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깔 있는 이야기
붓다 말년의 어느 날, 마가다국의 왕 아자타삿투가 대신을 보내왔다. 마가다국은 코살라국과 함께 당시 16대국 중 하나였다. 대신은 이렇게 붓다에게 물었다. “이웃나라 밧지국을 침략하려 합니다. 괜찮을까요?” 한 나라의 대신이 대놓고 정치적 견해를 여쭙는 것은 붓다의 삶에서 드문 일이다. 그런데 붓다는 고개를 돌리더니 곁에 서 있는 제자 아난다에게 물었다. “그대는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자주 만난다고 들었는가?”
아난다는 답했다.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붓다는 말했다.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만난다면 그들은 번영할 것이요, 결코 쇠하지 않으리라.”
붓다는 계속 물었다. 밧지국 사람들이 화합하고 있는지, 공인되지 않은 것을 함부로 만들거나 공인된 것을 멋대로 없애지는 않는지, 연장자를 존중하는지, 여성들을 폭력으로 대하지는 않는지….
아난다는 밧지국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고, 붓다는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오직 번영만이 있을 뿐이요, 쇠하지는 않으리라”고 말했다. ‘국가가 멸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 원리’라는 유명한 법문이다.
마가다국 대신은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점령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전쟁으로 저들을 정복할 수는 없겠군요.”
모든 생명을 향해 폭력과 살상을 멈추라고 평생 목 아프도록 이른 스승 붓다가 아니던가. 그런 붓다에게 “전쟁을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하는 질문은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례한가. 붓다에게서 나올 말은 단 하나, 전쟁을 멈추라는 답이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인류가 지금까지 정신의 스승이 일러주는 말을 그대로 따랐던 적이 있던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터질 때면 언제나 종교에 길을 물었지만, 묻는 시늉만 할 뿐 세상 사람들은 늘 세속적으로 일을 처리해왔다. 그런 줄 빤히 아는 붓다지만 묻는 사람을 내치지는 않는다. 붓다의 모습이 사뭇 인상적이다. 마주 대한 강대국 신하에게 전쟁을 하라거나 말라는 결정을 내려주지 않고, 짐짓 곁에 있는 아난다를 향해 ‘하나의 국가가 멸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 원리’를 설법한 것이다. 잘 화합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국가는 번성할 뿐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토가 욕심나서 쳐들어간다 해도 그 나라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준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남의 나라와 전쟁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대 나라의 내실을 잘 다지라는 권유일 수도 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이것이 세속을 떠난 출가자 붓다가 세속에 관여하는 모습이다. 하라 마라가 아니라 귀가 있다면 잘 새겨들었을 테고, 그렇다면 이치에 맞게 생각해서 선택은 세속 사람들이 하라는 것이다. 선택에 따른 결과는 자연히 그대들의 몫일 테니까.
이미령(불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