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 산마루교회 담임목사]
청와대 뒤편 산속
생활쓰레기 가득 찬 못 쓰는 땅
10년 동안 1만㎡ 밭으로 변신
노숙인 농부들이
오이와 배추 재배
포천·봉평으로 농장 확대
노숙인이 일을 싫어한다는 건 편견
공기 좋은 곳에서 농사지으며
건강도 회복
공덕동 산마루교회에선
노숙인 대상 인문학 강좌 ‘해맞이 대학’도
» 이주연 산마루교회 담임목사는 노숙인들의 문제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여기고, 생명을 다루는 정직한 ‘농사’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 목사는 쓰레기장이었던 산비탈을 농장으로 바꾸어 노동의 기쁨을 노숙인들에게 선물했다. “일단 멈추세요.” “바쁜 일상생활을 하면서 멈춰 있기가 어려워요.”
“그래도 새로운 길, 영성의 길로 들어서려면 일단 멈추어 서야 합니다.” 목사는 ‘일단 멈춤’을 강조한다. 계속 가면서 믿음의 세계, 깨침의 세계로 갈수는 없는 것일까?
“멈추면 넘어질까봐 멈추지 못해요. 남보다 빨리 가려고 조급함의 자전거를 타고 있어요. 멈추지 않으면 쉴 수도 없고, 살아오던 방향을 바꾸는 회개도 없고, 자신의 상황과 하나님의 뜻도 정확하게 볼 수 없어요. 자전거에서 내려와, 나무처럼 깊이 대지에 뿌리를 내려야 흔들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어요.”
“잠시라도 쉬는 것이 불안해요.”
욕망의 인생자전거, 일단 멈추세요
“욕망의 불을 끄고 자신을 멈추어 세우세요. 욕망으로 과열된 가슴을 안고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된채 내리막길로 달리는 인생의 자전거를 멈추세요. 멈추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정말 새로운 세계가 열리나요?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요?”
“멈추어 세워야 자기 자신의 실상을 대면할 수 있어요. 자신을 대면해야 새로운 길로 접어들어, 새로운 자신을 얻을 수 있어요. 이런 거듭남이 하늘의 보화이고, 진정한 복입니다.”
목사는 차분한 어조로 계속 이야기한다. “가만히 멈추어 서야하는 이유는 또하나 있어요. 가만히 멈추어 서야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챌 수가 있어요.”
“왜 서야만 그런 것이 보이나요?”“자기 욕망에 휘돌려 돌아가는 생각과 행동의 속도 때문입니다. 가만히 멈추어 서서 자신의 속이 조용해지면, 그제서야 어두운 눈이 밝아져, 시간 너머의 영원한 나라가 눈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뜻을 밝게 알게 됩니다. 마음의 시끄러움 마저 잠이 들면, 영혼이 최상의 통찰력과 집중력을 얻게 됩니다. 영성의 길에선 이런 경지의 힘을 얻어야 합니다. 최고의 영성을 이룬 이들은 무서운 통찰력과 집중력이 있었고, 여기에 주를 향한 열렬한 사랑이 있었던 이들입니다.”
그래! 한번 멈추어 서보자. 살면서 제대로 멈추어 선 본적이 있던가? 눈을 감고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풀벌레 소리와 잎새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도 비껴가는 고마운 그늘 아래이다.
명상하던 흙담집, 노숙인 농장으로
이주연(60) 산마루교회 담임목사와 이야기를 나눈 곳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는 농장이다. 이 농장은 외부에 노출이 안되는 ‘비밀스런 장소’에 자리잡고 있다. 청와대의 바로 뒷편 산 속이다. 북악 스카이웨이 길을 따라 가다가 계곡으로 빠지면 몇개의 민가가 나온다. 오랫동안 개발이 안된 탓인지 집마다 세월의 때가 켜켜히 묻어 있다. 군사보호시설에, 개발제한지역이다. 조선시대엔 왕이 사냥하던 숲이다. 이 목사는 이 곳의 산비탈에 1만m²(약 3500평)의 밭을 일구었다. 10년전이었다. 조용히 기도와 명상을 하고 싶어서 이곳의 흙담집을 하나 구했다. 주변의 땅은 생활쓰레기와 농업 폐기물로 가득찬 못쓰는 땅이었다. 주인이 따로 있었다. 처음 몇달간은 목사 혼자 쓰레기를 치웠다. 그 뒤에는 교인들이 도왔다. 2년간 치운 쓰레기 양은 10톤트럭으로 3대 분량이었다. 그 곳에 ‘사랑의 농장’을 일궜다. 농부들은 노숙인들이다. 자신의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보는 노숙인들이다. 마침 농장을 만들때 교회에 노숙인들이 오기 시작했다. 교회가 마포 공덕동에 있어, 가까운 서울역과 효창공원 등지의 노숙인들이 7~8명 정도 교회에 오다가, ‘산마루 교회가 잘 해 주더라’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120명까지 왔다, 이 목사는 노숙인들을 ‘그분들’이라고 부른다. » 이 목사가 일군 ‘사랑의 농장’. 노숙인들이 이곳에서 재활의 씨앗을 가슴에 품는다.
“그분들에게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농사일을 도와주면 좋고, 하지 않아도 하루에 1만원 주고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어요. 당시 짤짤이(길거리 구걸)하면 하루에 5000원 정도 수입을 올리던 분들이니 몇몇 분들이 저의 제의를 반겼어요.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놀랐어요. 노숙인은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편견이 있었거든요. 공기 좋은 곳에서 풀 뽑고 농사를 지으니까 건강도 좋아졌구요. 서울역에서 농장까지 오고갈 때는 차비가 있어도 걷는 노숙인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차비 아끼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몸 냄새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었던 겁니다.”
농번기엔 일당을 3~5만원으로 올렸다. 60대 초반의 한 노숙인은 서울역에서 7년간 노숙 생활을 했다. 고혈압에 심장병까지, 몸은 종합병원이었다. 진료소에서도 치료를 포기하고 진통제와 수면제만 처방할 정도였다. 그는 다른 노숙인들이 동전으로 헌금할때, 지폐로 헌금했다. 이 목사는 놀라서 “돈도 없으면서 왜”라고 물었다. “그래도 천국은 가야지요!” 했다. 그는 농장에 와서 쉬며 기도하니 한달 여만에 20㎏짜리 포대도 번쩍 들어 옮길 만큼 건강을 회복했고, 4년째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농장에서는 오이와 배추를 주로 재배한다. 1년에 몇백만원씩 수익을 올린다. 7년 전부터는 한 교인이 무상임대한 포천의 1만2천 평 규모의 ‘산마루 해맞이공동체’ 농장도 운영했고, 이제는 봉평으로 옮겨 새로운 시작을 했다. 노숙인들이 유기농 채소와 금잔화 차를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산마루교회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어, 노숙인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준다.
이 목사는 교회에 노숙인을 대상으로한 인문학 강좌도 운영한다. ‘해맞이 대학’으로 이름붙힌 이 강좌에는 유명 대학의 교수들이 일주일에 두번씩 강의한다. 매학기 25명의 노숙인들이 문학, 역사, 철학, 음악, 영화, 법학, 정치학, 행정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로부터 교양을 쌓는다. 개근자와 B학점 이상의 수료자에게는 제주도 올레길 여행의 기회도 준다.
낮은 이를 섬기는 게 거룩한 수행
이 목사는 작고 강한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 많은 신도가 몰리는 대형교회보다는 신도는 적어도 깊은 영성이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 대형교회에서 여러번 담임목사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한 이유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소통을 중시했다. 이 목사는 ‘산마루서신’(www.sanletter.com)이라는 e메일편지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자연의 사진과 함께, 마음을 일깨우는 영성의 단문을 매일 아침 온라인으로 보내는데, 이 편지를 받아본 누적회원이 무려 26만여명이다.
이 목사는 부모님의 죽음을 겪으며 ‘과연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는 물음에 답을 구하기 위해 신학을 했다고 한다.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창천감리교회와 아현중앙감리교회 부목사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개신교 월간지 <기독교사상>의 편집주간 등을 거쳤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며 생명과 평화운동을 하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노숙인들은 손을 내밀 때마다 속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무너집니다. 이 분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회복하고 키워줄 방법을 고민했어요. 자존감을 높여주면 자활의식이 생길 거라고 기대했고, 실제로 그랬어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몸으로 행하는 기도이고, 낮은 이를 섬기는 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수행입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