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원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등하굣길에 항상 시장을 거쳐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장을 걷다 보면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다양한 삶의 소리가 들립니다. 능청스럽게 흥정하는 소리,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그중에서도 장터에서 빠트릴 수 없는 소리가 있습니다. 바로 싸우는 소리입니다. 이때 반드시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어?”
“왜 똑같은 사람끼리 무시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어!”
비단 시장뿐만이 아닙니다. 그 시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투는 곳에서는 유행처럼 이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여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이 말이 최근에 자꾸 떠오릅니다. 곱씹을수록 이 말에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루가 다르게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참으로 많이 일어납니다. 몇 년 전,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에서 70대 입주자가 던져주는 유통기한 지난 빵을 주워들어야 했던 경비원이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습니다. 어느 백화점에서는 VIP 고객인 자신에게 접대가 형편없다며 손님이 종업원을 무릎 꿇리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교육정책이란 중요한 국가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위 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한 충격적인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 경비노동자. 한겨레 자료 사진.
좋은 대학을 나오고, 돈 많이 벌고 지위도 높은 사람이 배우지 못하고, 힘들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짓밟아버리는 모습을 매일같이 뉴스를 통해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감싸 안는 마음을 찾아보기 힘든 사회, 온갖 편협과 냉혹함이 판치는 사회, 이런 사회가 정상일 리 없습니다.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사회는 어떨까요? 로마 유학을 다녀온 신부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신학생이었던 신부님이 맥줏집에서 맥주잔을 비우고 한 잔 더 주문하려고 ‘웨이터’ 하고 외쳤답니다. 그런데 사장이 오더니 노발대발하며 당장 나가라고 했답니다. 웨이터가 알아서 찾아와 필요한 것 없냐고 물을 텐데 그새를 못 참고 자기 직원을 종 부리듯 했다면서 당신 같은 사람에게 맥주 팔 생각 없다면서 쫓아내더랍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미국에 본사를 둔 어느 식품업체 경영자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한국 매장 앞에 내건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라는 선언문이 화제가 되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그 회사의 경영자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훌륭한 고객들에게는 마음 깊이 감사를 담아 서비스를 제공하겠지만, 무례한 고객에게까지 자신을 낮춰 응대하도록 교육하지는 않겠습니다. 직원에게 인격적 모욕감을 느낄 언어나 행동, 큰 소리로 떠들거나 아이들을 방치하여 다른 고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실 경우에는 저희가 정중하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물건을 팔아먹을 욕심에 ‘예예, 죄송합니다. 우리 직원이 뭘 몰라서 그랬습니다……’ 하며 잘못도 없는데 직원에게 무조건 허리를 굽히고 사과하라고 몰아붙이는 업주와는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사장님입니다. 이 기사를 읽고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어린 시절 등하굣길 시장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저도 모르게 낮게 되뇌어보며, 이 말이 인간 존중의 엄중한 원칙을 담은 명언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