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저절로 발전하지 않는다
지난 글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관용이 사라졌을 때 어떠한 불행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조선시대를 거쳐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나라가 대책 없이 망해가는 동안에 그 잘난 양반네들은 무엇을 했나요?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선진문명을 배운다는 핑계로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공부를 마친 후에는 다시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는가 하면, 해방 후에는 미군정 휘하로 들어가 떵떵거리고 살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영리한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 서울시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2016년 2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4,389명 필사본 제작 범국민운동'기자회견을 마친뒤 함께 필사본을 만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해방 후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자고 목이 터져라 외쳤어도 결코 그리 되지 못했던 이유는 일제의 잔재인 친일파가 세상을 움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응당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백성을 들풀 밟듯이 짓밟았어도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았으니 무서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모순과 잘못된 역사의 오류들이 지금 이 시간까지도 여전히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잔재하고 있습니다. 조선 500년 동안 세금으로 쌀 한 톨 낸 적 없고 전쟁터에도 가지 않으면서도, 대궐 같은 기와집에 살면서 백성을 짓밟았던 양반들을 징벌하고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올바로 역사를 청산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인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 <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 초상화. 한겨레 자료 사진.프랑스혁명 때 루이 13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단두대로 보낸 프랑스 국민들은 철저하게 백성을 무시한 죄를 귀족은 물론 교회에까지 물었습니다. 이때 가톨릭교회는 모든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혹독한 처벌과 반성 아래 쟁취해낸 자유, 평등, 박애 정신 위에 우뚝 선 프랑스는 지금 타인의 권리를 가장 잘 존중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독일은 나치에 빌붙어 수많은 학살에 가담했던 자들을 끝까지 찾아서 처벌합니다. 유대인6 00만 명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비뚤어진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에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백성을 존중하지 않는 지도층이 버티고 있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도 그런 정치인을 계속 뽑아주는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개돼지 취급하는 문화가 지금도 반복되는 것 아닐까요? 최근에도 소위 교육부의 고위 간부가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 우리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하여 전 국민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쉽게 과거의 오류를 잊어버립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이 인권이고 자유이며 정의인지 따져 묻지 않습니다. 오로지 관심을 쏟는 것은 ‘누가 경제를 살릴 것인가?’, ‘누가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줄 것인가?’ 이런 문제뿐입니다. 결국 우리의 이기주의와 안이함 때문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종교계도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든, 병든 사람이든, 감옥에 간 사람이든 무시하지도 차별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종교는 원래 그래야 합니다. 성전을 더 크게 짓고, 돈을 모으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정의로운 일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한때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쇠락의 길로 치달았던 프랑스 교회들과 똑같은 처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 일에 종교가 앞장서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진정한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