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당시의 고대 명상법을 찾아 헤맸다. 10년 전 미얀마 밀림 속까지 들어가 명상에 집중했으나 수행이 나아가는 기미가 없다. 마음속의 에고는 여전하다. 출가수행자라 억누르고만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도대체 마음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기에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조금씩 답이 떠올랐다. 마음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솟구치는 자연발상적인 욕구와 분노의 마음을 억지로 누르기만 했지, 마음의 구조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내면을 관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의 행동을 내가 아닌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드론을 띄워놓듯이 나를 관찰하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어떤 상황이 발생하여도 감정의 요동이 없었고 마음의 놀음에 끌려가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무엇을 하는지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여도 스스로 원하는 대로 마음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은 그냥 마음으로 존재만 할 뿐이었다. 저절로 일어났다 사라질 뿐인 마음에 스스로 감정을 이입해 괴로움을 실체화시켰던 것이다. 스스로 마음에 고통의 물을 준 것이다.
마음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무엇이든 수용한다. 마음은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하지만 마음의 본바탕은 모든 실상의 근본이요, 모든 것을 부리는 주인이다. 그런데 수양되지 못한 마음은 욕망의 충동을 쉽게 자제하지 못하고 그 욕망과 함께하기 때문에 마음관찰 명상을 해보지 않으면 지켜보는 자를 체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의 속성을 관찰하여 보면 우리의 인식작동은 단지 느낌과 감흥만 있고 자아가 없음을 알게 된다. 즉 느낌은 느낌의 것이고, 감흥은 감흥의 것일 뿐인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속성을 보는 붓다의 명상 첫 단계가 마음관찰이다.
마음관찰은 위빠사나의 첫 단계로서 직관과 통찰력을 길러낸다. 직관과 통찰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자기의 행동과 생각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가운데 계발된다. 인생사에 어떤 곤경을 당할 때를 보면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을 무시할 때 꼭 그 일들이 발생한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관찰을 놓친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알아차리기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수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명상의 기본은 내려놓기 연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종의 수행의 워밍업인 셈이다. 무거운 마음으로는 참된 나를 찾을 수 없다. 명상하는 시간만이라도 오늘 해야 할 일과 모든 의무를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멀리 나는 새는 날개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 힘들면 무엇이든 놓아버려야 된다. 지나간 과거는 물론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또한 미리 근심하고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무엇이든 너무 많이 갖고자 하면 도리어 갖지 못한다. 내려놓지 않으면 본인만 힘들다. 비우는 만큼 채워진다. 현자들은 내려놓는 삶을 “지금 여기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수행자는 삼매절대고요의 세계, 초집중력의 경지를 원하지만 세간의 집착을 포기하지 못해 마음이 동요하고 세간의 대상 사이를 방황한다. 집착은 수행의 진보에 커다란 장애물이다. 명상할 때는 모든 생각을 내려놓겠다는 강한 결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내려놓음은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 내려놓은 법이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알아차리기 명상을 통해서 비로소 생각의 시발점을 자각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일체처 모든 순간에 마음이 일하고 지각하는 놈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몸의 일거수일투족의 행동부터 먼저 알아차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말할 때는 말하는 곳에, 일할 때는 일하는 곳에 마음의 주의력을 기울이면 저절로 자기 마음이 보인다. 분노를 다스리게 되고 성냄을 자기도 모르게 추스르게 된다. 욕망에 이끌려 따라다니는 행위자를 신기하게 구름에 달 가듯이 보게 된다.
현재에 일어나는 생각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다만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기만 하면 된다. 생각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어난 생각에 심판, 판단, 분석을 하거나 해설을 덧붙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생각은 끊는 대상이 아니다. 살아 있는 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기를 속박하는 병통이 되고 알아차리면 지혜가 된다.
생각을 알아차리면 감정이입으로부터 자신의 에고는 떼어내진다. 만일 마음이 자주 떠돌면, 단지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림만 함으로써 마음이 숨과 함께 고요히 머무르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생각이 일어나면 있는 그대로 단지 앎으로써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 기쁨과 행복은 마음의 평안과 삶의 안목과 명료한 지혜를 얻게 된다. 마음관찰은 지켜보는 자의 활성이다. 이제는 다음 단계, 놀라운 호흡관찰의 세계로 들어가자.
각산 스님/ 참불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