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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깨달음 못 얻어?...비구 스님 말 ‘길거리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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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절 운문사 승가대학장 일진 스님

골목길에서도 한 소녀가 ‘평생 선물’
비구니 스님 보고 “저게 뭐야?”
 
귀에 뱅뱅 돌아
이게 뭘까?…이 뭐꼬? 화두
 
“다음 생엔 남자로 태어나 달라고 염불”
존경하던 비구니 노스님 말에 충격
 
동국대 다니며 ‘여성은 열등한가’ 논문
불교계 ‘성 차별’ 논란 일으켜
 
1남6녀 집안의 막내딸로
두 언니 따라 고교 졸업 후 바로 출가
 
대만과 일본 유학 뒤 곧바로 강단에
첫 전강게 받아 비구니 전강 시대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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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손을 잡고 골목길을 오르던 어린 소녀가 마주오던 비구니 스님을 보곤 놀라서 한마디 했다. “저게 뭐야?” 어린 소녀는 낯선 모습의 비구니 스님을 보고 호기심에 가득 차 한 말이었다. 소녀를 데리고 가던 할머니는 스님에게 미안한지 “무슨 말버릇이야”라고 혼내며 꿀밤을 먹이곤 총총 사라졌다.
 스님의 귀에는 소녀의 “저게 뭐야?”라는 말이 뱅뱅 돌았다. 그 말은 곧 “이게 뭘까?”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뭐꼬”라는 화두로 오래 남았다. “그때 어린 소녀가 평생 화두를 선물했어요.”
 42년 전 당시 동국대 승가학과를 다니던 일진 스님은 그 시기 또 다른 화두를 길거리에서 받았다. 새벽 기도를 위해 오대산 적멸보궁에 오르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내려오던 한 비구 스님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여자(비구니)가 100년을 해봐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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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걸이에도 계율 묻어나는’ 스님
 큰 충격이었다. 여자이기에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니…. 불문에 들어와 행자 시절 존경하던 한 비구니 노스님이 있었다. 그 노스님은 행자인 일진 스님에게 삭발을 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행자가 삭도로 삭발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왓장을 문질러 가루를 내어, 그 가루를 묻혀가며 칼날을 갈아 삭발을 하게 했다. 항상 염주를 돌리며 염불을 하는 노스님께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라고 물으니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비구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염불한다”고 했다. 어린 행자는 충격이었다. 그래서 일진 스님은 동국대에 다니며 불교계 학술지에 ‘여성은 불가에서 열등한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비구와 비구니라는 교단의 두 날개가 함께 가야 한다는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이 엄격하던 시절, 스님의 글은 불교계에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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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여성은 부처가 될 수 없을까? 부처님은 여성을 어떻게 보셨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논문을 썼어요. 1970년대는 ‘여성 불교’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때였어요. 새벽에 만난 그 비구 스님이 감사해요. 불교계 성차별의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게 정신을 일깨우셨으니까요.”
 일진 스님은 현재 운문사 승가대학장이다. 비구니 사찰인 경상북도 청도에 있는 운문사는 호거산 기슭에 연꽃 모양의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호랑이(虎)가 웅크리고 있다(踞)는 이름의 산에 자리잡고 있으니 형세가 예사롭지 않다. 일진 스님은 250여명의 비구니가 있는 이 사찰의 주지도 지냈다. 일진 스님은 비구니 스님을 육성하는 책임자이다. 워낙 반듯한 승려 생활을 해 주변으로부터 “걸음걸이에도 계율이 묻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비구니계에서 처음 강맥을 이었다. 이전엔 비구니가 비구에게 교육을 받았다. 일진 스님은 1985년 비구니 스승인 명성 스님으로부터 전강게를 받았다. 강사로서 대를 이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전강을 받은 첫 비구니 강사로 한국 불교사에 비구니 전강 시대를 열었다.
 
 반듯한 이목구비로 연예인 권유도
 충남 서산이 고향인 일진 스님은 1남6녀 집안의 막내딸이다. 5명의 언니 가운데 두 명이 출가했다. 둘째 언니는 용인 화운사 혜준 스님이고, 다섯째 언니는 서울 양지암 성업 스님이다. 그런 집안 분위기에서 일진 스님의 출가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니 혜준 스님이 출가하는 막내 동생의 머리를 깎아주기도 했다. 일진 스님은 초등학교 5학년 도덕시간에 장래 꿈을 말하라고 하니까 “조용하고 깨끗한 산중에 사는 스님이 되고 싶다”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러니 출가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a6.jpg» 한 일본인 사진작가가 찍은 일진 스님의 젊은 시절 모습.

 어린 시절 고향 집에 온 언니(혜준 스님)와 논둑길을 가던 일진 스님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을 만났다. 순간 언니는 화들짝 놀란 어린 동생을 번쩍 들어 품에 안아 뱀을 피하게 했다. “그때 스님 언니의 품이 그리 포근하고 안락할 수 없었어요. 그 느낌이 불가로 저를 이끈 것 같아요.”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반장과 학생회장을 도맡았던 활달한 성격에, 반듯한 이목구비로 연예인의 길을 권유받았던 일진 스님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출가했다. 19살이었다. 1970년 재석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1978년 월하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당시만 해도 비구니로 고교 졸업 학력은 고학력이었어요. 행자 시절 남들은 일이 어려워 녹초가 되는데, 저는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살이 쪘어요”라고 말한다. 절집에서는 ‘경(經)살 찐다’고 했다. 신심을 내어서 경을 외우면 ‘경살 찐다’고 하셨는데, 살찌는 게 큰 복이던 시절에 스님들의 덕담 가운데 하나였다. 말랐던 일진 스님은 틀에 잡힌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수행을 한 셈이다.
 
 불교계 여성 문제의식 정리한 책 내
 출가해서 뒤늦게 동국대에 입학한 일진 스님은 졸업 후 대만과 일본에서 유학한 뒤 운문사에서 화엄경을 보면서 곧바로 강단에 섰으며, 본격적으로 비구니 강맥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40여년 동안의 체험과 사유, 수행, 강의 등을 바탕으로 불교계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정리한 <승만경을 읽는 즐거움>이란 책을 냈다. 승만경은 ‘누구나 다 여래의 씨앗을 품고 있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여래장 사상을 설파하는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이다. 여성의 몸 그대로 성불하는, 여성즉신성불설(女性卽身成佛說)을 이야기한다. 여성 불자인 승만 부인이 설법을 하고, 옆에서 부처님이 승만 부인의 설법이 옳다고 지지해 주고, 마침내 승만 부인은 성불한다. 일진 스님은 “2000년 전에 인도에서 여성도 성불하고, 불가촉천민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것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깨우침을 준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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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하는 사람은 늘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해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하는 것이 일상생활 속에서 이뤄진다면, 경을 접하는 마음이 화두 드는 마음과 다를 바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형상이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다(形直影端· 형직영단)’고 했어요.”
 그는 참선하는 스님을 최고로 치던 시절, 강사의 길을 선택했다. “부처님 마음이 선(禪)이라면 마음을 표현한 것은 교(敎)입니다. 이것을 둘로 보는 것은 부처님 뜻이 아니죠. 강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학인들도 행복할 수 없어요. 경이 곧 수행이고, 그것이 곧 삶이 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어요.”
 청도/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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