었다. 한 번도 자식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김씨는 주변 사람을 항상 웃게 만드는 송 목사와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송 목사 역시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김씨에게 호감이 생겼다. 알고 보니 김씨의 무뚝뚝한 아버지는 송 목사가 대학시절 항상 C학점만 주던 철학교수. 송 목사는 “학창시절엔 C학점만 받았지만, 사위로서는 A학점을 받겠다”고 약속하며 결혼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에 대한 기대,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이 모두 다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송 목사는 아내의 사소한 잔소리를 참지 못했고, 김씨는 고집 센 가부장적인 남편의 모습에 실망했다.
목사 부부라 밖에선 늘 잉꼬 부부처럼 보여야 했지만 실제는 이혼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마침내 부부 싸움을 하다가 김씨는 분을 못 이겨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송 목사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고 깨달았다. 송 목사는 아내와 같이 기도하고, 부부문제 해결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서로의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했어요. 아내가 나를 무시할 거라는 생각에 차마 말하지 못했던 저의 부족한 점들을 털어놓았고, 아내는 어린 시절 겪었던 아픔과 설움을 이야기했어요. 아내의 아픔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송 목사는 교회가 부부 관계를 회복하고 가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해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를 만들었고, 2003년부터는 이름을 ‘하이패밀리’로 바꿔서 다양한 사회운동을 벌여왔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함부로 화를 내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면 부부의 사랑은 깨지기 마련입니다”라고 송 목사는 이야기한다.
» 송길원 목사가 디자인해 만든 십자가.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12마리의 물고기 형상으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창조의 가정 회복이 진정한 Go back”
송 목사는 경기도 양평, 가평 일대에 한국형 ‘바이블 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의 중남부와 동남부에 걸쳐 복음주의 교회공동체가 밀집된 바이블 벨트를 본떠 한국 개신교 나름의 특성이 있는 선교 순례지역을 만들고 있다. 송 목사가 8월 말 완공을 목표로 만들고 있는 종합가정치유센터인 ‘W-zone’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가평의 필그림하우스(이동원 목사), 생명의빛 예배당(홍정길 목사)을 이으면 한국형 개신교 순례코스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필그림하우스는 영성, 생명의빛 예배당은 선교, W-zone은 가정의 테마를 각각 맡게 된다. 3만평 규모의 ‘W-zone’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인 청란교회와 친환경 수목장, 산티아고 순례길이 조성된다. 독특한 공간 울림과 양식으로 미국의 한 블로그에 ‘죽기 전 가 봐야 할 세계의 12개 교회’ 중 하나로 소개도 됐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의 인권차관보를 한 고 강영우 박사를 기리는 광장도 조성된다.
“한국 교회가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 ‘고백’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정을 돌보지 못했음을, 배우자에게 서로 소홀하고 무지했음을…. 그래서 ‘헛되고 헛된 평생의 모든 날,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라는 성경 말씀을 붙잡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것이 창조의 가정을 다시 회복하는 진정한 ‘Go back’입니다.”
양평/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