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통 참아내며 성공했는데 2달 뒤 뇌졸중 사망
사학자인 에어리히 박사가 “오스트리아의 의학사”를 집필하였는데, 이 책 내용 중에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중세 왕의 수술을 하나 골라보았다. 위 그림 속의 주인공은 프리드리히 황제(1440-1493)다. 그의 왼쪽다리에 혈액순환이 안 되어 다리가 점점 더 썩어 들어간다고 주치의가 진단을 내렸다. 처음엔 잿빛으로 변한 그의 왼쪽다리가 점점 더 갈색으로 변해 갔으니 병이 깊어 간다는 징조였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아들 막시밀리안 왕이 포르투갈 출신인 그의 주치의 마테오 루피(Matheo Lupi)를 즉시 황제가 기거하는 오스트리아의 린쯔로 보냈다. 이 주치의는 나이 80살이었다는데, 당시의 80살은 오늘날 110살이라도 쳐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우리도 한 30년~40년 전에는 60을 고령이라고 생각 했었던 것처럼, 당시의 서양의 중세도 60살이면 벌써 고령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 의사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알브레히트 4세(Albrechts: 1477-1508)의 외과 주치의였던 한스 쥬프(Hans Suff)도 당도해 있었다. 이 둘은 황제의 주치의 하인리히(Heinrich von Koeln)과와 함께 황제의 썩어 가는 다리를 어찌할 것인가를 고심하면서 논의하였는데, 이대로 두다가는 황제의 목숨이 위태로우니 수술을 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의 수술은 오늘날의 수술과 비교를 못한다. 그만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다. 당시에 목욕탕에서 상주하는 이발사도 어떤 의미에선 외과의사로서 간단한 수술을 하던 시기였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딱 523년 전인 1493년 6월 8일 일요일이었다. 여러 명의 다른 의사들이 프리드리히 황제의 몸을 못 움직이게 완전하게 꽉 잡았다. 위 그림에서 보면 위쪽의 6명이 의사들일 것 같다. 주 수술을 담당한 한스 쥬프(Hans Suff)가 수술기구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바로 작은 톱이었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그는 수술을 시작했는데 수술이란 다름 아닌 이 톱으로 황제의 왼쪽 다리를 잘라내기 시작했던 거다.
위에 이미 실었던 그림 다시 한번 상세히 보기로 하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아님 식물로 만든 진통제라도 먹었을까? 그런 부언 설명이 따로 없는 걸 보면 생으로 수술(?)을 받은 게 아닐까 한다.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이 수술이 대성공이었다고 전해진다. 6주 후에 그의 상처가 아물어갔고, 점차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고 한다.
그러자 황제는 이 수술에 참여했던 의사들 중 두 명만을 궁중에 남기고 나머지 의사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왕이 의사들에게 포상 휴가를 내렸다는 거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을 어찌 알겠는가? 그는 8월 19일 뇌졸중이 와서 죽었다. 황제는 이 수술을 하지 않았어도 약 2달 후에는 떠날 운명이었던 건가? 그럼 그런 고통스런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을 뻔 했던가?
이런 상황에서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를 대입해 본다면?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우리네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어쨌든 다리를 자르는 수술에서 보여준 이 황제의 용기가 참 대단하게 여겨진다. 그 커다란 고통을 대체 어찌 참았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