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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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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동자도 알지만 노인도 하기 힘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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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73326_P_0.JPG» 음식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발우공양. 템플스테이 사업단 제공 사진

일희일비, 산중 암자에서도 이 말을 실감합니다. 세속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눈여겨보면 정말이지 아주 사소한 일로 싸우더군요. 옆에서 보고 있자면 조금은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왜 저런 일이 싸울 거리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작은 일로 충돌하는 것은 남녀와 노소, 지식의 유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세속사회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종교인들의 세계에서도 늘 일상의 작은 일로 부딪치고 갈등합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수도원에서는 갈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화합하기 위하여 청규를 세세하게 정하고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는 소리를 크게 내지 마라. 경내에서는 몸을 좌우로 건들거리고 다니지 마라. 상대방의 말을 끊지 마라.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억지로 농담을 하지 마라.”
 일상에서 작은 충돌은 인간관계의 큰 버거움으로 남습니다. 법구경에서 ‘한 방울의 물이 고이고 고여서 마침내 항아리를 채운다’고 하였듯이, 사사건건 일어나는 충돌은 불쾌한 감정을 낳습니다. 그 감정이 쌓이고 쌓이면 서로를 미워하게 되고 마침내 불신과 편견으로 확장됩니다. 
 삶의 경험에서 보자면 감정은 이성보다 강력한 엔진을 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이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찮게 대하는 태도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을 큰 강령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만물이 부처가 아님이 없고 일상의 작은 일마다 진심으로 대하고 전념하는 것이 불공이라는 뜻입니다.

05277781_P_0.JPG» 2015년 2월 28일 저녁 서울시청의 조명이 ‘지구촌 불끄기(Earth Hour)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시청이 소등되고 있다.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산중 암자를 열어 놓으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머물고 갑니다. 고맙게도 많은 이웃들의 생각과 언행이 반듯합니다. 그러나 간혹 남을 배려하지 않은 언행과 몸가짐에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엊그제도 목욕탕에서 또 당했습니다. 누군가 몸을 씻고 나서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신발을 세워놓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양말이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간혹, 매번 당하니 은근히 신경이 거슬립니다. 사용하지 않는 방의 전등을 끄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일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입니다. 벗들과 차를 마시다가도 마루와 다른 방들의 전등을 끄는 일은 늘 나의 몫입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는 것은 이렇게 모범(?)을 보이는데도 별생각이 없는 것인지, 다음날에도 불필요한 전등을 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마침내 화엄경까지 들춰 잔소리를 하였습니다. “작은 티끌 하나가 삼라만상을 머금고 있습니다. 하나의 전등에 지구별의 에너지가 모여 있고 우주의 기운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사건건의 그것들이 근원적으로, 최종적으로 닿고 있는 지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작은 것들이 무엇과 연결되고 있는지도 헤아려 보십시오. 모든 존재는 그 자신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항주 자사로 부임한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이 도림조과 선사에게 정중하게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법문을 청하였습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선한 일을 행하는 일이오.” 뭔가 심오한 한 말씀을 기대한 시인은 다소 맥이 풀려 묻습니다. “그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 아닙니까?” 선사의 일침! “삼척동자도 알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지.”
법인 스님/ 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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