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식물과 동물들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삶의 풍요로움이다. 그들에게 창조세계는 풍요의 세계이며 더불어 사는 삶의 세계다.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와는 완전히 상반된 세계이다.
창조세계는 또 다른 의미에서 책임감의 세계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현장 주변에 있는 식물과 동물들을 결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삶의 일부이자 삶 자체였다. 그러기에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공존하고 있었다.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우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들에게 자연을 이용하여 이익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현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가 아니었다.
창조세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해 상기시키는 기록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자연을 관리할 책임을 부여 받았다.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창조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발견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에 의해 거부당했으며 불순한 집단, 존경받을 가치가 없는 게으른 집단으로 여겨져 왔던가.
그러한 취급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게 되었고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러기에 각각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관리할 책임을 주시고 그 열매로 먹고 살게 해주셨음을 보게 된다. 생산의 열매를 누리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이다. 이에따라 현실의 부의 편중과 빈부의 차이는 부당한 것이고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반하는 것임을 보게 된다. 저임금에 시달리며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또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당연한 희생이라는 희생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들을 일깨우는 기록이었다. 생산의 열매에 대한 주장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당연한 권리임을 본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성서를 읽게 되면 창조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는 풍요로움의 세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존엄성이 인정되는 세계, 창조세계에 대한 관리의 책임성에 대한 이야기, 생산의 열매에 대한 정당한 권리의 이야기, 평등한 남녀의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홍인식 목사사 쉽게 쓴 해방신학 이야기>(홍인식 지음, 신앙과 지성사 펴냄)에서
홍인식
=한국 최초의 해방신학자. 파라과이 이순시온대학교 경영학과와 장로회신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르센티나 연합신학대학원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남미 선교사로 25년간 사역했으며, 아르헨티나 여납신학대학,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엑시코장로교신학대학에서 교수를 지내고, 현재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사역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