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한겨레 자료 사진.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갑질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닙니다. 조선왕조 500년 내내 평민이나 노비는 개돼지만도 못하게 취급을 받았습니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 자랑스러워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양반이 전 국민의 10퍼센트, 평민이 20퍼센트, 노비가 70퍼센트로 이루어진 나라였습니다. 전체 인구의 70퍼센트나 되는 같은 민족을 노비로 쓴 나라는 인류 역사상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만의 예의를 위한 동방예의지국
누구를 위한 동방예의지국인가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밖에 안 되는 양반계급만을 위한 동방예의지국이었나요? 노비 한 사람 값과 조랑말 두 필 값이 맞먹었습니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신하에게 왕이 선물로 노비를 하사할 때, 노비는 사람을 뜻하는 ‘인(人)’이 아니라 시체를 셀 때 쓰는 ‘구(口)’로 표현했습니다. 노비는 그저 숨만 쉴 뿐 시체와 다름없이 존재감이 박탈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노비들에게는 성(姓)이 없이 오월이, 유월이, 춘삼이, 개똥이같이 오직 호칭만 있었습니다. 심지어 도야지, 두꺼비 같은 동물로 호칭하기도 했습니다. 연산군의 총애를 받던 장녹수는 몸종을 ‘강아지’라 불렀습니다. 전체 인구의 70퍼센트를 이런 노비로 채우고 있던 조선을 인간을 존중한 정의로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말하기는 상당히 민망합니다.
1850년대로 접어들면서 장사로 큰돈을 벌어들인 평민들이 족보를 사는 사회 분위기가 크게 일었습니다. 돈을 주고라도 신분 상승을 꾀했던 눈물겨운 사건입니다. 당시 양반계급들은 군복무도 안 하고,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평민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양반계급에 오르려고 발버둥을 쳤겠습니까?
평민들은 이왕에 족보를 살 바에는 왕족이나 그 일가붙이의 성씨를 쓰겠다며 이씨, 김씨, 박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김씨 성이 1,100만, 이씨 성이 720만, 박씨 성이 420만 명이나 됩니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2,2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0퍼센트가 넘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최씨, 정씨까지 더하면 국민의 절반을 다섯 개 성으로 채우니 한마디로 말해서 개성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족보나 뼈대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2000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성은 총 286개밖에 안 됩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약 30만 개의 성씨가 있고, 중국은 약 4,700개 있으며, 미국은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미스(smith)는 ‘대장장이’라는 뜻이고, 카펜터(carpenter)는 ‘목수’라는 뜻입니다. 자기 직업을 성으로 삼은 것이니 그만큼 개성이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독일에서 가장 흔한 성씨는 전체 인구의 3퍼센트를 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다섯 개 성이 50퍼센트나 차지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성을 보면 뿌리 없는 집안, 근본 없는 집안이라는 낙인을 찍었던 우리 역사에서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김, 이, 박’으로 가야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요즘은 부모님 성을 모두 사용하기도 하고 새로운 성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좋은 현상으로 보입니다.
존중은 권리이자 의무
제가 ‘장수 황씨’인데, 황희 정승의 23대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상님께 죄송하지만 저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도대체 황희 정승의 23대손이 왜 경상도 함양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태어났을까요?
우리 5대조 할아버지가 성도 없이 이름만 있는 노비라 하더라도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나는 뼈대 있는 양반집 자식’이라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혼자 조용히 웃곤 합니다. 조선시대에 뼈대 있는 양반네들이 대체 무엇을 했나요? 삼천리금수강산을 왜놈들한테 바친 사람들은 온갖 특혜를 누리며 살았던 양반네들이었습니다.
» 오방신장무의 한 장면. 하늘의 신장들이 세상의 더러운 기운을 몰아내고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하는 춤이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황씨, 이씨, 김씨,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사람이면 다 소중합니다. 그가 누구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해야 합니다. 김씨, 이씨라서가 아니라 사람 자체로 소중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면 다른 사람 또한 나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양반도 천민도 울고, 웃고, 슬프고, 아픈 감정을 똑같이 갖고 있는 동등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존중받아야 할 권리와 존중해줘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