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오스트리아 한식당 ‘킴코흐트’ 대표
패션디자인 유학 갔다가 요리 익혀 유럽 ‘혀끝’ 잡아
절 음식 명가 돌며 스님 손맛 전수…“세계적 건강식”
“냉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조금 있다가 넘겨 보세요. 어떤 맛이 나지요?”
유난한 폭염 더위 속에 함께 냉커피를 마시던 세계적인 셰프의 ‘불쑥’ 요구에 우물우물 따라 해봤다. “음, 처음엔 커피의 쓴맛이 맴돌다가 나중엔 단맛이 나네요.”
“그래요? 전 처음엔 쓴맛이 나다가, 맛이 혀 한가운데로 몰리면서 탄 맛이 나네요. 그리고 탄 맛이 줄어들면서 신맛이 나요. 신맛 뒤에는 단맛이 납니다. 그리고 맛을 혀에서 코로 넘기면 누룽지 타는 듯한 맛이 다시 나요. 제일 뒷맛은 탄 맛과 쓴맛이 왔다 갔다 하네요.”
요리사의 미각은 아무래도 일반인들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 “미각은 타고난 것인가요?”
“아니요. 오랫동안 훈련해서 키운 감각입니다. 누구나 훈련을 하면 미각이 발달합니다.”
요리 경쟁 프로그램의 까칠한 심사위원으로 소문난 김소희(52) 셰프는 식재료를 보는 순간,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다양한 요리의 조합이 마구 떠오른다고 했다. 지난 22일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서 나눈 대화다. 2001년부터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퓨전한식 전문점 ‘킴코흐트’를 열어 성공시킨 그는 케이블 요리채널의 경연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코리아’ 심사위원으로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소금만으로 이렇게 오묘한 맛이라니…”
그는 요즘 암자의 공양간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질을 하고 있다. 보름 동안 한국 사찰음식의 명가 4곳을 순회하며 비구니 스님에게 직접 맛의 정수를 전수받고 있었다. 이미 대전 영선사, 강진 백련사에서 며칠씩 묵으면서 사찰음식을 익힌 그는 이날 천진암 암주 정관 스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버섯을 넣은 묽은 박국과 각종 튀각 요리, 잡곡밥을 배웠다. 영선사에서는 법송 스님에게 가지구이와 깻잎구이 등을 익혔다.
“이 박국엔 양념으로 오직 약간의 소금만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렇게 오묘하고 신선한 맛이 나네요. 자극적인 양념 없어도 음식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는 사찰마다 직접 키우는 채마밭과 지역 재래시장에서 구한 식재료로 만드는 다양한 음식을 배우고 있다. 동물성 식재료와 오신채(파·마늘·부추·달래·흥거)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장류와 천연조미료만으로 맛을 내는 조리법이다. 새벽예불과 발우공양, 참선 등 스님들의 일과를 그대로 체험하기도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채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음식을 서양음식에 본격적으로 접목시키고 싶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고기를 못 먹으면 죽는 줄 알아요. 요즘은 채식주의자들이 늘어나면서, 동양의 채식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어머니는 ‘한국 전통음식의 식재료 조화는 보통 수준이 아니다’라고 늘 강조하시곤 했어요. 그래서 작정하고 사찰음식을 배우고 있어요.”
김 셰프는 특히 사찰음식 중에서도 야채 장아찌를 주목한다. “요즘 잘 팔리는 요구르트에 비해 전통 장아찌들이 소화를 훨씬 더 도와줘요. 김치나 장아찌는 모두 세계 어떤 음식보다 소화에 뛰어난 구실을 합니다.”
그는 한국 사찰음식이 세계적인 건강음식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지 않으면서도 제철 식재료의 특색 있는 맛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소중한 유산이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서양음식만 편식하는 풍조는 안타깝다. “서양음식에 취해서 정작 우리 음식의 좋은 점을 모르고 있어요. 음식 경연에서도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음식을 선보이는 젊은 도전자들이 많아지고 있죠. 한식을 자신 있게 요리해서 내놓는 도전자들이 줄어드는 것은 젊은 요리사들이 서양식을 해야만 요리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이 발품 손품 혀품 팔아 직접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다. 30년 전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빈 의상칼리지를 1등으로 졸업하곤 5년간 패션 관련 사업을 했다. 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빈에 한식집을 차리고, 직접 요리를 익히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을 돌며 음식을 먹어보고 분석했다. 하루에 13끼를 먹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하루 18시간씩 쉬지 않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 과로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연어회를 뜨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한꺼번에 연어 50~60마리씩 사서 연습을 하곤 했다.
“전 제가 만든 요리를 드시는 손님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요청하지 않아도 유독 맛있게 먹는 손님에게 다가가 더 드립니다. 또 제가 만든 요리를 먹고 몸이 상할 것 같은 손님에겐 음식을 팔지 않아요. 느낌이 그냥 옵니다.”
김 셰프는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다닌다. 각종 요리 관련 도구들이 들어 있다. 줄자도 있다. 다른 음식점에서 마음에 드는 그릇이 있으면 그 크기를 재는 데 쓴다. 주머니엔 항상 조그만 접이식 칼도 지니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든 식재료가 있으면 잘라서 맛보기 위해서다.
“전 김치를 가장 좋아해요. 특히 묵은지는 정신없이 흡입합니다. 세계 어떤 음식보다 맛있는 야채 가공음식입니다.”
그는 셰프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고 뛰어들면 안 됩니다. 진정 음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칼을 잡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장성/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