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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문학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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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는 기독교인문학운동
신앙에 인문학 ‘밀알’, 목사도 교회도 바뀐다

‘인문학은 불온, 오직 성서만’
편견·배타·타락의 중세 암흑기 불러

북미 근본주의 영향 받은 한국 교회
세상과 담쌓고 성장에만 목매

기독청년·청어람·크리스찬아카데미…
공부모임 만들고 강의 듣고 토론

기복신앙 벗어나 삶에서 실천
교인도 지역도 덩달아 새롭게

인문학부흥회 여니 주민들 북적
“정신적 지평 넓고 풍요롭게”

이근복 배경임-.jpg»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원장 이근복 목사(왼쪽)와 배경임 실장이 서울 종로5가 사무실 근처 서점에서 ‘목회자인문학’에서 함께 읽을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한때 교회에서 인문학을 불온서적시한 적이 있었다. 오직 성서만을 읽고 신만을 바라보게 했다. 그러자 인간에 대한 이해는 좁아지고 편견으로 가득해져 마녀사냥과 폭력, 살인과 면죄부 판매와 같은 타락이 극에 달했다. 이때를 우리는 ‘중세 암흑기’라고 부른다. 이 암흑기는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등장, 르네상스, 계몽주의로 인해 사라지고 교회도 점차 세상 밖으로 나왔다.

 130년 전 우리나라에 기독(개신)교가 들어왔다. 전국에 학교를 세운 기독교는 교육의 선봉장이었지만 점차 암흑기처럼 성서 외 인문학을 멀리하며 세상과 담을 높였다. 이에 따라 이성과 합리, 지성은 퇴색하고 편견과 배타, 타락이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인문학자마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며, 기존 분위기에 편승했다. 

냄비 신앙이 아닌 무쇠솥 신앙
 내년은 종교개혁 500돌을 맞지만 한국 교회에는 과연 변화가 가능할까란 회의론이 지배한다. 개혁, 갱신, 쇄신과 같은 구호만 있지, 이를 뒷받침해줄 지적 실천적 힘이 없다는 이유다. 그러나 슬로건이 아니라 독서로 변화를 시작한 이들이 있다. 이미 인문학 책을 잃고, 그런 변화를 자신의 삶과 교회와 공동체에 적용해가는 기독교인문학운동가들이다.

 십여년 전부터 말없이 이 운동을 이끌어온 이들은 배타를 무기로 한 성장제일주의라는 기존 패러다임을 과감히 벗어던진 선구자들이다. 이들은 인문학 공부를 통해 교회의 샘을 더욱 깊게 하고, 교회의 품을 더욱 넓혔다. 밝은누리(옛 아름다운마을공동체)가 설립한 기독청년아카데미, 청어람아카데미, 기독인문학아카데미, 크리스찬아카데미 등이 그랬다. 서울 용산 청파감리교회의 김기석 목사도 은사체험만을 간구하는 냄비신앙이 아니라 은근한 무쇠솥 신앙을 위한 독서모임을 10년 넘게 이끌어왔다.

 2009년부터 ‘목회자인문학’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찬아카데미(옛 선교훈련원) 원장 이근복 목사는 “매달 한 번씩 인문학 강사의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 목사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교회가 바뀌고 교인들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는 놀라운 체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회자인문학은 서울 마포와 은평, 부산, 인천, 대전 등 5군데에서 한군데당 10~15명의 목회자가 참여하고 있다. 강릉은 잠시 중단됐지만 곧 재개될 예정이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강사를 섭외하고 매번 실무자들이 공부모임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부산목회자인문학.jpg» 지난 17일 부산에서 열린 목회자인문학

분쟁 환경 통일 빈곤 등 주제
 목사들은 이른바 ‘문사철’로 불리는 문학, 역사, 철학서보다는 융합적이고 현실적인 책들을 택해 읽으며 목회와 삶에 접목하기를 원했다. ‘목회자인문학’을 기획한 크리스찬아카데미 배경임 실장은 “강릉 목회자인문학에 함께 간 한 대학교수가 목사들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함께 토론하면서 그렇게 깊게 성찰하는지 몰랐다고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며 “독서와 토론과 성찰이 설교를 변화시키고, 삶과 교회까지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공부모임을 한 목사들이 오직 자신의 구원과 복만 빌던 기복신앙을 벗어나 그리스도적 사랑과 평화를 삶에서 실천하면서 일상적 삶의 성화를 이뤄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울 은평에서 목회자인문학을 함께 한 목사들은 매달 돈을 모아 ‘좋은학교만들기 네트워크’를 결성해 주민들과 함께 ‘학교로 찾아가는 음악회’와 교사공감힐링캠프, 학부모인문학아카데미 등을 열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교사·학부모·아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주민들이 교회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교회를 교인들만의 집으로 인식하던 이웃들이 교회 안으로 스스럼없이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은평목회자인문학 멤버인 조주희 목사가 담임인 녹번동 골목길 안 성엄교회는 최근 분쟁·환경·통일·빈곤을 주제로 ‘인문학적 부흥회’를 열었는데, 무려 3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해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교인들이 오직 개인적 복만을 구한다고 단정하는 기존 목회자들의 통념보다 교인들이 실제 훨씬 다양한 세상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삶에서 시작해 삶으로 돌아오는 공부
교인 감소가 현저한 한국 교회 현실에서 성암교회나 청파교회 등 인문학 독서모임을 이끄는 교회들은 성장제일주의를 표방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신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삶에서 시작해 삶으로 돌아와 인문학 공부는 이처럼 슬로건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인문학 선구자들은 강조한다. 밝은누리 공동체 최철호 대표는 20여년 동안 공동체에서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식의주 생활양식, 교육, 소비, 생태 등 실제 공동체에서 도움이 되는 인문학을 함께 공부해왔다. 그뿐이 아니다. 신학대학원생도 어려워하는 <역사적 예수>와 같은 신학서와 동양고전들, 들뢰즈와 화이트헤드 등 매우 낯설고 어려운 철학책들마저 읽는다. 그는 직장인·주부·청년들이 이런 책들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삶에서 시작하고 삶으로 돌아오는 공부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인문학 공부 자체보다는 실제 삶으로 끌어내는 인문학을 강조한다. 그는 “학문들이 파편화되고 신앙과 인문사회과학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모두 삶을 상실한 채 학문하기 때문”이라며 “삶에 적용하고 해석하고 검증하는 학습실천공동체를 만들어 공부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독교 원로인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는 “기독교 목사와 신학자의 삶은 시공간적으로 제한돼 독단적이 될 위험이 있다”며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삶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정신적 지평을 넓고 풍요롭게 해 기독교적 신앙과 사유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고, 기독교 전통신앙과 신학을 새롭게 해석해 동시대인들에게 더 잘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인문학 공부모임 연락처 
 △크리스찬아카데미: (02)747-6180 △기독청년아카데미: (02)764-4116, lordyear.cyworld.com △청어람아카데미: (02)319-5600, ichungeoram.com △기독인문학아카데미: (02)6925-1526 cafe.daum.net/ioch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5명의 목회자가 크리스찬들에게 추천하는 인문서들

김경재 작은삭개오교회 목사
해석학이란 무엇인가(리처드 팔머),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김용옥)
문명간의 대화: 다산기념 철학강좌 5(두유명·두웨이밍)
한국문화사 서설(조지훈)
담론(신영복)
원효에서 다산까지(김형효)
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윌리엄 제임스)
성스러움의 의미(루돌프 오토)
삶과 온생명(장회익)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길희성)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김용규)
고전(임철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정수복)
수평선 너머(함석헌)
영혼의 자서전(니코스 카잔차키스)
혐오와 수치심(마사 누스바움)
배제와 포용(미로슬라브 볼프)
예언자들(아브라함 요슈아 헤셸)
탐욕의 시대(장 지글러)
차이의 존중(조너선 색스)
신을 옹호하다(테리 이글턴)

이명동 의선교회 목사
침묵(엔도 슈사쿠)
거짓의 사람들(모건 스콧 펙)
오두막(윌리엄 폴 영)
도덕경(노자)
타샤의 정원(타샤 튜더, 토바 마틴)
나무야 나무야(신영복)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공부하는 삶(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
고백록(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규칙(성 베네딕트)
그리스도인의 자유(마르틴 루터)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팡세(파스칼)
경건한 요청(필리프 야코프 슈페너)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죄와 벌(도스토옙스키)
나를 따르라(디트리히 본회퍼)
교회(한스 큉)

최철호 밝은누리 대표
조선상고사(신채호)
노자 이야기(장일순)
관념의 모험(화이트헤드)
희생양(르네 지라르)
대산 주역 강의(김석진)
동의보감(허준)
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원형과 무의식(카를 융)
다석 강의(유영모)
중력과 은총(시몬 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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